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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서양 낭만주의의 유풍 - 양무

  • 2021.06.25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국보급 시인 양무(楊牧) - 위키백과

타이완 국보급 시인 양무(楊牧)는 본명이 왕징셴(王靖獻)이며 1940년 타이완 동부 화롄(花蓮)에서 태어났고 2020년 3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양무는 시 뿐만 아니라 산문, 비평, 번역 등 방면에서 모두 탁월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의 작품은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언어로 반역됐으며 동아시아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웨덴의 권위있는 문학상 '시카다상(Cikada Prize)', 타이완 국가문예상(國家文藝獎) 등 여러 가지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일제시기에 태어나 일본어와 민남어만 할 줄 았았던 양무는 6살 때부터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중학교 때 ‘수호전’, ‘서유기’ 등 중국 고전 소설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 잡지 편집에 참여하는 동시에 필명 ‘예산(葉珊)’으로 시 전문 잡지에 작품을 발표해 시단으로부터 주목 받기 시작했습니다. 1959년 타이완 중부 타이중(台中)시에 위치한 둥하이대학교(東海大學) 역사학과에 입학했다가 영문학과로 전과해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존 키츠(John Keats) 등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의 작품에 접하게 되어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산(葉珊)의 필명으로 창작한 작품은 대부분 선명한  낭만주의 색깔을 선사합니다. 1964년 졸업한 후 양무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The University of Iowa)가 세운 ‘국제 문학 창작계획’ 에 참여하고 예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유학하는 동안 양무는 아일랜드 시인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예이츠의 작품 속에 담긴 낭만적 장신, 신과 인간의 관계 분석,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 등은 양무의 창작 스타일 변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양무는 UC 버클리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UC 버클리) 비교문학학과에 집학했습니다. 그때는 마침 베트남 전쟁 시기였는데 UC 버클리대학교는 반전쟁운동의 주도자로 미국 정부의 베트남 전쟁 개입에 대한 항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습니다. 학생 운동을 목격한 양무는 산문집 《버클리 정신(柏克萊精神)》에서 ”버클리는 나를 눈 뜨게 하고 더욱 절박하게 사회를 관찰하고 싶게 만들었다. “며 “지식은 힘이라고 하지만 지식은 그저 캠퍼스에 벗어나 사회로 나가야 힘이 될 수 있다”고 썼습니다. 이후 그는 필명을 ‘양무’로 바꾸고 작품을 통해 타이완을 비롯하여 세계 사회에 대한 관찰, 비판, 감정 등을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양무의 작품 중 시와 산문이 가장 많은데요. 그는 《양무시집I(楊牧詩集I)》 의 자서에서 “16세 소년시기부터 의지와 상상의 세계에서 유랑하다가 우연히 시를 포착하고 집으로 삼았는데 어쩌면 시는 나의 운명이질도 모른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산문집 《수색자(搜索者)》에서는 “산문의 형식으로 인생을 탐색한 경험을 많이 기록해왔기 때문에 나에게 산문은 시와 똑같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시와 산문은 양무의 창작 인생에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양무는 시와 산문을 쓸 때 자주 중국 고전 문학을 수용하고 자신들의 작품 속에 활용했는데요. 그는 시경(詩經), 한부(漢賦), 변려문 (駢文), 역사 등 고대 문학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작품의 용어, 스타일, 음운 등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외에 그는 또한 크리스 신화, 기독교 문명, 서양 문학과 예술, 학술 등 서양 문화에서 영감을 얻았습니다. 예를 들면 〈무숙야조곡(武宿夜組曲, 1969 ) 〉에서 중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폭군 상(商) 주(紂)를 물리친 역사를 묘술하고 반전쟁의 주장을 전달했으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기념으로(紀念愛因斯坦) 〉 시에서  아인슈타인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상대성 이론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했습니다.

양무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머물다가 만년에 고향 화롄에 가서 문학 창작을 하면서 둥화대학교(東華大學)에서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둥화대학교 인문사화과학원의 설립에 참여하고 초임 원장을 담당해 타이완 최초로 졸업논문을 대신하여 문학 창작 작품 제출을 졸업 요건으로 하는   ‘창작연구소(創作研究所)’를 창립했을 뿐만 아니라 구미(歐美) 지역 대학의  ‘레지던시 입주작가 제도’를 도입해 작가들에게 자유로운 창작공간을 제공합니다.   

양무의 화롄에 대한 짙은 감정은 그의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화롄〉이라는 시에서 ‘전쟁도 우리를 바꾸지 못해서 어떤 좌절이라도 그대를 바꾸지 못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고 그의 대표작인  《산풍해우(山風海雨)》、《방향귀령 (方向歸零)》、《석아왕의(昔我往矣)》 등 3권 자전적 산문집은 그의 화롄에 대한 추억을 많이 묘사합니다. 창작 외에 그는 또한 시인 야시앤(瘂弦) 등 사람과 함께 홍판서점(洪範書店)이라는 출판사를 창립했습니다.

양무는 생전에 40권이 넘는 시, 산문, 반역문, 비평문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는데요.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시인의 난망과 사회관찰자의 이성이 유합되어 형성된 그의 작품은 영원의 꽃을 이미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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