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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타이완 드리마 스카루와 중국 영화 장진호 전투의 진실과 픽션

  • 2021.09.20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및 양안관계
중화민국 공영방송 PTS(公共電視)의 대하 드라마 스카루(斯卡羅- Seqalu: Formosa 1867). -사진: PTS(公共電視) 제공 via CNA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및 양안관계 - 2021-09-20

2021.09.20.-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

-타이완 드리마 스카루:포르모사 1867(斯卡羅-Seqalu: Formosa 1867)과 중국 영화 장진호 전투(長津湖-The Battle of Chosin Reservoir) 의 진실과 픽션

지난 8월 차이잉원(蔡英文) 중화민국 총통이 공영방송 PTS(公共電視)의 대하 드라마 스카루(斯卡羅》- Seqalu: Formosa 1867)를 적극 추천했다. 최근 ‘미국의 소리’에서 중국이 제작해 올해 상영한 영화 장진호(長津湖》-The Battle at Lake Changjin)를 언급했다.

-사실과 허구

‘스카루’와 ‘장진호 전투’ 모두 역사적 사실(史實)이며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되어 픽션이 섞여있다.

-드라마 스카루:포르모사 1867(斯卡羅-Seqalu: Formosa 1867)

드라마 스카루에는 1867년 로버호 사건(Rover Incident)으로 파생된 타이완 원주민과 미국과의 전쟁과 협약이 담겨져 있다. 1867년3월12일 미국 상선 로버호가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랴오닝(遼寧)성 잉커우(營口)로 향하던 중 조난사고를 당해, 당시 타이완 남부 헝춘(恆春)반도까지 표류해 헝춘에서 상륙을 했다. 그런데 당시 헝춘반도를 실질 통치하고 있던 파이완족(排灣族- Paiwan) 원주민족에 속하는 ‘랑쨔오 18번사(瑯嶠十八番社-랑쨔오 18개 원주민 부족)’의 ‘스카루’ 부족은 조난사고로 상륙한 미국인들을 1600년대에 타이완섬을 침략해 식민통치했던 네덜란드 사람으로 오해하고 13명의 미국인을 참수했다. 하지만 함께 배를 타고 온 중국대륙의 한족(漢族) 선원은 죽이지 않았다.

(중화민국 공영방송 PTS(公共電視) 대하 드라마 스카루(斯卡羅- Seqalu: Formosa 1867). -사진: PTS(公共電視) 제공 via CNA)

로버호 사건은 주중국 샤먼(福建省 廈門) 미국 영사 샤를 르 장드르(Charles W. Le Gendre)의 분노를 샀고, 그래서 3개월 후인 1867년6월 ‘포르모사 원정(Formosa Expedition)’을 펼쳤다. 미국 해병대원 43명, 해군 장병 138명이 타이완에 대해 군사행동을 벌였는데 파이완족 원주민 용사들은 타이완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무더운 날씨와 복잡한 지리환경을 이용해 미군을 격퇴했다. 당시 미군 지휘관 알렉산더 매켄지(Alexander Slidell MacKenzie) 소령이 전투에서 죽자 미군은 바로 철수했다.

이 전투는 미군이 지금까지 타이완에서 행했던 유일한 상륙작전이며, 그때 전투에서 타이완의 원주민족이 승리를 거둔 역사이다. 그 후 샤를 르 장드르 영사는 장차 조난사고로 상륙하는 미국인이 무고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타이완으로 건너와 스카루 추장 추치톡(卓杞篤- Cuqicuq Garuljigulj)과 협상해 1869년2월에 구두협의 방식으로 ‘남갑지맹(남쪽의 곶에서의 맹약)-南岬之盟‘ 양해비망록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서는 미국이나 기타 외국 선원이 타이완에 표류해 오게 되면 반드시 붉은 깃발을 들어 살해되는 걸 모면한다고 규정했다.

-영화 장진호 전투(長津湖-The Battle of Chosin Reservoir)

영화 장진호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1950년 한국전쟁에서의 ‘장진호 전투’를 배경으로 하며, 중국의 인민지원군이 미국의 해병대 1만3,900명을 격퇴시킨 이른바 ‘영광스러운 전투’를 찬양하는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장진호 전투는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의 한반도 통일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고, 그래서 미군은 본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점령한다는 전략 목표를 대한민국을 공고히 하는 전략으로 조정하게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는 사실 자체는 변화할 수 없지만,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중공의 관점과 한미 연합군의 관점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이 철수한 건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쌍방의 전투에서 중공군의 피해는 미군보다 훨씬 컸고, 미군의 철수 과정은 황급히 달아난 게 아니라 질서정연했다는 것이다.

중공이 ‘항미원조-抗美援朝‘를 했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한반도는 이미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북위 38도선을 중간에 두고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쪽은 대한민국이다. 그때 만약 중공은 미군을 38선 이남으로 몰아내는 게 목적이었다면 장진호 전투는 확실히 중공의 승리이다. 그렇지만 중국인민지원군은 이어서 조선인민군의 남하 공격에 발맞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향했다. 결과는 모두 다 알겠지만 한미 연합군의 반격으로 북한군과 중공군은 고배를 마셨다.

(중국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의 2021년 영화 '장진호-長津湖' 제작 발표회. -사진: 인터넷)

항미원조 제5차 전투는 그 다음 해인 1951년 봄에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대패했고 전쟁포로도 많이 남기게 되었는데 포로가 된 이들 중공군은 그후 대부분 ‘반공’의사로 신분이 바뀌었다. 이러한 사실로 본다면 장진호 전투가 중공의 승리라고 인정하기 힘들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파병을 한 목적은 한반도 통일이 아닌 38선 이남의 대한민국이 적화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은 실제로 당시의 대한민국을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주요 선진 20국 중의 하나이며, 비록 예전에 서로 총구를 맞대고 싸웠지만 중화인민공화국과는 1992년에 정식 국교를 맺었고,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중요 동맹국가이다.

-한반도전쟁 폭발

1950년 한국전쟁은 어떻게 폭발했는지 남북한 교과서에서는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한반도 적화 통일을 하겠다며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Stalin, Iosif Vissarionovich)의 동의와 중공 마우저둥(毛澤東)의 지지를 얻으면서 1950년6월25일 선전포고 없이 남침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한국은 전비상태도 아니어서 겨우 4시간 만에 방어선이 무너지고 사흘 뒤에 수도 서울이 김일성 부대의 손에 들어갔다.

당시 유엔 안보리는 제83호 결의를 채택하며 북한의 침략을 질책했다. 또한 15개 국가로 구성한 연합군이 평화유지를 위해 한반도에 파견되었고, 미국의 제7함대는 당시 타이베이에 있는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중화민국 국군이 중국대륙 수복을 위한 전쟁을 벌일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타이완 북부의 지룽(基隆)항과 남부의 가오슝(高雄)항에 기항해 있었다. 또한 미국 대통령 헤리 트루먼(Harry S. Truman)은 맥아더 장군을 연합군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맥아더가 지휘하는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에서 성공하면서 서울 탈환에 성공하고 한 달 뒤에는 평양을 함락시켰다. 그 후 연합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지휘관에서 해임시키면서 한반도는 다시 38선을 경계로 지금까지 갈라진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고 요약해 말할 수 있다.

-드라마와 영화로 본 그 시대의 미국

드라마 ‘스카루’와 영화 ‘장진호’를 통해서 19세기 중반 이후와 20세기 중반의 미국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1867년 로버호 사건이 발생하여 미 해병대의 포르모사 원정이 있을 무렵 미국은 남북전쟁을 치른 지 겨우 2년밖에 안 되었던 시기였고, 당시 미국의 외교정책은 외교 중립으로 고립주의를 채택한 시대였다. 1823년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James Monroe)가 의회에서 밝힌 먼로 독트린(먼로주의-Monroe Doctrine)인데, 그 당시 미국의 국력은 지금과 큰 차이가 있다. 군사적으로 유럽 열강들과 동등한 수준에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 아래서 미국이 대외적으로 군사 침략을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19세기의 유럽 국가들은 근대사에서 언급되는 열강들이며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을 위시한 식민주의 세력이 이미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까지 뻗쳐있을 때였다. 영국이 중국에서 아편전쟁을 벌일 때도 바로 19세기 중,후반이었다. 미국은 비록 곳곳의 영토를 구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지금의 50주 중의 하나로 확장해 나가고는 있었지만 북미 주 이외의 다른 곳에 가서 식민지를 만들거나 영토를 빼앗으려는 욕망은 없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미국 해병대의 타이완 파병 – 포르마사 원정에는 그저 희생 당한 미국 국민을 위해 나서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장진호 전투의 흥남 철수작전은 1948년과49년 사이,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타이완으로의 철수와 매우 흡사한 점이 있다. 더 많은 민간인과 부대원을 안전하게 철수시키기 위해서 특별한 임무를 띈 부대 군인들이 희생하며 막아줬다는 게 비슷하다. -jennifer pai

원고. 보도: 백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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