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의 정수 <비정성시>를 말하다

  • 2021.04.14
수요 산책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를 이끈 우 녠 전(왼쪽부터), 허우 샤오 셴, 양 더 창, 천 궈 푸, 잔 홍 즈 등 영화인들의 30년 전 모습. [사진=Mirror 미디어 제공]

타이완 신 랑 차오 新浪潮 영화’ 즉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란 1980년대 등장한 타이완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타이완 영화 산업은 사실 80년대 전까지 애국주의ž반공 등 정치적인 색깔이 뚜렷했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계엄령 해제 등 타이완 사회의 민주화 물결을 타고 우 녠 전吳念真, 허우 샤오 셴侯孝賢, 양 더 창楊德昌, 천 궈 푸陳國富, 잔 홍 즈詹宏志 등 이른바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인들로 인해 타이완영화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특히 80년대 후반 당시 타이완 영화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허우 샤오 셴감독과 양 더 창 감독을 비롯한  젊은 타이완 영화인들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인들의 작품 속에선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들을 발견 할 수 있죠. 당시 신세대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인들은 애국주의‧ 반공정신 고양 등을 다룬 기성세대의 영화를 거부하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치 기록영화처럼 담담하게 필름 속에 담아냅니다.

그중 허우 샤오 셴 감독의 <비정성시>는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의 미학적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인데요. 영화 <비정성시>는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51년간의 식민 지배 통치에서 해방된 순간부터 국공내전에서 밀려난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건너오는 1949년까지 타이완의 슬픈 현대사를 린씨 일가 4형제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는데요.

1989년에 만들어진 영화 <비정성시>는 그해 개최된 제46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의 힘을 세계에 알렸고, 허우 샤오 셴 감독은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르게됩니다. 또한 <비정성시>는 2.28 사건을 최초로 다룬 작품이어서 중화권에선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희생자 수만 2만 여명에 이르는 2.28사건은 타이완 현대사가 낳은 최대의 비극이자 타이완 민주화 이전까지 철저히 봉인된 암울한 역사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비견되기도 하죠. 1947년 차별대우에 반발한 타이완 본성인들을 진압하면서 발생한 2.28사건은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결코 기억해서도 입밖에 꺼내서도 안 되는 ‘금기어’ 였습니다.

계엄령이 해제 되었지만 모두가 여전히 쉬쉬하던 그 시절 그러나 허우 샤오 셴 감독은 이 사건을 <비정성시>를 통해 재조명합니다. 무모하고 용감하며 또한 당시로서도 굉장히 파격적이었던 허우 감독의 <비정성시>,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기도 하죠.

허우 감독은 <비정성시>에서 당시 정부를 원망하거나 비판하기 보단 객관적으로 2.28 사건을 표현했습니다. 관객들에게 ‘이런 사건이 우리 역사에 존재 했다’, ‘당시엔 이랬구나’ 등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비극적인 사건인 2.28 사건의 살을 덧붙이지 않고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아내려 노력했는데요.

영화 ‘비정성시’ 촬영현장에서의  허우 샤오 셴 감독(오른쪽).  [사진=Up미디어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상캐하는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의 정수 <비정성시>의 첫 장면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시작합니다. 그 암흑을 깨고 힘 하나 없는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항복 선언을 하는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요. 오래된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히로히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지룽 린씨 가문의 장남 원슝은 출산하는 아내를 위해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켜면서 화면은 환하게 바뀌고… 동시에 아기의 우렁찬 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해방과 아기의 탄생, 영화는 이를 통해 타이완과 린씨 가문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데요.

영화 <비정성시>의 중심이 되는 지룽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린아루林阿祿에겐 아들이 넷이있습니다. 장남 원슝文雄은 장사를 하며, 첩 사이에서 아들 ‘광밍光明’을 낳았고, 차남 원선文森은 공부를 잘해 의사가 되었지만 일본에 군의관으로 징용을 간 후 소식이 끊겼고, 셋째 원량文良은 중국 상해에서 타이완으로 돌아온 뒤 밀수 범죄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고 지독한 고문을 받습니다. 장남 원슝이 밀수업자를 만나 원량의 석방을 부탁해서 겨우 겨우 풀려난 원량은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폐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넷째 원칭文清은 여덟 살 때 불의의 사고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되어 린아루에겐 아들 가운데 가장 아픈 손가락인데요.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성실한 청년 원칭은 세상을 탓하지 않고 기술을 배워 사진관을 운영합니다.

한편, 장남 원슝과 막내 원칭은 셋째 원량을 배신하고 밀고한 상하이 조직원에게 크게 분노합니다. 장남 원슝은 동생 원량을 반미치광이로 만든 상하이 조직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그들과 혈투를 벌이지만 결국 그들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지 불과 1년 린아루의 장남은 살해당하고, 차남은 징용을 간 후 사망했고, 셋째는 모진 고문으로 폐인이 되었고. 다행히 막내 아들 원칭은 평범하게 지냅니다.

그러나 스토리는 점점 가혹한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2.28 사건이 발생하자 원칭은 반체제 지식인이었던 친구 우콴룽吳寬榮과 시위 행렬에 참여하기 위해 함께 타이베이로 향하기도 하고, 투쟁하는 지식인 친구들에게 비밀리에 자금과 장소를 제공해주기도하죠. 시간은 흘러 반정부 투쟁을 하던 동지들이 하나 둘 잡혀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콴룽의 여동생 우콴메이吳寬美와 결혼해서 아들까지 낳은 원칭, 그러나 오빠 우콴룽이 잡혀가 이미 죽었을거란 소식을 들은 우콴메이는 크게 상심하죠,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얼마 뒤 남편 원칭 역시 끌려가고 소식이 끊기는데요.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 화면에는 여러 사람이 각자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비춰집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모습의 린아루와 그의 맞은 편에는 모진 고문으로 여전히 정신이상 증상을 앓고 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셋째 아들 원량이 그리고 장남 원슝의 아들이 함께 밥을 먹는 장면과 함께 라디오 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1949년 12월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온다는 소식으로 영화는 마무리 되는데요.

1945년부터 1949년까지 2.28사건 등 비극적인 사건들로 4년 사이 린아루는 아들 셋을 잃고 한명은 정신이상자가 되었습니다, 린아루 가족을 중심으로한 <비정성시>는 역사교과서 같이 당시 비극과 슬픔이 차고 넘치던 타이완의 근대사를 담담하게 기록해 담았습니다.

양조위라는 배우를 본격적으로 알린 영화로도 유명한 <비정성시>, 영화 속 막내 원칭 배역을 맡은 양조위의 20대 시절 모습은 정말 풋풋한데요.

이번 주말에는 리즈 시절의 배우 양조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의 정수 <비정성시>를 다시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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