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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역사... 228사건과 백색테러를 다룬 영화 - <호남호녀>

  • 2023.02.23
연예계 소식
228사건과 백색테러를 다룬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작품 '호남호녀(好男好女/ Good Men, Good Women, 1995)' - 사진: 국가 영화 및 시청각 문화센터(國家電影及視聽文化中心) 제공 via CNA

다음 주 화요일 2월 28일은 타이완 228사건 76주년입니다. 228사건은 1947년 담배단속으로 야기된 반정부 봉기를 국민당 정부에서 폭력으로 진압한 사건입니다. 담배는 일제시대부터 2002년 1월 1일 전매 제도가 폐기될 때까지 국가가 독점해 유통이 통제되는 전매품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 정부는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 전매국(專賣局)을 설치하고 담배를 포함해 아편, 소금, 장뇌(樟腦), 주류 등 민생물자의 전매 사무를 관장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타이완을 접수한 국민당 정부는 전매 제도를 이어받아 더욱 강력하게 실시했습니다. 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 소재하는 티앤마다방(천마다방, 天馬茶房) 앞에서 불법 담배를 판매하던 린쟝마이(林江邁)라는 여성을 전매국 단속반원이 총살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다음날 전매국과 공서 앞으로 물려가 시위를 벌였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고 여러 명의 시민들이 진압 과정에서 숨지자 시위는 폭동으로 번지고 전국적으로 확대됐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일어난 사건은 타이완 전역 민중들을 흥분시켰고, 타이완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228사건'입니다. 228사건 이후 정부의 계엄령 반포와 함께 타이완은 소위 ‘백색테러’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228사건 발생 76주년을 맞이해 타이완 영상 문화 자산 보존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가 영화 및 시청각 문화센터(國家電影及視聽文化中心)에서는 ‘영화의 기억: 잊혀지지 않는 역사(電影記憶:不曾遺忘的歷史)’ 228특별 프로젝트를 주제로 내일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228사건과 백색테러를 다룬 영화 3편 ‘비정성시(悲情城市/ A City of Sadness, 1989)’, ‘호남호녀(好男好女/ Good Men, Good Women, 1995), 그리고 ‘슈퍼 시티즌 코(超級大國民/ Super Citizen KO, 1995)를 방영합니다.

 ‘슈퍼 시티즌 코’를 뺀 나머지 두편의 영화는 모두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의 거장 감독인 허우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의 작품입니다. ‘비정성시’는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으로서 타이완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광장히 유명했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최초로 228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로, 영화는 중화민국 시대 초기에 일어난 중대한 역사 사건과 당시 타이완의 사회적 양상을 주인공 가족들의 삶을 통해서 보여줬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저는 지난 방송에서 이미 소개했으니 오늘은 허우샤오시엔의 또 다른 228사건 및 백색테러를 다룬 영화인 ‘호남호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호남호녀’는 란보저우(藍博洲) 작가의 소설 <황마차의 노래(幌馬車之歌)>를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이 영화는 백색테러 피해자 중하오둥(鍾浩東)-장비위(蔣碧玉) 부부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영화는 타이완 가장 권위있는 영화시상식인 제32회 금마장(金馬獎) 감독상, 각색상, 녹음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제48회 칸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중하오둥은 중하계층 시민들의 실생활과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작가로 유명한 하카족 출신 작가인 중리허(鍾理和)의 동생이고, 그의 아내 장비위는 민주 운동가이자 항일 선열인 장웨이수이(蔣渭水)의 양녀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자란 중하오둥은 어렸을 때부터 일본식 교육을 받았으나 타이완인들이 일본 정부의 차별대우를 겪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에 대한 반항심이 점점 커지게 됐습니다. 1940년 중하오둥은 중국의 항일 투쟁에 힘을 보태려고 아내 장비위와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국민 정부에게 ‘일본 간첩’으로 오해받아 6개월 동안 구속됐습니다. 1945년 항일전쟁 종료 후 중하오둥 부부는 중국 광둥에서 사회운동을 하면서 국민당 정권의 부패와 타락을 보고 매우 실망하여 정치태도를 점점 좌익으로 전향했습니다. 1946년 그는 타이완으로 돌아와 지룽고등학교(基隆中學) 교장을 맡았고, 이듬해 228사건에서 국민당 군부대의 폭력 진압을 목격하고 국민당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고 중국공산당 지룽고등학교 지부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국민당 정부에 발견돼 1950년 10월 14일 총살형을 당해 일생을 마쳤습니다.

영화의 원작소설의 제목인 <황마차의 노래>는 중하오둥 부부가 생전에 매우 좋아했던 일본어 노래입니다. 가사를 번역하면 “해질 무렵 나뭇잎이 흩날리는 길에서 당신이 타는 마차가 점점 멀리로 사라졌어요(黃昏時候,在樹葉散落的馬路上,目送您的馬車,在馬路上幌來幌去地消失在遙遠的彼方)/ 추억이 가득한 언덕 위에서 다른 나라의 하늘을 바라보며 꿈에서 보냈던 그 1년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려 버렸어요(在充滿回憶的小山上,遙望他國的天空,憶起在夢中消逝的一年,淚水忍不住流了下來)/ 마차 소리가 너무 그리워요. 지난해 당신이 타는 마차가 떠날 때 영원하게 이별하게 된 줄 몰랐어요(車的聲音,令人懷念,去年送走你的馬車,竟是永別)”라는 내용입니다. 중하오둥은 형장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이후 이 노래는 당시 사형을 당하러 가는 ‘혁명 지사’를 배웅할 때 부르는 노래가 됐습니다.

호남호녀는 여주인공 량징(梁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영화는 크게 세 개의 스토리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1990년대의 타이베이, 즉 현대를 배경으로 하여 영화 <호남호녀>의 주연을 맡게 된 여배우 량징(梁靜)의 편치 않은 사생활을, 하나는 1980년대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하여 량징과 죽은 남친 아웨이(阿威)의 사랑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두 스토리라인 모두 컬러 화면으로 나옵니다. 나머지 스토리라인은 1940년대, 50년대의 중국과 타이완을 배경으로 하여 량징이 호남호녀에서 연기한 장비위와 남편 중하오둥의 이야기를 재현합니다. 이 스토리라인은 컬러가 아닌 흑백 화면으로 나옵니다. 이 영화는 영화적인 허구와 현실을 흑백과 칼러 화면 속에 대비시키며 타이완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줍니다.

영화 OST 중에 ‘금포은(金包銀)’이란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는 운명의 불공평을 원망하는 노래였습니다. 노래에는 “남의 말은 다 예쁘고 소중한데, 나는 말이 너무 많으면 나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別人呀若開嘴 是金言玉語 阮若是加講話 唸咪就出代誌)”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가사는 영화에서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백색테러 시기에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크게 억압됐습니다. 당시 국민당 정권을 부정하는 말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좌파 사상을 나타내는 말을 하고 사회운동을 조직하는 사람은 ‘반정부 인사’로 낙인되어 정치적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말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잡혀갈 수 있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말이 너무 많으면 나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는 그 당시 타이완인들의 심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228사건은 발생한 지 이미 70여 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타이완인, 특히 228사건을 실제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가슴에 애절하게 기억되고 있고, 저 같은 당시 시대 사람이 아닌 타이완인들도 228사건과 관련된 역사 자료와 228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228사건의 전개 및 후속 영향과 백색테러 시기의 사회적 양상에 대해 엿볼 수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228사건으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더 이상 228사건과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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