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 일본 식민통치 잔재→ 근대문화유산으로

  • 2022.09.20
레트로 타이완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 입구에는 한국의 홍살문과 비슷한 일본 신사의 대문이라 할 수 있는 도리이(鳥居)가 서 있다.[사진=타오위안 시정부 홈페이지 캡처]

레트로타이완시간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식민통치의 아픈 역사를 가진 타이완.

19세기 말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당한 타이완과 한국 두 나라의 문화유산 가운데 일본 식민지 시기와 관련되는 근대문화유산은 그 자체로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유태인 학살의 유산이기도 한 아우슈비츠와 같이 일본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수탈의 잔재나 치욕스런 과거보다는 아픈 과거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며 이런 잔재들은 침략사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희소한 장소이자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타이완 북부 타오위안시에 소재한 후터우산(虎頭山) 서쪽 산기슭에는 일본 식민지 시기 황국신민화 정책 아래 천황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며 타이완인의 정신을 일본과 똑같게 만들기 위해 세워진 신사가 남아있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기인 1938년 세워져 신사로 쓰이다 해방 후에는 일본의 잔재를 지우고 1950년부터는 타이완 혁명에 앞장선 위인이나, 국가에 충성을 바쳐 희생한 유공자들의 위패를 모시는 충렬사로 활용되고 있는 이 곳은 현재 타이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일본 식민지 시기 세워진 신사이자 뼈아픈 침략사를 보여주는 희소한 장소로, 중화민국 내정부는 고건물의 가치를 인정해 1994년 2월 15일 국가 3급 고적으로 지정했습니다.

일본 식민지에 세워져 신사로 사용되다, 해방 후 일본 잔재를 싹 지워내고 현재는 위인들을 모시는 충렬사로 활용되며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으로 불리는 곳, 오늘 레트로타이완시간에서는 일본의 만행과 민족의 고통이 서려있는 현장인 타오위안시 후터우산 서쪽 산기슭에 있는 근대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 부국강병을 목표로 문명개화(文明開化)의 기치를 내걸고 서양의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여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입니다.

일본은 19세기말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근대화를 이루었고, 이는 아시아에서 일찍부터 강국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서구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이 근대화의 성공하며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 하여금 “왜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우리는 뒤처졌을까?”라는 뼈아픈 교훈을 주었습니다.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던 막부가 막을 내리고 근대화를 앞당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탈바꿈하며 강대국으로 떠올랐고, 그 끝에서 일본은 식민지 확보를 위한 군사작전을 감행합니다.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이어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와 1895년 4월 17일 한국에서는 시모노세키 조약이라 불리고 타이완에서는 마관조약, 마관탸오위에(馬關條約)라 불리는 강화조약을 맺습니다.

마관탸오위에, 시모노세키 조약은 19세기 국제관계를 새로이 했습니다. 청일전쟁의 패배와 일본과의 굴욕적인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아시아의 강대국이었던 청나라는 그 무력함을 드러냈고, 청이 무너지며 아시아 초 강대국으로 일본이 새롭게 떠올랐죠.

승전국이라는 이유로 일본은 청에게 청나라의 3년 치 예산, 일본의 4년 반 치 예산에 해당하는 터무니 없는 배상금을 청구하며 한 몫 단단히 챙긴 것 외에도 결정적으로 일본은 청으로부터 타이완 섬 등 부속 여러 섬의 주권을 할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1895년 4월 17일 체결한 마관탸오위에,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청이 타이완 섬을 일본에 할양하면서, 1895년~1945년까지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통치를 하게 됩니다.

식민 통치를 하며 일본은 황국신민화 정책 아래 천황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며 타이완인의 정신을 일본과 똑같게 만들기 위해 해방 전까지 타이완 전국에 200개에 이르는 신사를 세웠습니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의 한곳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원산대반점圓山大飯店, 더 그랜드 호텔 타이베이. 70년의 역사를 가진 타이완이 자랑하는 이 특급호텔은 믿기지 않지만, 일제 식민지 시기 타이완 전국에서 가장 큰 신사였던 타이베이신사(台北神社)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이후 타이완 전국 신사는 해방과 함께 일본 문화 잔재를 지우기 위한 사업으로 타이완 정부가 1972년 시행한 《일본 식민지 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우월감을 상징하는 기념 유물 청산에 대한 요점清除臺灣日據時代表現日本帝國主義優越感之殖民統治紀念遺跡要點》에 따라 대부분 파괴됐습니다.

중화민국 내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제정한… 일본 문화 잔재를 청산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완 북부 타오위안시 후터우산 서쪽 산기슭에 일본 식민지 시기 세워진 일본의 신사는 해방 후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일 까요?

해방 후 이 건물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철거 위기에 직면했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신사를 없애는 것은 근본적으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앞으로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 흔적을 보존해 후세들이 교훈을 얻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에서는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뉴타이완달러 886만원을 들여 1986년 2월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해 이듬해인 1987년 2월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타이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일본 식민지 시기 세워진 신사이자 뼈아픈 침략사를 보여주는 희소한 장소로, 내정부는 고건물의 가치를 인정해 1994년 2월 15일 국가 3급 고적으로 지정했습니다. 뼈아픈 침략사를 보여주는 희소한 장소로 가치를 인정 받아 중화민국 내정부로부터 국가 3급 고적으로 지정된 타이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타오위안 후터우산 서쪽 산기슭의 위치한 일명 타오위안 신사! 지금은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이라 불리는 이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의 입구에는 한국의 홍살문과 비슷한 일본 신사의 대문이라 할 수 있는 도리이(鳥居=とりい)가 서 있습니다. 또 내부에는 일본 신사의 상징인 테미즈야(手水舎=てみずや)도 있습니다. 오미즈야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건물은 일본의 신사뿐만 아니라 사찰에도 있습니다. 예법에 따라 신사나 절의 참배자들은 참배를 하기 전에 손이나 입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데, 손이나 입을 씻기 위해 물을 받아두는 건물을 테미즈야라고 합니다. 참배 전 정결하기 위해 들려야 하는 이 테미즈야도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에 보존되고 있습니다.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문화구역은 황국신민화 정책의 역사를 보여주는 희소한 곳입니다. 이런 근대문화유산을 없애면 가장 좋아할 쪽은 침략의 주인공(일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엔딩곡으로는 비리(比莉)의 진심으로 바랍니다(真心希望)를 띄어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이상으로 레트로타이완시간의 손전홍입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