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및 양안관계 - 2021-02-08

  • 2021.02.08
중국은 1980년대부터 바레인, 아랍 에미리트, 오만, 이라크, 이란, 카타르, 쿠웨이트 등 서아시 국가로부터 원유를 수입했다. 이와 동시에 서아시아는 중국의 주요 군비 수출 시장으로 다시금 부상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및 양안관계 - 2021-02-08

중국의 서아시아 전략

우리가 사는 곳에서 먼 것 같지만 가까운 곳, 같은 아시아이지만 우리의 이해가 사실상 부족한 곳, 바로 서아시아이다.

중동의 일부로 분류되어 있는 서아시아는 아시아와 유럽 및 아프리카를 잇는 길목이며 원유와 천연가스의 매장략이 매우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다. 세계 2차 대전 이래 서아시아는 각 제국주의 국가들이 점령하려 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새지역이다.

서아시아 국가들의 종교와 민족이 다소 복잡한 편이다. 그래서 이들 국가에서는 종교와 민족 충돌 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중국의 ‘일대일로’를 보면 모든 서아시아 국가들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서아시아 국가들의 특성에 맞춰 자국의 전략과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서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그 전략은 무엇일까?

역사적 배경, 중국과 서아시아 관계 요약

중화민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국가이던 시절의 1950년대 초기에 세계 최대 공산집단인 중국과 구소련은 상호 결맹을 맺었다. 그리고 당시 절대 다수의 서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권은 중화민국 정부라고 여겼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1949년10월에 건립된 후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아랍세계 국가들이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지해 준다는 외교 전략을 썼다.

저우원라이(주은래-周恩來)는 1955년 4월 중화인민공화국을 대표해 인도네시아에서 거행된 반둥회의(제1회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참석했다. 이듬해에는 시리아 및 예맨과 수교했다. 또한 그 후의 중동 전쟁에서 중국은 무기와 원유 교환 조건으로 현지에서의 영향력을 높였는데 특히 아랍 에미리트, 바레인, 쿠웨이트와 남 예맨 등 걸프 지역의 좌파 및 마오(毛)파의 반체제 조직에게 무기와 군사 훈련으로 제공했었다.

오만 내전 당시 도파르(Dhofar) 해방전선에 대해 십수 년 동안 군사적 지원을 하며 그들이 오만 정부와 대치할 수 있도록 했는데 도파르 해방전선은 한때 전반적인 걸프만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었다.

그러다가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협력해 함께 구소련에 대항하려 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아랍세계 반체제 조직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줄여나가도록 해, 미국은 이 지역에서 더욱 더 많은 정부와 외교적인 승인과 원유 교역을 따내려고 했던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던 1970년대에 중국은 이란 및 요르단과 수교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중국은 서아시아에서 무기와 원유 교환 조건으로 그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제고시켰다. 1980년대부터 중국은 바레인, 아랍 에미리트, 오만, 이라크, 이란, 카타르, 쿠웨이트 등 국가로부터 원유를 수입했다. 이와 동시에 서아시아는 중국의 주요 군비 수출 시장으로 다시금 부상했다.

경제이익, 종교, 민족 충돌

항상 화약고로 여겨져 온 중동지역은 특히 원유의 잇따른 발굴 이후 경제 이익에 따른 외부 세력의 개입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을 예로 든다면 이란과 이라크 전쟁이 1980년대에 일어났을 때 중국은 이란에 직접 무기를 수출하면서 북한 등 국가를 통해서 이라크에도 무기를 수출했었다.

중국은 1988년에 사우디 아라비아에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판매했다. 그것이 중국이 사우디 아리비아와 1990년도에 국교수립에까지 골인할 수 있게 된 요인 중의 하나라고 본다.

1989년 6월 중국에서 일어난 민주운동이 티엔안먼(天安門) 무력진압으로 짓밟힌 사태는 후폭풍이 거세게 일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당시 베이징당국은 서방세계의 제재에 대한 돌파구 모색으로 중동지역의 사우디 아라비아(1990년), 이스라엘(1992년)과 수교하였다. 서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사실 마지막으로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나라이다.

즉 1992년부터 중국은 서아시아의 모든 국가와 아주 긴밀한 무역 및 군사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오게 되었다.

이스라엘 그러면 늘 미국과 함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사실 중국과의 관계도 매우 긴밀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특히 국방과 정보 영역에서 이스라엘과 협력해오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이스라엘로부터 선진 무기와 정보에 관한 기술을 얻는 계기로 미국의 국방 기술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군비.에너지 무역 파트너

사우디 아리비아와 이란은 숙적이다. 중국은 이러한 두 국가와도 전면적인 전략 파트너십 관계를 건립했다. 오펙 회원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원유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며, 최근 수년 동안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가에 올랐고, 이중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수입하는 석유는 중국이 수입하는 전체의 20% 정도 차지하며, 중국이 전체 서아시아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석유는 총 수입량의 반을 넘는다. 바꿔 말해 서아시아지역 국가에 있어서 중국은 그들의 주요 무역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21세기로 접어든 후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현저히 부상한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은 경제 영향력을 빌려 거의 모든 서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베이징당국이 행하고 있는 이른바 ‘반테러’ 조치에 대해 공개 석상에서 지지하게 만들었다. 서아시아 국가 중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국가는 이스라엘 정부인데,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반대한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태도이다.

여기에서 말한 중국의 이른바 ‘반테러’조치는 신장(新疆)에서 위구르족과 기타 돌궐(괵튀르크)족에 대해 진압하는 등의 행위를 뜻한다.

이 외에 중국은 다국적 조직 기구를 통해 해당 지역의 정부와 이익 계층이 중국의 외교에 손을 들어주게 만들었다.

또한 서아시아지역 국부펀드의 거액을 중국 경제에 투자하도록 유치하면서 아랍세계의 투자자들에게는 신장(新疆)과 닝샤(寧夏) 등 무슬림 집중 거주지역을 개방하고 국제공업무역박람회를 개최하며 할랄식품의 산업기지를 건립하였다. 상대적으로 중국 기업도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 카타르 등 국가의 유전, 천연가스, 전력, 도로, 철도 등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오고 있다.

중국 -서아시아 60년 교류 요약

끝으로 서아시아 국가와의 교류 60여년 이래의 중국이 해당 지역에 대한 전략을 앞뒤 각각 30년씩 크게 두 시기로 나뉘어 요약해 보겠다.

전 30년은 아랍세계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대항할 수 있도록 지지해줬고, 점차 양 측과 각각 전면적인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 또는 혁신적 전면적인 파트너십 관계를 건립했다.

후 30년 이래 중국은 서아시아지역의 잦은 전쟁에 대해서 ‘평화’라는 수식어를 자주 사용해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전국 쌍방에 대해 서로 다른 전략을 쓰는데, 어떨 땐 극도로 간섭을 하고 어떨 땐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최대한의 경제와 전략적 이익을 챙겨왔다. 시리아 문제에 있어서 중국과 러시아는 함께 시리아의 전제정권이 축출되는 것을 막았다. 중국은 예맨 내전에서 바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전략을 써 교전 쌍방이 계속 소모전을 벌이게 방관해왔다. 1950년대와 60낸대의 중국은 아랍혁명을 지지했다. 아랍의 봄 기간에 그리고 그 후에 서아시아 반혁명 전제정부가 각자의 방식으로 국민을 진압하는 데에 대해서 지지했다. 이상의 요약한 내용으로도 중국이 서아시아지역에서 경제와 군사와 외교적인 투기 수단과 카멜레온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고 본다. -jennifer pai

원고 작성 보도 백조미

-중국의 해외 망명 민주운동가 샤오장(邵江)의 문장 일부 참조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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