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詩 동화책이 되다, 지미의 ‘특별한 선물’

  • 2021.03.17
[사진=JIMMY S.P.A. OFFICIAL SITE 제공]

독일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데미안에 미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으로, 또한 불안과 좌절에 사로잡힌 청춘의 내면을 심도 있게 파고 들며 청소년 필독서로서 청춘 바이블이란 타이틀을 얻었고, 1946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에 헤르만 헤세를 선정하면서 데미안에 대해 “성장에 대해 관통하는 듯 대담한 묘사, 전통적인 인도주의의 이상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고 평가했었습니다.

[사진=RIDI Corp. 제공]

한국 청소년 필독서 데미안,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신 적이 있으시면 공감하실 텐데요~ 여름방학 내내 두꺼운 데미안을 끌어안고 아~~빨리 읽고 독서감상문 써야 하는데 이 난해한 책을 어떻게 하지~하고 한숨을 푹 쉬던 추억. 제아무리 노벨상을 받았다지만 다소 난해한 이중구조와 심오한 문장 등으로 많은 고전문학이 그러하듯이 데미안은 청소년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죠.

언제 가는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하면서도 쉽게 마음이 가지 않아 책장 구석에 꽂아 두었던 데미안, 방탄소년단의 정규 2집 '윙스WINGS'가 헤르만 헤세의 고전 데미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 청소년이 숙제와 어른들의 강요가 아닌 방탄소년단의 곡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서점을 찾아 직접 데미안을 마주하게 한 BTS, 고전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BTS로 인해 데미안 돌풍이 휘몰아쳤는데요.

[사진= 알라딘커뮤니케이션 제공]

청소년 팬들과 다양한 연령층이 고전을 찾아 읽게 만드는 BTS가 만들어낸 나비효과!!

타이완에서도 고전의 재발견을 이끈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동화작가 지미幾米가 만들어낸 지미효과인데요.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이 담겨져 있지만, 그 속에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는 요소들이 녹아 들어 있는 지미의 작품들,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작업하는 타이완이 자랑하는 작가 지미는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는 아기자기한 그림과 소박하고도 꾸밈없는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을 만들어 동양의 '장 자끄 상뻬'로 불리며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그림책 작가인데요.

동화작가 지미幾米.[사진=Openbook 제공]

많은 걸작 가운데 지미를 동화작가로서 정상의 위치에 오르게 한 작품을 꼽자면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가 아닐까 싶은데요.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차갑고 복잡한 도시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녀가 수많은 엇갈림 속 결국 서로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을 찾게 된다는 설레는 사랑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인데요.

바이올린 연주자인 남자, 번역가인 여자. 낡은 아파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둘은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만날듯 하면서도 어긋납니다. 외출할 때면 목적지가 어디이든 여자는 항상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남자는 항상 오른쪽으로 늘 반대 방향으로만 가기 때문인데요.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각자 홀로 공허하고 무료한 날들을 보내는 두 남녀, 그러나 여자와 남자는 서로 믿습니다. 인연이 될 수 있는 시간이 오지 않았을 뿐, 언젠가 인연이 그들에게 다가올 거라고 말이죠.

[사진=JIMMY S.P.A. OFFICIAL SITE 제공]

그런 두 사람이 어쩌다 한 번 우연히 공원 분수대 앞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은 도시의 둥그런 공원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기 위해 연락처를 주고받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종이가 빗물에 젖어 번호는 알아볼 수 없어 연락도 할 수 없고 만나지도 못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옆에 있으면서도, 또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사람을 만나 인사했으면서도 자꾸 어긋나는 절묘한 순간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는데요. 질식할 것 같은 황량한 도시 결국 두 사람은 눈발이 휘날리는 어느 겨울날 도시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케리어를 끌고 길을 나선 여자는 여전히 왼쪽으로, 짐을 어깨에 멘 남자는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길, 두 사람은 이번에도 둥그런 길에서 마주하며, 따뜻한 결말을 맞지 하게 되는데요.

[사진=JIMMY S.P.A. OFFICIAL SITE 제공]

책을 넘기면 왼쪽에는 여자의 이야기가, 오른쪽에는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독자에게 간절히 바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힘을 실어 주는 어른을 위한 힐링 동화책인데요.

1999년 처음 출판된 이후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TV드라마로 옮겨 담아 표현되기도 했고, 연극, 뮤지컬 등 다른 예술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는 폴란드 여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Koniec i początek에 들어있는 시 '첫눈에 반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인데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사진=노벨상위원회 제공]

'그들은 둘 다 믿고 있었다.

순간의 열정이 그들을 만나게 만든 것이라고

그런 확실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훨씬 더 아름 답다'

 그림책 첫 페이지에 인용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첫눈에 반한 사랑'의 시구詩句, 섬세하고 낭만적인 쉼보르스카의 시로 시작되는 책은 다음 페이지를 넘겨 지미 작가의 아기자기한 그림과 만나, 마치 한 편의 설레는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처럼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요.

199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 다소 생소할 수 있던 쉼보르스카의 작품은 지미 작가의 동화책을 통해 고전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작품에 접근 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2003년 개봉한 동명 영화죠 타이완 배우 금성무와 홍콩 배우 양영기가 주연을 맡은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에서도 여자주인공 양영기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 대사 역시 시 '첫눈에 반한 사랑'이였고, 항상 여자주인공 손에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이 들려 있었는데요.

쉼보르스카의 시가 없었다면 지미의 걸작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지미를 통해 쉼보르스카의 고전 시 한 편을 건졌다면 행운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와 그림이 하나로 만나 여러모로 좋은 영향을 주었는데요.

세월이 흘러도 식을 줄 모르는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의 인기, 타이완 이란현宜蘭縣정부는 지미 작가와 협업을 통해 이란 버스 환승터미널宜蘭轉運站에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조형물을 설치했는데요.

[사진=JIMMY S.P.A. OFFICIAL SITE 제공]

바쁘게 움직이는 여행객들 사이에 등을 지고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두 남녀, 그림 책 속에 여행을 다녀온 듯한 감성을 자극하는 조형물은 이란현의 명물인데요.

시와 그림 그리고 공공예술의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준 지미 효과!!

기회가 되신다면, 지미의 동화책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수요산책 시간의 손전홍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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