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처제삼해(周處除三害, The Pig, the Snake and the Pigeon)>는 한 조폭이 개과천선하는 이야기를 담은 범죄액션 영화입니다. 혼자 수류탄을 갖고 적대 조직 도박장에 들어가 총알 한 발로 상대방 두목을 죽이는 등 과감하고 기발한 행동으로 조폭계에서 이름을 날린 천궤이린(陳桂林)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아 절망에 빠져 경찰서에 자수하려고 할 때 자신이 경찰서 지명수배자 명단에 랭킹 3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름을 더 널리 알려 사후에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기 위해 자수하기 전에 지명수배자 리스트의 1위와 2위를 각각 차지한 녀우터우(牛頭)와 샹강자이(香港仔)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3위를 차지한 천궤이린(롼징톈阮經天 역) - 사진: ‘周處除三害’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이 영화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송나라 출신의 문학가인 임천왕 유의경(臨川王 劉義慶 403-44)이 지은 일화집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온 인물인 주처(周處)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주처는 삼국시대 오나라와 서진의 인물로, 아버지 주방(周魴)은 태수를 지내는 등 양반세문의 자제였으나, 아버지가 자신이 어렸을때 죽어 삐뚤어지게 자라는 바람에 난폭하고 야만행위를 자행하는 망나니가 되어버려 남산의 호랑이, 장교(長橋)의 교룡과 함께 삼해(三害)라고 불릴 정도로 마을에서 혐오와 두려움의 존재였습니다. 삼해 중에 주처의 횡포가 가장 심해 참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주처에게 호랑이와 교룡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며 그 과정에서 주처가 죽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주처는 호랑이와 교룡 처치에 성공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기쁨보다 실망이 가득한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주처는 마을 사람들의 제일 큰 걱정거리는 남산 호랑이도 장교 교룡도 아닌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고 심하게 부끄러움을 느껴 마음을 고쳐먹고 뛰어난 학자가 됐습니다. 이 이야기는 ‘주처제삼해’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문 원제 뿐만 아니라, 영화의 영문 제목 ‘The Pig, the Snake and the Pigeon’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The Pig, the Snake and the Pigeon’은 ‘돼지, 뱀과 비둘기’라고 뜻하는데, 이 세 가지 동물은 불교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인 탐(貪)•진(瞋)•치(癡)를 상징합니다. 탐진치는 불교에서는 삼독(三毒)이라고 하며, 이 삼독 때문에 중생은 고통과 무지 속을 헤메고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해석됩니다. 탐은 탐욕(貪欲)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사람에 욕심을 내어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탐’을 상징하는 동물은 비둘기입니다. 비둘기는 서양에서는 널리 평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새의 일종으로서 장의 길이가 짧아 소화 속도가 빨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먹이를 먹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불교에서는 탐욕의 상징으로 여겨져 있습니다. 또 진은 진에(瞋恚)입니다. 싫어하는 사람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 때문에 미워하고 화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진’을 상징하는 동물은 강한 공격성이 강조되는 뱀입니다. 그리고 치는 우치(愚癡)입니다.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말하는데, 상징 동물은 돼지입니다.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2위를 차지한 샹강자이(위안푸화袁富華 역) - 사진: ‘周處除三害’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불교 삼독을 의미하는 세 가지 동물은 영화에서는 3대 지명수배자를 상징합니다.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1위를 차지한 녀우터우는 등에 비둘기 문신이 있으며, 자신의 죽음을 속이고 사이비종교를 창설해 신도들의 재산과 돈을 갈취합니다. 지명수배 순위 2위에 오른 샹강자이는 수많은 총격 범죄를 저지른 홍콩 출신 조폭으로 손에 뱀 문신이 있으며, 1초 전까지만 해도 웃다가 술병을 들고 부하 머리를 때릴 정도로 성정이 혹독하고 포악하며 변덕스럽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할머니가 준 돼지 모양의 시계를 매고 다니는 천궤이린은 삶의 의미를 모른 채로 살아오고, 자기가 곧 죽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죽은 후 세상에 잊혀질까 봐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등 어리석은 행동을 많이 하는 캐릭터입니다. 탐진치 삼독과 그에 따른 악념에 지배된 세 명 악인은 모두 사망하거나 체포되는데, 그들의 비극적 결말엔 어느 정도의 교육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1위를 차지한 녀우터우(천이원陳以文 역) - 사진: ‘周處除三害’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영화 주인공 천궤이린은 갱스터 영화 ‘맹갑(艋舺)’과 로맨스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命中注定我愛你)’, ‘패견여왕(敗犬女王)’ 등 작품으로 팔색조 같은 연기를 선보이며 중화권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타이완 배우 롼징톈(阮經天)이 맡았으며, 이 캐릭터는 1980년대 타이완에서 이름을 떨쳤던 조폭 류환롱(劉煥榮)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류환롱은 타이완 3대 조폭조직 죽련방(竹聯幫)의 멤버로 조폭 두목 여러 명을 총살한 ‘킬러’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체포돼 타이완에 이송되고 법원 재판을 거쳐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사형 집행 전 감옥에 구금됐던 7년 동안 속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서 판매하고 그 돈으로 많은 기부를 했습니다. 사형 집행 당일에 “국가와 사회에 미안하다”고 외친 후 망설임없이 사형장에 걸어 들어간 모습과 사망 후 장기가 기증돼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준 것도 많은 타이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주처제삼해>는 배우 연기가 뛰어나고 스토리가 탄탄할 뿐만 아니라, 액션 장면이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남쳐 관객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안겨주기 때문에 타이완 액션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작품이라며 관객과 평론가의 호평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감독 황징푸(黃精甫)는 홍콩 출신 감독이라서 <주처제삼해>는 흉악한 조폭들끼리의 충돌과 싸움 외에, 조폭과 경찰 간의 대립 관계지만 성격과 사상에 공통점이 있어 서로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남성 간의 묘한 유대관계와 같은 홍콩 느와르 영화에 자주 나오는 요소도 많이 융합되어 영화에 감정적 깊이와 풍부함을 더했습니다.
천궤이린을 오랫동안 추적해온 경찰 천훼이(리리런李李仁 역) - 사진: ‘周處除三害’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주처제삼해>는 개봉 사흘 전에 공개된 2023 제60회 금마장(金馬獎) 영화시상식 부문 후보 명단에서 감독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시각효과상, 액션디자인상, 음악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개봉 전부터 이미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과 기대를 받았고, 개봉 후에도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평과 응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25일에 개최되는 금마장 영화시상식에서 <주처제삼해>는 과연 얼마나 많은 수상의 영광을 가져갈 수 있을지 금마장 공식 유튜브 채널의 라이브 생중계를 본방사수하시면 실시간으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오늘의 소개는 여기서 끝마칩니다. 엔딩곡으로 <주처제삼해>의 영화 OST, 인디밴드 믹서(麋先生, Mixer)의 <나쁜놈(壞蛋)>을 띄어드리면서 연예계소식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RTI한국어방송의 진옥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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