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먹어야 할 타이완 전통 음식부터 각 지역 특산물과 현대 감각을 더한 퓨전 타이완 음식까지 타이완을 대표하는 음식을 직접 맛보고 생생하게 전해드리는 매주 금요일 랜선미식회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선미식회 진행자 손전홍입니다.
예부터 타이완은 벼농사의 최적의 기후 및 비옥한 토지를 갖추고 있어 타이완인들은 주식으로 쌀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일본 등 쌀을 주식으로 하는 많은 국가들이 그러하듯 타이완 역시도 현재 식생활 습관이 변화하면서 쌀 소비량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고, 반면, 육류나 밀가루의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다이어트 열풍으로 인해 칼로리가 높다고 여겨지는 흰 쌀 밥을 섭취하는 양을 줄이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스턴트 식품이나, 서구식 식습관으로 인해 빵, 피자, 치킨 등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면서 밀가루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지만, 쌀 소비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층의 식단에서 밀은 단연 인기 품목이다 보니 요즘은 쌀이 타이완인들의 제2의 주식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곤합니다.
타이완은 짧은 비행시간과 풍부한 먹거리로 한국과 일본, 홍콩 등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여행지입니다.
진한 소고기 육수에 쫄깃한 면발, 그 위에 큼지막한 소고기를 얹은 우육면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국민음식입니다. 또 진하고 걸쭉한 육수 속에 가느다란 면과 부드러운 돼지 대창이 듬뿍 들어 있는 ‘다창미엔시엔 (大腸麵線)’ 일명 곱창국수는 우육면과 함께 관광객이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타이완 대표 면 음식으로 손꼽힙니다.
우육면부터 다창미엔시엔, 타이완 전통 디저트인 파인애플을 가득 넣은 파인애플 케이크, 펑리수(鳳梨酥), 육즙이 팡팡 터지는 샤오롱바오 (小籠包)까지 모두 먹거리 천국 타이완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타이완 대표 음식 자리에 어쩌다 보니 밀가루 음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지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벼농사를 하기에 최상의 기후, 비옥한 토지, 깨끗한 물을 보유한 타이완은 쌀이 주식인 나라였습니다.
혹자는 쌀을 주식으로 먹던 타이완에 밀가루 음식이 본격적으로 넘어 온 것은 국부천대 이후라고 말합니다.
즉 밀가루를 반죽해 찜통에 쪄내는 전통 찐빵인 ‘만터우(饅頭)’와 국수 등 밀가루 음식을 주식으로 여기던 중국 동북부 지역 출신 중화민국 군인들이 국부천대 이후 중국에서 타이완 섬으로 건너오며 밀가루 음식이 타이완 섬에 전파됐고,
이를 계기로 청나라 때부터 타이완에 거주하며 밀가루가 아닌 쌀을 주식으로 먹던 이들이 국부천대 이후 타이완으로 넘어온 중국 동북부 출신 군인들에 영향을 받아 국수 등 밀가루 음식을 접하며 밀가루 음식에 친숙해 졌다고 혹자는 말합니다.
타이완을 대표하는 우육면을 예로 이 육수, 면, 고기 고명의 조화가 인상적인 우육면은 국부천대 이후 타이완으로 넘어온 중국 동북부 출신 군인들의 애환이 서린 밀가루 음식입니다.
따라서 우육면만 놓고서 보면 타이완인들이 본격적으로 밀가루 음식을 접하고 친숙해지게 된 계기가 국부천대 이후라고 유추해 볼 수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아닙니다.
쌀이 주식이었던 타이완에서 밀가루가 대중에게까지 친숙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밀이 타이완인들의 식탁에서 인기 품목이 된 것은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시작되면서 미국으로부터 밀가루를 대량으로 수입한 이후의 일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이후 승전국이었던 미국은 1950년대 들어 농산물 호황으로 가격 급락을 겪자, 이를 수매해 타이완, 한국, 일본 등 자유진영 빈국(貧國)에 지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미국의 식량원조 배경에는 전쟁 종식 후 미국의 골칫거리였던 잉여 농산물의 해외 소비량을 늘리고 대외관계를 향상시키려는 취지로 만들어진1954년 발효된 미국의 '농산물수출원조법' 일명 미국 공법 480호가 있습니다.
미국 공법 480호가 발효되며 1954년 이후부터 미국 잉여 농산물이 대량으로 타이완 국내로 수입되기 시작했고, 미국 농산물 원조의 대부분은 밀, 옥수수, 담배, 분유 등이었습니다. 미국의 잉여 농산물 원조 이후 타이완 국내 경제는 이를 재차 가공·판매하는 경공업 위주의 밀가루·면직물 산업을 발달시켰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그동안 쌀을 주식으로 먹던 타이완인들에게 미국에서 들여온 밀가루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쌀이 주식이던 타이완 국내에서 밀가루 소비가 증가한 데는 정부의 역할이 컸습니다.
밀가루 소비 증진을 위해 미국과 타이완 정부 그리고 제분 업자들은 손을 잡고 1962년 ‘타이완지역 밀가루 식품 보급 위원회(台灣區麵食食品推廣委員會)’를 설립하고, 이 범 국가적인 위원회에서는 식생활 개선이라는 명목 하에 밀 소비를 증진하는 밀가루를 주제로 한 다양한 쿠킹쇼를 선보이며 밀가루 홍보에 나섰고, 또 당시 영양학자들은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해 ‘밀가루를 먹으면 키가 더 큰다’와 같은 밀가루가 쌀보다 영양가가 높다는 밀가루를 예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밀가루에 익숙하지 않고 또한 밀을 꺼려하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밀의 영양학적 좋은 면을 부각시키기도 그리고 ‘이미엔다이미(以麵代米)’ 즉 ‘쌀 대신 국수를 먹자’라는 정책을 정부에서 주도하며 밀가루 음식의 지위는 자연스레 상승했고, 미국이 원조물자로 보내준 밀가루 포대가 타이완 지천에 널림에 따라, 그때 그 시절 밀가루 포대를 찢어 속옷 대용으로 입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밀가루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타이완의 인스턴트 라면 산업의 등장입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의 안도 모모후쿠가 1958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역시 미국의 잉여물 원조 농산물 밀을 활용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미국에 의해 구호품으로 풀린 밀을 어떻게 소비할까 하는 일본인들의 고민이 녹아 있었던 것인데요. 같은 배경을 둔 타이완의 경우 일본 기술을 도입해 퉁이(統一) 기업이 1970년 3월 29일 처음 국내에 인스턴트 라면을 출시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시작되면서 밀은 타이완인들의 입맛을 바꾸기 시작했고,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는 장기적으로 쌀 주식이었던 타이완인들의 입맛을 변화시키며 타이완은 소위 ‘밀의 덫(wheat trap)’에 빠지게 되어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중지된 이후에도 상업적 무역을 통해 미국, 호주 등에서 밀가루를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시작된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는 타이완인의 입맛을 바꾸는데 성공했고, 미국이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원조가 폐지된 후에도 타이완은 미국으로부터 밀가루를 여전히 수입하고 있습니다. 다만 타이완은 과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에스와티니, 아이티, 니카라과 등 우방국에게 쌀을 원조하는 국가로 바뀌는 등 괄목한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오늘 랜선미식회에서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음식인 우육면, 샤오롱바오에 빠질 수 없는 밀가루가 타이완인의 식탁을 언제부터 점령하게 됐는 지, 밀가루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더욱 흥미로운 소식으로 다시 찾아 뵐 것을 약속 드리며, 오늘 엔딩곡으로 천스안(陳勢安)의 작은 행복(小幸福)을 띄어드리며 랜선미식회시간을 마치겠습니다. 이상으로 Rti한국어방송의 손전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