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에 대한 타이완과 한국 그리고 싱가포르의 시각
- -2023.09.18.
- -타이완ㆍ한반도ㆍ양안관계ㆍ시사평론-
-17년 전 타이완에서 사라진 ‘통일’이라는 명칭, 2006년 ‘중지’된 국가통일위원회, 2023년에도 부재중…
-‘타이완은 단 하루도 중국에 의해 통치된 적이 없고 상호 예속되지도 않았다. – 차이잉원 총통, 외교부 등 정부 공식 입장문
-<2023 통일백서>에서는 “북한 비핵화 및 남북관계 정상화, 북한인권 증진, 통일미래 준비 등 변화된 정책적 측면을 강조하여 기술하였습니다.”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 이효정. 2023.04.14.
-양안간은 공통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중화문명으로 서로 융합하여 앞으로는 연방(Commonwealth) 제도 방향으로 점진적이며 평화적으로 융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 싱가포르 전 외교장관 양룽원(楊榮文 George Yeo Yong-Boon)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은 모두 민주주의 국가이다. 하지만 각각 동족이지만 분단되었고 각자 주권독립의 체제로 양안 또는 남북한이라 불리고 있는데, 타이완이나 한국의 ‘통일’에 대한 생각에는 지금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9월14일) 저녁 타이베이 그랜드호텔 국제회의센터에서 한국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 북부협의회 출범대회가 열렸다.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 이은호 대사, 아태지역회의 부의장 고상구, 협의회장 황희재, 상임위원 조언빈, 24인의 자문위원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치러졌다.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북부협의회 출범회의가 9월14일 저녁 타이베이 그랜드호텔 국제회의센터에서 거행되었다. -사진: 백조미)
이은호 대사는 이날 축사에서 제21기 동남아북부협의회 자문위원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자유통일의 개척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21기 동남아북부협의회장을 맡은 황희재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 오랜 역사 속에서 항상 외세에 의하여 운명이 정해져 왔었다며 이제 한국이 자주적인 역량을 키워 나가 외세의 입김이 없는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데 한국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부단히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음원: 황희재 협의회장
‘사실 대한민국이 지난 5천 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가 자주적으로 액션을 취한 것이 없고 항상 외세에 의해서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우리가 자주적인 역량을 키우고 조금더 그로벌화되고 선진국이 되어서 이제는 외세의 입김이 없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역량으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항상 상대적인게 있잖아요. 북한이 지금 저렇게 엇박자를 놓고 있는데 우리만 일방적으로 하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되겠죠.’
그는 또 젊은 세대들의 통일에 대한 회의감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통일의 당위성을 2~30대에게 인식시켜주는 것도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이 해야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북부협의회장 황희재. -사진: 백조미)
(인터뷰)음원: 황희재 협의회장
‘저희 세대만 하더라도 ‘평화통일’이라는 게 아주 당연한 듯이 인식이 되어있지만 지금 (한국)국내에서도 20대 30대 젊은 친구들은 “왜 통일해야 되는데?/우리 것을 왜 나눠줘야 되는데?”, 그러니까 통일에 대한 회의론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화통일자문위원들의 역할이 외부로는 평화통일을 해야지만 (한국)내부로는 우리 자라나는 2세들에게 평화통일 당위성도 같이 인식을 시켜주는 그 2가지 역할을 우리가 지금 맡아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 리덩후이(李登輝, 1988년1월 장징권蔣經國 총통 서거 후 2000년도까지 총 12년 동안 중화민국 총통을 지냄.) 총통 시대인 1990년 시월 ‘국가통일위원회설치요점’에 의거하여 중화민국 총통부 직속 ‘국가통일위원회’의 발족을 선포하며, 설치의 목적은 타이완해협 양안관계 발전을 주도하며, ‘민주ㆍ자유ㆍ균부’를 기초로 중국통일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즉, 1990년도 때만 해도 타이베이당국은 ‘중국통일’을 추구한다고 대외 발표를 하였고, 그래서 현재 정부에서는 수용하지 않는 양안간의 ‘일중각표一中各表-하나의 중국, 각자 해석’, ‘92공식九二共識-92년 합의’ 그리고 1993년 양안 정부가 유일하게 권한을 부여한 중개기구 타이완의 해협교류기금회(회장 구전푸辜振甫)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회장 汪道涵)의 장들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양안 정부를 대표해 역사적 회담을 가졌다. 이 때만 해도 양안이 곧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한 시민들이 많았다고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였다.
그러나 1996년 3차 타이완해협 위기, 1999년 <양국론> 발표 등으로 90년대 후반의 양안관계에서는 90년대 초반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다 2000년 대선에서 중화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본래 ‘타이완독립’을 주장해온 민주진보당이 집권하며 양안간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당시 워싱턴당국의 태도는 중국과의 관계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보였고 그래서 천수이볜(陳水扁, 2000년~2008년, 제10대, 11대 총통) 총통은 국제사회에서 마땅한 대접을 못 받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중국국민당 당원으로 12년 간 총통 자리에 있었던 고 리덩후이는 비록 ‘국가통일위원회’ 설치를 주도한 인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통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진보당이 집권하면서 강성당원들은 ‘타이완독립’을 선포해야 마땅하다는 등의 강력한 주장을 제기하였으나 국제 및 양안관계의 현실 속에서 그러한 가능성은 희박했다. 따라서 특히 문화적 차원의 변화를 펼치며 타이완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줄곧 강조해 오고 있는 것이다.
1990년에 발족된 ‘국가통일위원회’는 2000년 천수이볜 총통 집정 이후 단 한 번도 회의를 개최하지 않았고, 그 후 위원회 예산은 상징적인 뉴타이완달러 1천원(한화 약 4만원)을 편성하다가 2006년2월28일 천 총통 재임 기간에 ‘운영 중지’를 선포하며 지금까지 ‘국가통일위원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누가 집권을 하든 ‘통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지난주 수요일(9월13일) 오전 전 싱가포르 외교장관 양룽원(楊榮文 George Yeo Yong-Boon)이 타이베이에서 ‘싱가포르의 시각에서 본 양안관계’라는 제목으로 특별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에 이어 포럼과 문답 그리고 오후 12시45분 경부터 근1시간의 기자간담회도 가졌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중국이 무력으로 타이완을 점령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타이완은 미국의 카드로 이용되느니 공통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같은 중화문명의 양안간이 상호간의 이견을 좁혀 나가며 융합하고, 궁극적으로는 국협(國協)/연방(Commonwealth)/ 방향으로 점진적이며 평화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도 아니며 중화민국도 아닌 그저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융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라고 답변했다.
(9월13일 특별 강연에 이어 기자간담회를 연 전 싱가포르 외교장관 양룽원(楊榮文 George Yeo Yong-Boon). -사진: 백조미)
(인터뷰)음원: George Yeo 싱가포르 전 외교장관
이날 싱가포르 전 외교장관 양룽원의 주장은 중화민국 외교부가 보도문을 통해 ‘그의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리 정부는 양안간의 융합이든 연방이든 수용하지 않는다는 걸 재천명하였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2년을 임기로 올해 21기를 맞았는데 한국 내에 지역회의와 협의회가, 해외에도 지역회의와 협의회가 있으며, 이중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경우 이 지역회의는 7개의 협의회로 구성되어 있고, 본래 필리핀 동남아북부협의회에 소속되었던 타이완 민주평화통일지회는 21기부터 협의회가 타이완으로 옮겨져 그 지위가 한 단계 격상되었다고 할 수 있고 황 협의회장의 책임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제21기 동남아북부협의회에는 타이완, 홍콩, 필리핀, 팔라우, 몽골 등 국가가 소속되어 있다. -白兆美
취재ㆍ보도: 백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