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부자는 어떻게 살았을까?...루강 구셴롱 가옥

  • 2021.04.06
루강 구씨 가문 고택. [사진= 장화현정부 제공]

타이완은 지리적으로 타이베이에서 가오슝 즉 북쪽에서 남쪽 순으로 「지룽基隆씨가문」, 「반차오板橋씨가문」、「우펑霧峰씨가문」, 「루강鹿港씨가문」, 「가오슝高雄씨가문」 등 5대 재벌 가문이 있습니다. 타이완의 이 5대 재벌 가문은 현재도 지역사회에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타이완의 근•현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오늘 레트로 타이완 시간에서는 작은 규모의 잡화상으로 시작해 일제시기 큰 재산을 모으고, 가장 늦게 타이완 5대 재벌에 이름을 올린 루강 구씨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하는데요. 그런데 이 루강 구씨 가문 낯설지 않으시죠?... 맞습니다 지난 주 레트로 타이완 시간에서 소개해 드렸던 ‘타이베이 시펑’을 지어 타이완의 전통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앞장섰던 재벌 총수 故 구전푸 타이니 그룹 회장이 바로 일제시대 부를 축적해 루강 구씨 가문을 타이완 5대 재벌에 이름을 올린 구셴룽 선생의 아들인데요. 타이완 최대 시멘트 기업인 타이니 그룹의 구전푸 회장과 그의 조카인 타이완 중국신탁상업은행의 故 구롄송 회장은 루강 구씨 가문 1대 구셴룽 선생에게 함께 물려 받은 가족재산을 흥청망청 쓰지 않고 기업을 타이완 굴지의 거대 그룹으로 키웠습니다.

구씨 가문이 살던 고택은 타이완 중남부지역 장화에서 서쪽으로 15km 떨어진 루강에 위치해 있습니다. 루강은 중국 본토 푸젠福建성省 저우泉州와 타이완해협을 사이로 마주 선 타이완 중심부에 위치한 항만으로 청나라 시기부터 중국 본토와 광범한 무역이 이루어졌고, 나아가 췐저우 상인들이 루강 지역에서 녹각 등을 사들여 중국 본토에 팔아 큰 수익을 남기면서, 중국 푸젠성의 한인들이 대거 루강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요. 또한 푸젠성 상인층이 급증하게 되면서 당시 루강 거리에는 푸젠성의 생활양식이 반영된 건물들이 세워졌는데요. 그러나 무역으로 전성기를 맞이해 상업도시로 성장한 루강은 루강 구씨 1대 구셴룽 선생의 유년시절 무렵… 차츰 항구에 퇴적물이 쌓여 배가 항만에 정박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항구의 기능을 상실했고, 전성기를 누리던 도시는 쇠락하고 맙니다.

1866년 2월 2일 루강에서 태어난 루강 구씨 가문 1대 구셴룽 선생은 2살 때 부친을 여의고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거의 문맹에 가까웠을 정도로 학식이 좋지 못했다고 합니다. 넉넉치 않은 집안형편과 쇠락해가는 루강의 도시 경제…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청소년시절 그는 루강지역에서 중국과 타이완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교상郊商 스뤠이청施瑞成 집에 드나들며 무역 일을 배웠고, 19살이 되던 해 루강을 떠나 당시 타이완 최대 무역도시였던 멍자艋舺로 향했습니다. 도전정신이 뛰어난 구셴룽 선생은 남의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멍자에서 뤠이창항瑞昌行이라는 잡화상을 열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무역의 흐름을 빨리 읽고 1892년 무렵 설탕과 석탄을 중국으로 수출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사실상 일제시기 이전 …구셴룽 선생은 청나라 시기때 이미 석탄과 설탕 수출로 돈을 꽤나 벌었다고 합니다.

청나라 시기 일반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루강 구씨 가문을 타이완 5대 재벌가문 중 하나로 만든 것은 뜻밖에도 일본이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시모노세키馬關條約 조약에 의거해 타이완 섬과 랴오둥반도를 일본에 할양합니다. 그러나 서방 국가의 견제로 일본은 랴오둥반도를 토해냈으나, 타이완 섬의 경우 일본총독부를 두고 식민통치를 자행하죠. 일제강점을 당한 구한말 상황과 흡사했습니다.

타이완 역시 일본의 강력히 저항했습니다. 타이완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일본군 사망자는 약 4,5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는 청일전쟁에서 사망한 일본군 수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고하니 타이완 점령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죠.

한편 시모노세키 조약 후 일본군이 타이완 뤠이팡과 지룽을 점령하고 타이베이성을 공격하려는 소식을 들은 타이완민주국 총통 탕징송은 꼬리를 자르고 중국 샤먼으로 도망쳐버렸습니다. 국가 원수가 도망치자 타이베이성은 그야말로 무법지대로 변했습니다. 약탈이 극심해지자 자신들의 신변과 재산을 지키고자 구셴룽을 포함한 타이완 상인들과 외국 상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치안유지를 위해 신속히 일본군을 타이베이 성으로 들여 보내달라’는 청원서를 작성했고, 구셴룽이 자진하여 이 청원서를 일본군에 전달했으며, 일본군은 구셴룽의 안내에 따라 큰 타격없이 너무도 쉽게 타이베이성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총독부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구셴룽은 일제시기 총독부를 등에 업고 아편, 소금, 장뇌, 토지건설, 금융 등 사업의 투자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친일행적'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故 구셴룽 선생 (중간). [사진= Epochweekly 제공]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루강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구셴룽 가옥은 1913년에 짓기 시작해서 1919년 완공됐습니다.

당시 루강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자 600여 평에 달하는 저택의 규모는 주인 구셴룽의 당대 세도를 짐작하게 하는데요.

루강 구셴룽 가옥에서 찍은 셋째 사위 황펑핑黃逢平(좌) 과 구셴룽 선생 사진.  [사진= 창비蒼壁출판사 제공]

동화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정원과 르네상스풍 양식의 아름다운 구셴룽 가옥은 구씨 가문 2대 구전푸 회장이 가옥을 통째로 기부하면서, 현재는 루강 민속문무관으로 재탄생했고,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인데요.

또한 루강 민속문무관이란 이름처럼 기증 받은 루강 토속 예술품 등 루강 고유의 역사가 담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역대 박물관 관장이 구씨 가문 후손이기 때문에 박물관 곳곳에는 루강 구씨 가문의 손 때가 묻은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구셴룽 가옥에서 찍은 가족사진. [ 사진= 창비蒼壁출판사 제공]

옛날 타이완 부자는 이런 유럽풍 궁전 같은 곳에 살았구나~ 하고 느꼈던… 타이완 5대 루강 구씨 가문의 고택. 그러나 유럽식 정원과 건물외관에 속지 마세요~ 안으로 들어가면 타이완 느낌이 물씬 풍겨오니깐요~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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