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및 양안관계 - 2021-08-30

  • 2021.08.30

8/30-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

아프간 사태로 본 워싱턴-타이베이-베이징 관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입성한 8월15일 이후 최근 2주 사이 타이완 내에서 아프간 사건에 대한 관심도가 폭증했는데, 아마도 지정학적인 면에서 여전히 진행형인 미.중 갈등과 미군의 철수 그리고 타이완의 안보와 연계하여 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아프간의 운명은 이제 외국인이 바꿔줄 수 없기 때문에 아프간 스스로 자국을 변화시키고 스스로의 앞길을 결정해야 한다.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를 1975년 미군의 베트남 철수와 견줘 말하면서 미국이 타이완을 배신하지 않을까?라는 논쟁이 국내에서 열렬히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도 타이완은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 5년 양안관계는 빙점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그건 정치에 국한된 얘기다. 일반 상업활동이나 코로나 19를 배제하여 국경방역이 없다고 한다면 인적교류 또한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황이다. 양안간의 첨예한 대치는 6, 70년 전의 1950년대와 60대의 일이며, 당시 워싱턴당국과 타이베이당국 간은 군사동맹 관계로 공동으로 베이징당국의 위협을 억제했었다. 국제 환경이 그동안 많이 변화하여 중화민국과 미국은 42년 전에 이미 정식 수교국이 아니다. 다만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손을 들어주면서 ‘타이완 관계법’으로 우리를 어느 정도 안심 시켰다.

강국, 대국이 아닌 중.소규모 또는 약소 국가라면 아무래도 미국정부가 보호해 줄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아프간 사건이 발생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약속을 지키며, 누구든 침입하거나 나토 동맹국에 행동을 취할 경우 미국은 반드시 이에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는 ‘일본, 한국, 타이완도 같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제이크 설리반은 ‘우리는 타이완,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줄곧 견실하다’고 재천명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서 미국 국무부 대변인 네드 프라이스는 ‘미국은 타이완인 의지에 부합하는 최고의 이익에 부합하는 상황 아래서 양안의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지지할 것이며, 미국은 베이징당국의 대타이완 군사적, 외교적 및 경제적 압력을 중단하고, 타이완과 의미있는 대화를 진행할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미국의 양안 정책은 ‘타이완관계법’과 미.중 ‘3개 연합공보’와 ‘6개 보증’에 입각한 ‘하나의 중국 정책’이라고 밝혀, 미국이  국제정치 현실에 부합하는 일관된 입장을 표명한 것이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의 아프가니스탄이 내일의 타이완인지 아닌지는 더 두고 봐야하지만 예전에 미국이 타이완해협에 위기가 있었을 때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타이베이와 베이징 사이에서 워싱턴당국은 1979년을 기해 베이징당국을 선택했지만 타이베이에 대해 완전 등을 돌린 건 아니다. 이는 당연히 미국의 국가이익에 입각한 정책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장제스의 국민정부를 포기한다는 ‘자유방임정책(Hands-off policy)’을 쓴 게 먼 옛 이야기는 아니다. 1949년에 국민정부가 타이베이로 임시 퇴거했을 때 그해 8월초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중국백서’에 따르면 장제스정부가 국공내전에서 실패한 원인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면서 일단 포기하겠다고 밝혔던 바 있었다. 그 후 마오저둥이 소련 쪽으로 기울고, 1950년 한반도 전쟁이 폭발하면서 미국은 타이완해협의 중립을 지지하기로 정책을 변경했고, 제7함대가 타이완해협에 진입했는데, 그러면서 타이베이와 국민정부를 공산세력의 확장을 막는 국제 냉전 방어체계로 끌어들이므로써, 한반도 전쟁에서 미군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장제스의 국민정부로 하여금 반공 구국군을 조직하여 중국대륙 동북 연해를 수 차례 공격하도록 하여 인민해방군의 한반도전쟁에서의 힘을 깎아내려는 정책을 펼쳤었다. 한반도전쟁은 장제스가 미국의 눈 밖으로 떨아져 나가는 걸 한시적으로 지연시켜준 사건이다.

진먼섬과 마주섬은 1949년 이후 타이베이 정부의 최전선이었고, 1958년 진먼 포전 기간 타이베이-워싱턴-베이징 간의 정치와 군사적 마찰이 계속되고 있었다. 마오저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진먼에 포격을 가하면서 진먼은 중국의 영토임을 워싱턴당국에 선언하며 ‘하나의 중국’정책, 즉 이 세상에 중국은 베이징당국의 중화인민공화국밖에 없다는 걸 미국에 확실시하려고 한 것이다. 타이베이의 중국국민당정부는 진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진먼에 주둔군을 증파하고 미국의 지지를 얻으려 했으며, 미국은 군사 협력 제공을 통해서 타이베이의 군사적 리스크를 저지하려 했다(본토 수복 전쟁 저지). 미국은 최대한 타이완해협 전쟁에 말려들지 않으려 애썼다. 당시 진먼 포격전은 타이완해협 위기가 국제적 초점이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60년대 초반 민주당의 존 F. 케네디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TV 변론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사를 통해서 왜 타이베이당국이 그동안 미국의 양대 정당 가운데 공화당과의 관계가 더 밀접했는지를 대변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양당 대통령선거 입후보자가 진먼,마주를 방위할 것인지에 대한 변론을 보면, 케네디는 진먼과 마주는 작은 섬이며 중국대륙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군사적으로 방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타이베이당국이 진먼,마주에서 군을 철수하기를 원했고, 미국이 군사적 협력으로 방위하는 범위를 타이완섬과 펑후섬으로 국한시키며 미군은 타이완해협 양안간의 전쟁에 휘말리지 말 것을 주장했다.  닉슨은 진먼에 공격을 가한 것은 타이완을 ‘해방’시키려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진먼섬을 방위하는 것은 원칙적인 문제라며 미국은 이에 약해 보이거나 양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과를 불문하고 결과적으로 대통령 선거에서는 케네디가 대승을 거뒀고, 또 결과적으로 우리는 진먼을 지켜냈다.

이러한 역사를 보며 오늘날의 아프간을 봤을 때 타이완은 미국의 협력이 있었고 게다가 아주 중요한 건 바로 스스로를 지키려고 사수했던 것이다. 아프간은 정부군이 지키고 싸우려는 의지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자주적이며 스스로 강해지고 보위하려는 결심이 있고, 만약 자국의 정치와 군대 그리고 경제, 문화, 교육과 신앙 등 각 방면에서 현대화의 길을 착실하게 걸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상황은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는데 동맹국이라도 스스로 돕는 나라를 도우려 할 것이다. 아프간주둔 미군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아프간 정부군이 와해되는 걸 보며 많은 걸 생각하게 하며 슬프기도 하다.

1949년 이후 중화민국이 받은 가장 큰 충격을 몇 가지 나열해 본다면 1971년 유엔에서 중국 대표권을 빼앗기며 탈퇴한 것과 1979년 미국이 베이징의 손을 잡아주며 단교한 것이다. 1970년대의 오일 쇼크, 1990년대의 금융위기(한국의 IMF), 2003년의 사스, 2020년의 코로나 19 등등 모두 타이베이를 무너트리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는 스스로를 잘 지켜왔고 또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오늘날의 타이완은 비록 베이징당국의 무력통일이라는 위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강인하게 대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타이완은 당연히 아프간과는 다르다.

오늘날의 타이완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다. 과학기술, 금융, 산업 모두 이곳에 물질적 풍요로움을 제공해줬고, 사회적으로 상당히 개방되었으며 문화적 포용력은 더욱이 자랑할 만하다.

한때 국제사회의 고아로 불린 타이완은 정식 수교국이 아니더라도 실리외교를 펼치면서 비록 국제기구에서 늘 배제되는 슬품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국제무대 복귀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최근의 방역 마스크 외교, 40여 년 전의 농업지원과 의료지원 외교 등의 선순환을 이뤄냈다. 스스로 도우면서 이타적인 일을 계속하면서 외국의 이익도 증진해주고 우리도 세계에서 더 이상 고아가 아닌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게 되었다.

미.중 전쟁은 진행형이다. 앞으로 미국이 타이완해협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할 것인지, 미.중 경합과 충돌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관찰하면서 미국이 타이완을 버리지 않을까 걱정하기 보다는 일단 스스로 돕고 지키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jennifer pai

원고. 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