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타이완시간입니다.
‘개를 때리다’라는 뜻의 만다린어 다거우(打狗)는 수도 타이베이시에서 자동차로 대략 3시간 30분~4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가오슝(高雄)의 옛 이름입니다.
과거 타이완 남서부 가오슝 일대는 타이완 원주민족 중 하나인 마카타우(Makatau·馬卡道)족의 터전이었습니다. 마카타우족은 대나무가 우거진 자신들의 터전을 마카타우어로 대나무 숲을 의미하는 ‘타카우(Táⁿ-káu·대나무숲)’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당시 한족들은 마카타우족이 부르던 ‘타카우’라는 발음의 소리를 따서 한자로 칠 타(打), 개 구( 打狗)자인 타구(打狗), 즉 개를 때리다를 의미하는 만다린어 ‘다거우’로 음차표기 했습니다.
이후 1895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타이완섬은 일제의 식민지가 됐고, 타이완섬을 식민통치한 일제는 마카타우족이 부르던 ‘타카우’의 일본어 훈독(訓讀) ‘Taka-o’를 같은 음의 한자로는 높을 고(高) 수컷 웅(雄)자인 ‘고웅(高雄)’이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방후인 1945년, 광복 후 중화민국 정부는 일본이 부르던 타카오 즉 한자로 ‘고웅(高雄)’이라 쓰던 지명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살려 쓰기로 하여 만다린어 표준어 발음대로 ‘가오슝’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가오슝이라 불리지만, 과거 가오슝에 터를 잡고 살던 마카타우족이 부르던 타카우를 음차표기한 ‘개를 때리다’라는 뜻의 만다린어 다거우라는 옛 지명을 많은 이들이 잊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오슝 홍보책자나 특산품에서도 가오슝이라는 지명 대신 옛 지명이었던 한자로 칠 타(打), 개 구( 打狗)자인 두 글자 타구(打狗),즉 개를 때리다라는 뜻의 만다린어 다거우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타이완의 제1 항구도시인 가오슝!
특히 가오슝은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항구 도시라 옛날부터 서양인과 한데 어울려 살았고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데 거부감이 없었으며, 또 이로 인해 이국적인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근대 역사 건축물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직 가오슝에서만 볼 수 있는 이국적이고도 지역의 역사가 깃든 근대역사건축 가운데는 영국 정부가 타이완섬에 세운 최초의 서양식 공사관 건물! 1879년에 완공된 가오슝의 영국대사관 청사인 다거우 영국영사관(打狗英國領事館) 건물이 있습니다.
오늘 레트로타이완시간에서는 가오슝이라는 현재 널리 불리고 있는 공식지명 대신 옛지명인 ‘다거우’가 들어가 있는 ‘다거우영국영사관’으로 불리고 있는 타이완에 세워진 영국 최초의 서양식 공사관 건물 옛 영국공사관 건물인 다거우 영국영사관을 소개하려 합니다.
타이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자 옛 영국공사관 건물인 다거우 영국영사관의 역사는 18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은 1858년 영국과 프랑스와 텐진조약(天津條約)을 체결했습니다. 조약이 맺어지면서 영국에 요구에 따라 먼저 당시 안핑(安平)으로 불리던 타이난(臺南)·단수이(淡水) 이 2개 항구가 개항되고, 이후 무역수출량이 늘어남에 따라 1863년 북부 지룽(基隆)과 더불어 다거우 즉 현재 가오슝 2개 항구가 추가로 개항되었습니다. 톈진조약이 맺어지면서 다거우를 포함한 4개 개항지를 중심으로 종교시설, 주택 등 서구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특히 타이완 남부는 수심이 깊은 바다를 끼고 있어 외국물자를 수입하고 타이완에서 생산하는 국산물자를 수출하기 안성맞춤이었던 무역 요충지로서 영국은 일찍이 남부에 위치한 안핑항과 다거우항의 이러한 가치를 알아보고 남부 개항지에서의 영국인의 안전한 거주와 자유로운 상업활동, 영사재판권 등을 보장하기 위해 영국은 1861년 7월 요충지 안핑 즉 현재 타이난에 로버트 스윈호(Robert Swinhoe)를 파견하고,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를 담당하는 임시 사무소를 설립합니다.
이후 1864년 11월 다거우 즉 가오슝에 해관이 정식 설립되면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를 담당하던 영국의 임시 사무소는 안핑 즉 타이난에서 다거우(현재 가오슝)로 이전하고 1865년 2월 영사관으로 승격하며 로버트 스윈호는 초대 영사로 임명됩니다.
타이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다거우 영국영사관은 1879년 완공되고 공식 개관했습니다. 바다를 마주보는 산 위에는 영사재판권 등 영사업무를 담당하는 영사관이, 또 산 아래에는 영사를 비롯해 영사관 직원들이 머무는 영사관저 2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거우영국영사관은 붉은 색 벽돌로 지어진 19세기 중반 영국인이 인도 등 식민지에 세운 전형적인 「식민지식 건축」양식을 띄고 있습니다. 먼저 건물의 바로 앞쪽에는 넓은 잔디밭이 어우러져 있고, 또 본관 건물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한 넓을 베란다 구조의 「방갈로」(bangalow) 양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국적인 타이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다거우 영국영사관은 토사가 퇴적되어 다거우항이 쇠퇴하면서 1910년 2월 다거우 영국영사관은 폐쇄되었고, 1925년 12월 영사관과 관저의 토지 소유권을 일본정부에게 이전하게 됩니다.
산 위에 있던 영사관건물의 경우 1929년 타이완총독부해양관측소로 사용되었다, 광복 후 1946년부터는 중앙기상국 가오슝 기상관측소로 용도가 변경되었고, 1973년 5월 잠시 폐쇄됐다, 1977년 발생한 제 4호 태풍 셀마로 건물 일부가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다 1985년 가오슝시정부가 대대적인 복구사업을 진행하고, 1987년 내정부에 의해 역사고적으로 지정됩니다.
산 아래 위치한 관저의 경우 일제시기 가오슝주수산시험소로 사용되었고, 해방 후 1950년부터 2004년까지 타이완수산물시험소 가오슝 분소로 사용되다 폐쇄되었고, 2005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가오슝시로부터 시정고적으로 지정됐습니다.
국가 등록문화재인 다거우영국영사관은 현재 다거우영국영사관문화원구(打狗英國領事館文化園區)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복합문화공관으로 재탄생 했습니다.
과거 영사관과 관저로 사용되던 내부를 둘러보며 과거 ‘대영제국’ 외교관의 호사스러운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또 영국 외교관들이 거닐던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아치형 문 너머로 내려다 보이는 시즈완(西子灣)의 눈부신 푸른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만약 대영제국 외교관들의 애프터눈티 타임을 체험하고 싶으시면 산 위에 있는 영사관 내부 일부를 개조한 카페테리아에서 스콘과 샌드위치 홍차를 마시며 시즈완의 아름다운 경치를 오롯이 즐길 수 있습니다.
오늘 레트로타이완시간에서는 영국 정부가 타이완섬에 세운 최초의 서양식 공사관 건물! 다거우영국영사관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더욱 흥미로운 정보를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이상으로 레트로타이완시간의 손전홍입니다.
아치형 문 너머로 내려다 보이는 시즈완(西子灣)의 눈부신 푸른 바다 풍경.[사진 = 다거우영국영사관문화원구 페이스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