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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주간 시사평론 - 2021-06-26

  • 2021.06.26
주간 시사평론
홍콩 빈과일보 5명의 고위층이 연행됐으나 6월18일에는 정상 발행되어 체포된 소식을 첫머리 기사로 보도했다. -사진: CNA DB

[주간 시사평론 2021.06.26.]

홍콩의 사과가 타이완의 사과보다 주목을 끄는 이유

자유.민주 사상이 보편적이지 않았을 때, 집권자에 대해 이견을 표하는 언론사들은 지속적인 경영이 극히 어려웠었다. 자유.민주.인권의 가치가 전국민의 머리와 마음에 뿌리를 내린 후의 언론사는 경영이 부실해 도산이나 폐간을 하겠지만 국가의 법률규정에 저촉되지만 않는다면 정부 집권자와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언론사가 문을 닫을 필요까지는 없다.

타이완에서도 수많은 신문,잡지 등 언론출판업자들이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누리는 시대부터 창간,폐간,도산,,, 등을 겪어왔는데, 정부의 힘으로 언론사로하여금 폐업하도록 만든 사례도 없지는 않겠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자유롭고, 민주주의 제도가 성숙해 있다. 최근 30년 동안만을 본다면 타이완에서의 자유를 누리는 정도는 일반 모든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해서 더 자유로울 수는 있어도 덜 자유롭지는 않는다고 본다.

빈과일보, 타이완과 홍콩, 무엇이 다른가?

신문의 이름이 ‘사과’이다. 한문 발음으로는 ‘빈과’이다. ‘빈과일보’가 최근 국제 각 언론에 도배됐다. 누가 이 사과를 나무에서 따갔다고 할 수도 있고, 사과가 때가 되어서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게 먹음직스러운 사과이든, 썩은 사과이든, 아쉬워서인지 나무에 매달려 있던 게 안 보이니 각방에서 그 사과를 찾아헤매는 것 같다. 한 신문사의 폐간이 이렇게 대서특필되고 있다는 건 그 신문이 극히 권위있는 일간지라고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타이완에서 빈과일보와 계열사의 주간지를 바라보는 시각은 처음부터 좋지는 않았다. 심지어 홍콩 빈과일보와 같은 넥스트 미디어그룹 산하의 타이완 넥스트 매거진이 2001년5월31일 타이완에서 창간 발행될 때 (2008년 폐간)와 역시 같은 계열사 산하 타이완 빈관일보가 2003년5월2일에 창간 발행될 때 (2021년5월18일 폐간), 사실 국내에서의 (주로는 지식층과 학부모들) 비판 소리가 드높았었다. 아예 타이완 버전의 넥스트 미디어의 매거진과 빈과일보가 이곳에서 발행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인데, 이는 넥스트 미디어그룹은 파파라치가 기사를 만들며 스토킹 촬영을 하고 스캔들을 터트리는 데에 집중하는 보도를 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 시민들, 특히 유교사상이 짙은 사람이나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18금에 가까운 사진이 매거진 표지나 신문 1면에 올려져 적나라하게 보이는 신문과 매거진이 편의상점을 비롯해 도처에서 판매되고 있는 점에 불만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빈과일보는 타이완에서 발행된 지 얼마 안 되어 최고의 구독률을 보였다. 매일 아침 편의상점에 배달되는 각종 신문 중 빈과일보의 부수가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늘 완판했었다. 다른 수십 년 역사를 지닌 중견 언론사의 일간지 판매량은 대폭 하락하게 되었는데, 신문 판매량을 살리기 위해 유력 일간지이며 우수한 기자들을 소유한 신문사들도 언제부터인가 커다란 사진을 1면에 한두 장 싣고, 표제도 자극적으로 달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천년이 시작된 후의 몇 년 동안 타이완의 신문지상의 편집에는 모두 빈과일보화(化)가 되어간다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큰 변화가 생겼었다.

이렇게 홍콩 스타일의 매거진과 신문이 타이완에 들어온 상황을 말씀드렸는데, 혹시 ‘왜 그런 신문이 제일 잘 팔리지?’, ‘타이완의 독자 취향이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시는지요? 빈과일보 자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벗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지만 빈과일보가 타이완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이 있다. (비록 며칠 전에 타이완 빈과일보 종이신문이 경영난으로 폐간되었지만)

타이완의 빈과일보는 다른 신문사에서는 꺼려하는 사건사고에 대해서 그 상대가 누구이든, 즉 권력을 쥔 사람이든 각 방면의 셀럽이든 상관없이 누구의 체면을 봐주거나 세워주는 보도를 하지 않으며 신문사 시각에서의 이른바 ‘사실만을 보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계, 또는 정경유착 또는 연예계와 각 분야의 셀럽 등등 관련 추문을 보도하는 언론출판사로 각인되었다.

구독자가 가장 많은 일간지가 타이완에서 폐간될 때와 홍콩에서 폐간될 때 받은 눈길은 다르다. 홍콩 빈과일보의 폐간은 타이완에서 순수 상업적인 고려로 종이신문의 발행을 중단하고 전부 전자신문으로 대체하는 것과는 달리 정치적 압박으로 폐간되었기 때문에 전세계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홍콩 빈과일보는 1995년에 창간됐는데,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베이징당국으로 이관되기 2년 전이었다. 이에 앞서 1989년 64티엔안먼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을 피부로 느꼈던 곳은 타이완과 홍콩일 것이다. 그런데 홍콩은 타이완보다 더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곳이었다. 특히 89년 티엔안먼사태 후에 홍콩에서 벌인 일련의 운동을 봐도 홍콩은 1997년 정권 이관 후의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공황심리에 휩싸여 대거 해외 이민 물결이 일기도 했던 시기였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빈과일보가 홍콩에서 창간되었는데 빈과일보의 보도 경향은 앞서 타이완의 빈과일보를 말씀드렸는데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홍콩의 빈과일보는 더 심했다. 그리고 홍콩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보는 언론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베이징당국의 통치와 법률과 관련해 반대를 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던 모든 활동에 빈과일보는 늘 시민과 함께했었다. 예컨대 2003년도에 홍콩기본법 제23반대를 외친 50만 홍콩시민의 가두시위, 2010년도의 고속철도 건설 반대운동, 2012년에 국민교육(세뇌) 반대 시위, 2014년에는 유명한 우산시위, 2019년에는 중국송환반대운동 등등에서 빈과일보의 활약이 매우 컸다. 즉 시민들의 의견을 빈과일보는 빠짐없이 보도를 했는데, 홍콩의 자유와 민주를 누리는 꿈은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까지도 빈과일보는 증언했다.

그래서 26년여 동안 홍콩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빈과일보는 홍콩정부와 베이징당국의 압박으로 지난 목요일, 6월24일에 접었다. 홍콩의 최근 27년을 지켜본 빈과일보의 폐간은 진실을 말하는 신문사가 홍콩에 더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길만큼 안타까운 것이다.

그저깨 홍콩의 사과가 떨어졌지만 진실을 말하는 언론사는 반드시 존재할 수 있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jennifer pai

원고, 보도: 백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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