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양인 감독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감독 중 하나를 꼽자면 리안(李安) 감독을 빼놓 수 없습니다. 타이완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는 리안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 등 시상식에서 최고상을 받은 세계 정상급 영화감독으로 <브로크백 마운틴>, <와호장룡>, <라이브 오브 파이> 등의 대표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아시아인 감독 최초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이자 베를린영화제 최고상을 두번 수상한 유일한 감독입니다.
리안 감독은 지금 동양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서구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할리우드 주류 영화계에 진입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서기 전에 제작한 <쿵후 선생(推手)>, <결혼 피로연(囍宴)>, <음식남녀(飲食男女)> 등 작품은 서구 세계에 동양을 소개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타이완을 비롯한 동양적인 정서와 분위기를 잘 살립니다. 이 세 편 리안 감독의 초기 수작은 모두 타이완 배우 랑슝(郎雄)이 연기한 아버지를 시작해서 동양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흔히 리안 감독의 ‘아버지 삼부작‘ 혹은 ‘가족 삼부작‘으로 불립니다.
1990년 37세였던 리안은 시나리오 두 편으로 중화민국 행정원 신문국이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1등과 2등상을 휩쓸었습니다. 이 두 편 시나리오는 바로 ‘쿵후 선생’과 ‘결혼 피로연’입니다. 그중 ‘쿵후 선생’은 타이완중앙영화주식회사(CMPC)의 지원 아래 영화로 만들어지고 1991년에 상영되었습니다. 이로써 리안은 장편 영화감독으로 정식으로 데뷔하였습니다. <쿵후 선생>은 중국 베이징에 살던 태극권 교수 주(朱)선생은 은퇴 후 미국인과 결혼한 아들과 살기 위해 뉴욕으로 건어오지만, 의사소통 곤란과 문화 차이, 생활방식의 다름으로 인해 진정한 가족이 되는 데 여러움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쿵후 선생(推手)> - 사진: Enjoy Movie
이 영화의 중국어 원제‘推手(추수)’는 태극권의 한 기술로 상대방의 자세를 부드럽게 맞받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추수‘는 영화 제목으로 주인공 주선생의 취미이자 특기인 태극권을 상징하면서, 가족이 함께 어울리는 데 태극권하는 것처럼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부드러우며 절묘하게 규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쿵후 선생>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영화시상식 제28회 금마장(金馬獎)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 외에도, 베를린영화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휴스턴영화제 등 30개가 넘는 해외 영화제에 진출했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데뷔작 <쿵후 선생>으로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데 이어, 리안은 또 <결혼 피로연>으로 금마장 최우수영화상과 최우수감독상, 베를린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으며,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스타감독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결혼 피로연>은 동성애자의 결혼과 가족애를 다룬 영화입니다. 극중 주인공 뉴욕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타이완 청년 웨이퉁(偉同)은 미국인 남자친구 사이먼과 동거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웨이퉁의 부모님은 자주 편지를 날려 결혼과 손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웨이퉁은 사이먼과 연인 사이를 유지하면서도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기 위해 자기가 관리하는 건물에 세들어 사는 여인 웨이웨이(威威)와 위장결혼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아들의 결혼 소식에 뉴욕까지 찾아온 부모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 피로연까지 치르게 됩니다. 세 사람의 완벽한 연기로 위장결혼은 성공한 듯 보였지만, 결혼 피로연에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사고로 그들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결혼 피로연(囍宴)> - 사진: Enjoy Movie
이 영화는 주로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 대중들이 대개 금기시하고 있었던 동성애이고, 다른 하나는 복잡한 결혼의식부터 꼭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 사람들이 벗어날 수 없었던 다양한 전통문화와 윤리관습입니다. 1993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동성애는 지금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이 영화는 과감하게 동성애를 묘사하며 훈훈하고 감동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동성애 가정을 향한 대중적인 포용에 대한 리안의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타이완인 가족의 이야기지만 무대는 미국 뉴욕인 <결혼 피로연>과 달리 마찬가지로 타이완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는 리안의 다음 작품 <음식남녀>는 1990년대 타이완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설정했습니다. <음식남녀>는 유명 호텔 주방장 출신의 아버지와 세 딸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영화입니다.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말은 중국의 고전 예기(禮記)「예운(禮運)편」에 “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음식과 남녀엔 사람의 큰 욕심이 존재한다)"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어,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가장 본능적 욕정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음식남녀>는 역시 각 인물들의 일상과 추구하는 이상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본연 욕구인 식용과 성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삶과 충돌을 통해 연령과 직업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을 지닌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습니다.
<음식남녀(飲食男女)>- 사진: Enjoy Movie
<음식남녀>는 요리영화로 착각할 정도로 영화 곳곳에서 다양한 요리장면과 샤오롱바오(小籠包), 동파육 등 중화 음식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 영화 주인공 주(朱)사부는 타이완의 국빈들이 즐겨 찾는 원산대반점(圓山大飯店, 그랜드 호텔)의 유명 요리사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원산대반점의 화려한 인테리어와 국빈만찬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타이베이에서 촬영됐으므로 원산대반점 외에,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타이베이식물원 등 타이베이 저명 관광명소도 영상에 담겨 있는데, 외국에 타이완을 소개하는 데 큰 기여를 했던 영화입니다.
리안 감독의 ‘아버지 삼부작’을 연이어 살펴보면서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고 타협하고 수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런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평화로운 대화를 통해서 가족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하면 가족 관계도 훨씬 더 탄탄해지고 갈등은 아예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타이완 출신 감독 리안의 초창기 작품인 ‘아버지 삼부작’에 대해서 소개해드렸습니다. 마무리곡으로 <음식남녀>의 삽입곡 ‘世間情歌(세상의 연가)’를 띄어드리면서 연예계소식을 마치겠습니다. 진옥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