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디오라마 작가 정홍잔

  • 2021.04.07
타이완을 대표하는 디오라마 작가 정홍잔. [사진= 정홍잔 페이스북 캡처]

수요산책시간입니다.

책은 도통 보이지 않고 책장과 진열대에는 로봇 건담부터 울트라맨, 도라에몽 등 피규어로 가~득차있습니다. 또 방구석은 도데체 언제 청소를 한건지~ 방바닥에는 피규어를 담았던 박스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고, 벽에는 피규어 조립 설명서와 포스터들이 덕지덕지 붙어습니다. 책상에는 만들다만 피규어까지...이 정신사나운 방!! 방주인분 어머니께서 보신다면 ‘방구석 안치우냐?’하고 등짝 맞을 것 같은데, 스타워즈의 스톰 트루퍼  코스튬 의상을 입고 책상 앞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방주인을 보니 제가 다 심장이 쫄리는데요.

[사진= 小世界周報 제공]

스톰 트루퍼 분장을 하신 이분이 앉아 있는 의자에 걸려있는 청바지는또 얼마나 오랫동안 세탁을 안 한건지…빳빳하게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이마를 탁치는 순간!! 갑자기 창문 밖에서 거대한 손이 하나 쓱~하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창문보다 더 커다란 얼굴이 보이는데요. 

마치 지저분한 동생의 방을 떠올리게 하는 이 피규어들로 가~득찬 방은… 사실 실제 크기보다 1/6 크기로 축소한 디오라마 작품인데요. 이 디오라마 작품의 이름 만다린어로는 '아자이더팡젠宅男的房間' 한국어로는 <집돌이의 방>인데요. 어머니께서 방 좀 치우라고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올것 같은…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방을 극 사실적으로 재현해낸 디오라마 작품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디오라마 작가 정홍잔 鄭泓展의 작품인데요.

작품 <집돌이의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얼굴은  정홍잔 작가 본인이다. [사진= UPMEDIA 제공]

디오라마 작가라는 직업 생소하시죠? 디오라마는 근대 이후 유럽 귀족들이 테이블 위에 인형 등을 올려놓고 역사적인 전투장면을 재현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쉽게 설명드리자면 디오라마는 역사적인 사건의 한 장면이나 자연 풍경, 영화 속 한 장면을 축소된 모형으로 정교하게 재연한 것인데요, 그래서 미니어처 등'모형왕국'이라고도 불리는 일본에서는 모든 장면을 생생하게 재연해내는 디오라마를 '정경모형情景模型' 이라고도 부르기도하죠.

보통의 디오라마 작가들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 또는 역사적인 사건, 풍경 사진 등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정홍잔 작가님은 자신의 추억 속 한 장면을 축소된 모형의 담아냅니다.  정홍잔 작가님은 소중한 기억을 사진이나 일기장 속에 쓴 한 줄로 그때 그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아닌… 2차원의 추억 속 한 장면을 마치 살아 숨쉬는 것 같은 3차원의 디오라마로 구현해 내는데요.

정홍잔 작가님의 작품 가운데 <시바킨 장어집芝金中店.鰻屋>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지는… 모든 이들의 정서적인 공감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시바킨 장어집>은 정말 딱 봐도 ‘나는 장어구이 맛집’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오랜 전통이 느껴지는 장어구이 가게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인데요. 정홍잔 작가님이 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신 분!! 바로 바다 건너 일본에 계신 시바킨 장어집 사장님이신데요. 타이완과 일본…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분은 장난감 관련 온라인 동호회를 통해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장어집 ‘시바킨’를 운영하시는 시바하라芝原 사장님도 예사롭지 않으신 분입니다…시바하라 사장님은 틴 토이(Tin Toy) 즉 양철 로봇 장인으로 동호회에서 유명하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끼는 양철 로봇들을 한 아름씩 바다건너 정홍잔 작가님에게 보내주셨다고 하는데요. 매번 시바하라 사장님에게 선물을 받기만 했던 정홍잔 작가님, 어떻게 이 감사한 마음을 전할까 고민하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디오라마를 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마음이 따스해지는 작품 <시바킨 장어집>. [사진= 정홍잔 페이스북 캡처]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실제로 시바하라 사장님께서 운영 중인 시바킨 장어집을 배경으로…가게 문 앞에서 수줍게 자신이 만든 디오라마를 들고 계신 정홍잔 작가님 그리고 두 손을 벌리고 함박 웃음을 지으시며 작가님을 반갑게 맞아 주시는 시바하라 사장님의 모습을 3차원으로 입체화한 작품 <시바킨 장어집>은 모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엄지 손가락 크기에 정홍잔 작가님을 재연한 인형에게서는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시바하라 사장님을 재연한 인형의 표정에서는 정말!! 진심으로 작가님을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 주시는 그 마음이 저에게도 느껴졌습니다.

시바킨 장어집 앞에서 시바하라 사장님(좌)과 정홍잔 작가님 모습. [사진= 정홍잔 페이스북 캡처]

작가님과 시바킨 사장님의 우정을 몰래 엿본 것 같은 작품 <시바킨 장어집>은 2016년 3월 일본에서 열린 「제 5회 하마마쓰 디오라마 그랑프리」에서 각각 ‘심사위원평가’ 부문에서 1위!! ‘시민투표’ 1위를 받았으며, 이 대회를 계기로 정홍잔 작가님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타이완과 일본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요. 또한 정홍잔 작가님은 이 그랑프리를 통해 ‘정경모형’의 왕이라고 불리는 야마다 타쿠지山田卓司 작가님과 인연이 닿게됩니다.

야마다 타쿠지 작가(좌)와 정홍잔 작가. [사진= 정홍잔 페이스북 캡처]

디오라마 계에서 신 神이라 칭송받는 야마다 타쿠지 작가님이 마침 ‘하마마쓰 디오라마 그랑프리’에서 심사위원을 맡으셔서 가능한 일이었죠. 야마다 타쿠지 작가님은 작품 <시바킨 장어집>을 보시곤 큰 감명을 받으셨다고 해요. 기교를 부리거나 고급 재료로 만들어진 일반 디오라마와는 달리…오래된 잡지 등을 재활용한 점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등 유행을 쫓기보단 작가 자신의 소울을 축소시킨 3차원 모형의 담은 것에 대해 극찬 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4월 5일까지 타이베이시 화산1914 문화창의원구에서 정홍잔 작가님과 야마다 타쿠지 작가님 두분의 콜라보 전시회가 열렸었는데요.

타이베이 화산1914에서 열렸던 야마다 타쿠지와 정홍잔의 콜라보 전시회. [사진= 정홍잔 페이스북 캡처]

두 분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세라 지난 일요일 화산1914로 향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살짝 후회가 됐습니다…4월 4일은 타이완의 어린이날이란걸 제가 간과한 것이죠. 전시회장에 들어서자 너도나도 작품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작품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는 것이 저도 그렇고 관람객들도 모두 답답하긴 했지만 추억을 끄집어내는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이 잠시나마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추억을 회상하게하는 많은 작품들 가운데 전 개인적으로 야마다 타쿠지 작가님의 작품 <스린 야시장>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스린 야시장의 명물인 타이완 식 치킨까스 맛집 ‘하오다 다 지파이豪大大雞排’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기 때문인데요. 원래 스린 야시장의 오래된 극장 앞에 있던 파란색 간판에 ‘하오다지파이’는 저렴한 가격에 A4용지 크기만한 치킨까스를 먹을 수 있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부터 관광객까지 모두 즐겨 찾던 곳이었는데요. 지금은 극장도 폐업되고 ‘하오다 다 지파이’도 원래 있던 곳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다른 곳으로 노점을 옮겼는데요. 일하시는 분도 같고 맛도 변함없지만… 왠지 새로운 가게 같고 해서 전 예전보단 많이 찾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 ‘하오다지파이’를 떠오르게하는 야마다 타쿠지 작가님의 작품 <스린 야시장>은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작품 <스린야시장>. [사진= 정홍잔 페이스북 캡처]

이번 전시회 놓치셨다고 아쉬워하지 마세요~~ 정홍잔 작가님은 자신의 최신 작품들을 꾸준히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고 계시니깐요!!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하신 작품은 지난 3월 30일 ‘엘리베이터의 갇힌 숙취한 손’이라는 내용과 함께 열린 엘리베이터 틈으로 거대한 손이 나오는 작품을 게재하셨는데요~

정홍잔 작가가 지난 30일 게재한 작품. [사진= 정홍잔 페이스북 캡처]

청취자분들께서도 꼭 페이스북을 통해 정홍잔 작가님이 2차원이었던 자신의 추억을… 마치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3차원의 작은 모형으로 만든 감성적인 디오라마 작품들을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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