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 전 타이완을 방문한 ‘공산당 최후의 로맨티스트’ 고르바초프

  • 2022.10.04
레트로 타이완
1994년 타이완을 방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라이사 고르바초프 여사가 당시 중화민국 입법원장인 려우송판 내외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중화민국 입법원 홈페이지 캡처]

레트로타이완시간입니다.

1952년 왕위에 올라 70년 동안 영국의 국가 원수이자 영국 연방의 수장으로 군림해 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향년 96세로 영국현지시간 9월 8일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면서 전 세계인들은 물론 각국 정상들이 일제히 진심 어린 조의를 표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소식을 듣고 영국 못지 않게 충격에 휩싸인 타이완에서도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중화민국 총통부 대변인 장둔한(張惇涵)은 차이잉원 총통이 타이완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여 영국정부와 대영제국 국민들을 향해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며, 왕위를 승계 즉위한  찰스 3세(HM King Charles III)와  왕실 유족에게도 깊은 위로를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또 우쟈오시에(吳釗燮) 중화민국 외교부장도 주타이베이 영국대표 존 데니스(John Dennis)를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 영국 국민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는 여왕의 장례식부터 후임인 찰스 3세의 즉위 그리고 영국 군주제의 존폐 문제까지 주목을 받았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소식이 유독 주목을 받은 건 역사적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냉전 본격화와 동시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임 기간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제국을 이끈 빅토리아 여왕 시기와는 비교조차 어려울 만큼 영국의 위상이 약해진 시기였죠.비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실권을 거의 행사하지 않은 군주였지만, 전 세계를 누비며 영향력과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70여년간 변하지 않은 막강한 존재감을 증명한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면에 들면서 전 세계가 20세기와의 고별에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AFP통신은 보도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한 시대에서는 다시 보기 매우 어려운 20세기를 빛낸 대표적인 인물 두 명을 우리가 몇 일 간격으로 연달아 잃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는 20세기를 상징하는 또 다른 대표적 인물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별세한지 열흘도 채 안 돼 일어났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냉전 시대를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자 20세기를 상징하는 두 사람의 영면은 숨가쁘게 흘러온 20세기 근현대사가 일단락 됐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 향년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철의 장막을 걷어내고 유혈 사태 없이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입니다. 또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서독 통일 역시 고르바초프의 최대 업적으로 꼽힙니다. 냉전 종식에 이바지한 공로로 고르바초프는 노벨 평화상도 받았습니다.

철의 장막을 걷어내고 세계 질서를 바꾼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타이완과도 인연이 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퇴임 이후인 1994년 당시 리덩후이 전 총통과 만나 타이완과 외교의 문을 여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타이완 유력 일간지 연합보 창업주 왕티우王惕吾의 초청으로 고르바초프는 1994년 3월 20을 타이완을 방문했습니다. 또 고르바초프는 전 소련 대통령이라는 신분이 아닌 본인의 이름을 딴 고르바초프 재단의 총재로 4박 5일간 타이완을 찾았습니다. 재단 총재라는 신분으로 방문함으로써 외교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마찰과 장애물에 관한 우려를 완화시켰습니다.

고르바초프와 타이완 유력일간지 연합보와의 인연도 깊습니다. 고르바초프는 퇴임 후 본인의 이름을 딴 고르파초프 재단 총재를 맡아 사회, 경제 및 정치 문제 등 국제현안과 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동시에 집필 활동을 활발히 했습니다.

타이완 연합보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쓴 칼럼의 중국어 판권에 대해 독점 계약을 맺고, 1992년부터 종이 신문의 시사 면에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트 전 대통령이 쓴 시사 평론의 중국어 판을 독점으로 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94년 3월 20일, 4박 5일 일정으로 타이완 방문을 방문한 고르바초프는 리덩후이 전 총통과 만남을 갖고, 한국의 국회의사당 격인 타이완 입법원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또 당시 행정원장이었던 리엔잔連戰, 입법원장 려우송판劉松藩,외교부장 치엔푸錢復 등 타이완 정부 주요 관계자들과 긴밀히 접촉했고, 타이완 방문 기간 고르바초프는 타이완 청년들과 직접 만나 국제정세에 관한 대화를 나눠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1994년 3월 20일, 4박 5일 일정으로 타이완 방문을 방문한 고르바초프는 입법원에서 연설을 했다. [사진=중화민국 입법원 홈페이지 캡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20세기를 상징하는 두 인물, 영국 역사상 최장기 군주인 엘리자베스2세 여왕과 철의 장막을 열고 냉전 종식을 이끈 옛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위업을 기리고 20세기 역사의 산증인이었던 두 인물의 안식과 영면을 기원하면서, 그럼 엔딩곡으로 린여우자(林宥嘉)의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勿忘你)를 띄어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이상으로 레트로타이완시간의 손전홍입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