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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 사고에 애도 (활주로에 EMAS가 있었더라면...)

  • 2024.12.30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양안관계 및 시사평론
2024년12월29일 한국 제주항공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대형 참사를 맞았다. 총 181인의 탑승자 가운데 단 2명이 구조되었고 179명이 사망했다.-사진: AFP

여객기 사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41230-타이완 ㆍ한반도 ㆍ양안관계-

12월29일 오전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7C-2216편 사고 항공기에 탑승한 179의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프닝 멘트 1'30")


건강하고 평안한 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형 사고 소식에 슬픔을 금하지 못한다. 육상과 공중, 해상의 교통이 발달하며 국내외의 물리적 거리는 시간의 절약으로 아주 많이 가까워졌다.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질 때면 조심해야겠다든가 그건 타면 안 되겠다든가 하는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비행사고의 발생률은 육상에서의 교통사고 대비 상당히 낮다. 교통사고는 112분의 1, 비행사고는 8천분의 1이다. 하지만 국제상에서 그동안 수많은 비행사고가 있었고 이에 따른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도 존재한다.

어제(12/29) 한국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7C 2216편 여객기 사고는 처음에 사망 28인, 구조 2인이라는 속보를 봤을 때 더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으나 결국 구조된 2인을 제외한 총 179명이 사망하였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원인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철저한 조사를 거쳐 정확히 파악한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 사고로 타이완의 국적기 사고 가운데 국제선으로 일본 나고야 활주로에 추락하여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여객기 추락사고와 국내에서 발생한 국제선 항공기 사고 중 사망자가 제일 많았던 사고 소식을 회고해 본다.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지난 1994년4월26일 밤에 발생한 사고이다. 이날 중화항공 CI 140편 여객기는 승무원과 승객 총 271명을 태우고 일본 나고야를 목적지로 당시 CKS중정국제공항으로 불렸던 지금의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나고야공항에서 착륙하는 과정 중 추락해 7명만 구조되었고 264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금까지 타이완의 항공사상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대참사였다.

사고 발생 후 조사 보고를 완성하기까지 2년3개월이 걸렸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기계 문제와 인위적인 오작동 문제가 동시에 존재한 것인데 사고 비행기는 프랑스 에어버스 A300 여객기로 당시 설계에 하자가 있어 에어버스 측은 시스템 업데이트를 각 항공사에 권고한 바 있었다. 표준운영절차에 따라 기장과 부기장이 혹여 재상승 모드로 변경할 경우 해제 모드가 상당히 복잡하기에 시스템 업데이트와 조종사들이 재상승 모드를 해제하는 방법을 사전에 훈련했어야 했다. 당시 중화항공사 측에는 총 6대의 에어버스 A300 비행기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당시 아직 시스템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더해 불상사를 초래한 원인 중에는 사고 여객기를 조종한 기장과 부기장은 각각 태국과 프랑스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태국에서 훈련을 받은 기장은 이미 시스템 업데이트를 한 비행기 훈련을 받았지만 부기장은 프랑스에서 훈련을 받을 때 사용한 모의비행장치는 당시 중화항공에서 사용하는 비행기와 같은, 아직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시스템을 적용했었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비행기 기계 고장과 인위적인 사고, 즉 부당한 조작에 의한 재상승과 재착륙 시도에서의 실패가 가져온 참사였다는 조사 보고가 발표되었다.

중화항공 나고야 공항 사고는 활주로를 향해 착륙하는 과정에서 부기장이 재상승 모드로 오작동함에 따라 기장의 지시에 따라 수동으로 재상승을 할 때 비행기가 급속도로 상승하며 앙각이 너무 크다보니 비행기가 제어 받지 않고 나고야공항에 추락한 것이다.


국제선 여객기로 2002년5월25일 오후 3시 경 CKS중정국제공항으로 불렸던 지금의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홍콩으로 향하던 중화항공 CI 611편 여객기는 타이완 남서부 타이완해협 펑후섬 상공을 날고 있을 때 갑자기 레이더 영상에서 사라진 후 얼마 안 있어 비행기가 공중 분해되었다는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타이완해협 바다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사고 비행기에는 승무원을 포함해 225명이 탑승해 있었는데 펑후섬 마공시 북동방 23해리 부근 34,900피트(1만640미터) 고도 에서 공중 분해되며 바다로 추락하여 탑승객 225명 전수 사망하였는데 이는 타이완 영내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항공기 참사로 기록되었다.

이 사고 역시 철저한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확실히 어떠한 원인인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2002년 사고 발생 후 중공군의 미사일 피격을 받았다거나 테러 공격을 받았다는 등의 무력 설이 있었고, 심지어 운석에 맞았다는 말까지도 나왔지만 조사 결과 모두 부정되었다.

이 참사는 정치적 이슈와 연결되어 양안관계 정책이 기존 조치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사고 여객기의 탑승객은 거의 다 타이완의 중화민국 국민으로 그들은 대부분 중국대륙에 있는 친지 방문을 위하여 홍콩을 경유 비행기를 이용했던 것이다. 즉 양안관계가 국공내전이 진행될 때나 중공이 문화혁명을 일으켰던 시기도 아니며 양측 적십자를 통한 인도적 차원의 교류에서부터 정부 부문을 대신하여 재단법인 형태로 양안 교류를 추진하는 해협교류기금회와 해협양안관계협회의 왕래도 적지 않은 상황 아래 왜 아직도 직접적인 교통로를 개설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일었고, 전세기 운항도 있었지만 2008년에 이르러 양안 간 공중 운수 직항이 정식 운영될 수 있었다. 지금 아무리 정치적으로 양안 관계가 차갑다고 해도 타이완 민간(개인 여행, 친지방문, 기업)에서 양안 간 공중이나 소삼통을 통한 해상 교통의 이용률은 여전히 높다.


어제 한국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여 오늘 라이칭더 총통이 애도를 표했고 외교부는 어제(12/29) 위로의 뜻을 전달하였다. 이 외에 국회에서는 우리 공항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입법원 교통위원회는 오늘(12/30) 민국114년도(서기2025년도) 중앙정부총예산안 중의 ‘국가운수안전조사위원회’ 기관 예산을 심사함에 따라 운수안전위원장(린신더林信得)과 운수안전 집행장(린페이다林沛達) 등을 국회 교통위원회에 출석시켰다.

((자료사진) 타이베이 숭산(松山)공항 활주로에 오버런 방지와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였을 경우 해당 시설 활주로 바닥이 깨지며 항공기를 멈추게 하는 강제 제동시스템 EMAS 장비를 2005년부터 갖췄다. 사진(상)은 2014년3월 밤에 타이베이송산공항사에서 여행객 안전 관련 글을 발표할 때 공개한 것이고 다른 하나(하)는 2017년8월에 발표한 글과 함께 공개한 사진이다. -사진: 타이베이송산공항 페이스북 캡쳐)

이 자리에서 여당소속 의원(리쿤저李昆澤)은 ‘타이베이 숭산공항 활주로는 2,600미터에 불과하여 한국 무안공항 활주로(2,800미터)보다 짧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린신더林信得)운수안전위원장은 타이베이 숭산공항 활주로에는 오버런 방지를 위하고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였을 경우 바닥이 깨지며 항공기를 멈추게 하는 강제 제동시스템 EMAS 장비를 2005년부터 갖췄고 관련 시설은 2년 마다 재검 측정을 한다며 항공기의 충돌 충격 역량을 흡수하고 속도를 늦춰주며 쉽게 깨지는 재질의 장치라 비행기가 이곳에 충돌한다 해도 전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어제 제주항공 사고 원인은 최종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만약 운수안전위원장이 말한 EMAS 시설을 갖추는 게 지금보다 안전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여서 안전을 확보해 나가기를 바란다.


제39대 미국 대통령은 타이완의 정치, 양안간의 관계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00세의 고령으로 별세하였다는 소식이 오늘 아침 타이완에 알려졌을 때, 인류사의 기라성같은 분이 돌아가셨다며 애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60대 이상 국민은 지미 카터에 대한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료사진)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가 100세의 고령으로 별세하였다. 그는 1999년 국책연구원의 초청으로 타이완을 방문하여 타이베이에서 연설을 하였는데 99년도는 단교 20주년이기도 했다. -사진: Reuters / TPG Images)

지미 카터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지 십수 년 후, 1999년에 타이완을 방문한 바 있다. 그는 (1979년1월1일을 기해)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당시의 결정은 옳았다’라고 밝혔었다. 뒤집어 말한다면 ‘미국이 중화민국과 단교한 당시의 결정은 옳았다’라고 들리기도 했다. 99년도에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 지미 카터는 중화민국과의 단교(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로 타이완에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타이완에서 아주 많은 쟁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추후(2025년1월4일 ‘시사평론’)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중화민국의 외교, 타이완과 미국 간의 관계 및 양안관계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분석과 평론할 예정이다.-白兆美

원고 ㆍ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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