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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역대 대통령 가운데 정식 대통령 자격으로 타이완을 최초로 방문한 건 누구일까?

  • 2022.08.30
레트로 타이완
타이베이에 도착한 아이젠하워(사진 왼) 대통령이 거리에 환영나온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좌측에 동승하고 있는 이는 장제스 전 총통.[사진= 퍼블릭 도메인]

레트로타이완시간입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 중국의 극력 반대에도 타이완 방문을 강행한 것을 계기로 미국과 타이완의 관계에 새삼 관심이 쏠렸습니다.

펠로시 의장 외에도 올해 들어서 릭 스콧, 태미 덕워스 상원 의원,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이 이끄는 사절단이 예고 없이 타이완을 방문했고, 최근에는 타이완 시간으로 지난 25일 오후 11시 45분 마샤 블랙번 미국 상원의원이 타이완을 찾았습니다.

최근 타이완을 방문한 미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블랙번 의원은 대중 강경파 인물로 꼽힙니다. 타이베이 숭산공항에 도착하며 블랙번 의원은 SNS에 "나는 중국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타이완에 방금 착륙했다"며 "우리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어 블랙번 의원은 "미국은 계속해서 전 세계의 자유를 수호할 것이며, 동맹을 약화하려는 노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마샤 블랙번 미국 상원의원의 이번 타이완 방문으로, 미국 정치인이 타이완을 찾은 건 앞서 지난 8월 2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포함해 이달 들어서만 네 번째입니다.앞서 펠로시 의장이 지난 2일 타이완을 방문한 데 이어 14일에는 에드 마키 상원의원이 이끄는 의원단 5명, 21일에는 에릭 홀콤 인디애나 주지사가 타이완을 찾았습니다.

여기에 9월 27일 가오슝에서 열리는 '글로벌 타이완 비즈니스포럼'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도 다음달 타이완 방문을 앞두고 있습니다.

펠로시 의장이 미국 하원의장 신분으로 25년 만에 타이완을 방문한 데 이어 다음달엔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이 방문을 앞두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는 와중에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정식 대통령 자격으로 타이완을 최초로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포함해 8월 이달 들어서만 미국 정치인이 무려 4차례나 타이완을 방문하면서 소환된 정식 미국 대통령 자격으로 타이완을 최초로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오늘 레트로타이완시간에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정식 대통령 자격으로 타이완을 최초로 방문한 주인공을 알아보기 전에 중국을 뒤흔들어 놓은 펠로시 하원의장의 방문으로 재조명된 타이완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알다시피 본래 미국은 중국이 아닌 중화민국, 타이완을 공식 정부로 인정했었습니다. 하지만 1971년 10월 25일 제1967차 유엔 총회 표결에 붙여진 유엔결의안 2758호로 인해 상황은 달라지게 됩니다. 이 결의안으로 인해 타이완은 미국을 비롯해 자유진영의 우방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타이완으로 하여금 미국을 비롯해 자유진영의 우방국을 잃게 한 문제의 유엔결의안 2758호는 알바니아의 제안으로 유엔총회 표결에 붙여졌습니다. 참석한 128개 회원국 가운데 찬성은 76표, 반대 35표, 기권 17표로 통과된 이 결의안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5대 상임이사국이 됐습니다. 즉 중화민국, 타이완은 이 결의안에 따라 유엔 회원국 자격은 물론 제2차 대전 승전국의 일원으로 누리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유엔 의석을 내놓은 것을 기점으로 타이완이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의 행보가 크게 제약을 받게 됐다는 점에서 1971년 10월 25일은 타이완 국민들에게는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악몽’ 같은 날입니다.

유엔 탈퇴 이후 그로부터 8년 뒤인 1979년 미국은 중국과 수교하고 타이완과 단교했습니다. 하지만 타이완과 우호적인 관계를 손 놓을 수 없었던 미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이던 1979년 타이완과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타이완관계법을 제정했습니다.

타이완관계법은 쉽게 말해 미국이 타이완의 국방력을 도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타이완을 흡수해 통합하려는 중국을 의식해 제정된 타이완관계법에 따라 미국은 지금도 타이완에 무기 등 국방물자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의 국방력 강화를 돕는 것을 골자로 한 카터 정부의 타이완관계법이 거론될 때마다 자연스레 소환되는 타이완과 미국 간 법적으로 마련한 안보 지원 관련 협약이 있습니다. 바로 과거 장제스 정부가 아이젠하워 정부와 맺은 미중상호안보조약(Sino-American Mutual Defense Treaty)과 마찬가지로 아이젠하워 정부가 1955년 미 상원에 제출해 통과시킨 포르모사결의안(Formosa Resolution)이 있습니다.

이른바 양안 위기,타이완해협위기 당시 중국은 본토에서 불과 3키로미터 떨어진 진먼섬과 마주섬을 포격하는 등 타이완에 군사적 위협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미국은 타이완 해협에 태평양함대를 파견했고, 심지어 타이완에 드리운 전쟁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핵전쟁을 거론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타이완해협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즉각 개입할 법적 근거가 바로 1954년 아이젠하워 정부가 장제스 정부와 체결한 미중상호안보조약으로 미군은 중공이 타이완해협을 공격할 경우 즉각 개입할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고, 이듬해인 1955년 미 상원에서 통과된 포르모사결의안으로 미군은 타이완 본섬과 펑후섬을 주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됐습니다.
임기 기간 장제스 정부와 미중상호안보조약을 체결하고, 포르모사결의안을 통과시킨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이전 트루먼(민주당) 행정부는 중국의 타이완 공격을 방어함과 동시에 장제스 정부의 해상 공격을 원치 않는다는 애매모호함으로 양안 충돌을 억제했습니다.

그러나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고, 한국전 종전이 선언되던 시기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트루먼을 잇는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전 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타이완해협의 봉쇄를 풀어 장제스 정부가 본토 연안을 포위하도록 허용했습니다.

1960년 6월 18일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타이완에 드리운 전쟁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 신분으로 처음 타이완을 찾았습니다.

1박2일 일정으로 타이완을 처음 방문한 아이젠하워는 타이완 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타이베이 거리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초상화가 내걸렸고, 기념 우표가 만들어질 정도로 열렬한 환영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타이완의 랜드마크이자 특급호텔인 더 그랜드 호텔 타이베이, 원산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이젠하워는 이튿날 총통부에서 장제스 전 총통과 1시간 40분 동안 회담을 갖고, 회담 후 총통부 앞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아이젠하워는 두 나라 사이의 협력를 강화하자고 연설했습니다. 장제스 총통은 아이젠하워는 중화민국의 진정한 벗일 뿐 아니라, 그의 방문은 타이완-미국 관계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레트로타이완시간에서는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타이완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어보았습니다. 인사가 늦었지만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는 마음을 담아 오늘 엔딩곡으로 위청칭(庾澄慶)의 환영의 디스코(歡迎光臨 Disco)를 띄어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이상으로 레트로타이완시간의 손전홍입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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