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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日 식민지 시기 타이완 문인들의 교류의 장 ‘중앙서점’

  • 2022.01.04
레트로 타이완
22년만에 다시 문을 연 중앙서점. 심플한 화이트 외관에 황금빛 아날로그 글씨체 입간판이 시선을 끈다.[사진 = 중앙서점 공식 페이스북 캡처]

레트로타이완시간입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주인공 길(오웬 윌슨)은 1920년대 파리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차 있는 남자인데요.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버리고 소설가를 꿈꾸는 길은 약혼자와 파리를 여행하던 중 홀로 파리의 골목을 헤매던 어느 고요한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눈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클래식 자동차를 얻어 타고 그가 동경하던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함께 차에 탄 무리들과 도착한 파티장에는 작곡가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그곳에서 만난 한 열정적인 커플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죠 “내 이름은 스콧 피츠제럴드예요. 여긴 내 아내 젤다입니다”라고 말이죠.이렇게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부인이자 ‘영혼의 쌍둥이’라고 불렸던 젤다와의 만남 후 다음날 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따라간 곳에서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훗날 전설적인 존재가 되는 예술가들과 교류합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위대한 개츠비> 속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부인 젤다. [사진 = 유튜브 캡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젤다&스콧 피츠제럴드, 루이스 부뉴엘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웃고 떠들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열띤 토론하는 장면은 우디 앨런 감독이 지어낸 허구가 아닌 실제 당시에 있었던 …미드나잇 인 파리, 황홀한 파리의 밤에 흔히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전설적인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살바도르 달리,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파블로 피카소 … 전설적인 예술가들이 모인 곳은 전쟁 후 최고의 살롱으로 유명했던 플뤼루스 27번에 위치한 미국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이 운영하던 ‘스타인의 살롱’ 덕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설적인 예술가로 유명해진 이들을 먼저 알아보고 지원하고 키워낸 거트루드 스타인,  '거장을 알아본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운영하던 스타인 살롱은 항상 예술가들로 북적였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위대한 개츠비> 속 '거장을 알아본 거장'이라 불리는 거트루드 스타인. [사진 = 유튜브 캡처]

타이완에서는 1927년에 문은 연 중앙서점(中央書局)이 문학인들의 살롱의 역할을 했습니다.

우용푸(巫永福 왼쪽부터)、우라이싱(吳來興)、정싱시엔(張星賢)과 장싱지엔(張星建)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중앙서점을 찾아 문학 얘기로 꽃을 피웠다. 중앙서점 앞에서 남긴 기념 사진.[사진 = CNA DB]

90여 년 전 일제 지배하 식민지 시기 문을 연 중앙서점, 당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일제 식민지 시기 일본에 의해 한글을 쓰지 못하도록 탄압 받던 한국과 마찬가지로 타이완인들은 모국어인 화어(華語, 이하 중국어)를 쓰지 못하도록 탄압받았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탄압 속에 중앙서점 창업주들은 중국어를 보호하고, 보급하고자 일제 식민지 시기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어 서점을 열어 그야말로 목숨을 내걸고 중국어를 지켜냈는데요.

일제 탄압 속 중국어를 지키고자 중앙서점 창업주들은 타이완 순수 문학을 소개하고 공유하며 ‘우리의 말!’ 모국어를 잊지 않고 지킬 수 있는 문화 교류 공간을 만들 계획을 사실상 창업 초기부터 구상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1927년 중앙서점이 문을 열면서 실현됐죠. 중앙서점은 중국어 책을 소개하고 공유하며 구매할 수 있는 동네 서점을 넘어, 궈쉬에후(郭雪湖),천천포(陳澄波) 등 당대 최고 화가들의 개인 전시회가 중앙서점에서 열렸고, 나아가 중앙서점은 중국어 보급을 위해 ‘남음《南音》’, ‘타이완문예《台灣文藝》’ 등 인문 예술학 잡지를 발간하며 출판사역할도 했습니다.

중앙서점에서 출간했던 도서들. [사진 = CNA DB]

신분, 나이 혹은 성별 등에 상관 없이 ‘모국어를 소중히 여기고 순수 국내 문학을 사랑하는 남녀노소 누구나’ 문학과 예술에 대해 평등하게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90여 년 전 중앙서점에서 펼쳐졌습니다.

1927년 문을 열어 일제 식민지 시기 대표적인 항일문학가 린시엔탕(林獻堂), 린여우춴(林幼春),장선치에(張深切) 라이허(賴和)등 타이완 중부 지역 출신 문인들과 고학력 스펙을 자랑하는 지식인들이 언제라도 찾아가 시와 문학 얘기로 꽃을 피우던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중앙서점은 대형 서점의 등장으로 서점 환경 변화에 따라 위기를 맞았고 1998년 폐업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전설적인 문인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문학을 논하던 아지트였던 중앙서점은 지역 시민들에게도 서점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누군가에겐 첫 참고서를 사던 곳이고, 혹은 또 어떤 이들에게는 첫 지구본을 구매한 곳이고,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책을 구경하며 기다리는 곳이자,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중앙서점의 폐업 소식이 알려진 후 이제는 더 이상 중앙서점에서 만나자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많은 시민들이 슬퍼했죠.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던 유서 깊은 중앙서점은 문을 닫은 지 22년 만에 다시 개장했습니다. 이는 책과 지식의 공급자로서 중앙서점이 한 개인의 사업장이기 이전에 당대를 대표하는 타이완 문인들이 문학을 논하던 귀중한 문화유산 공간으로써 다시 살려야 한다는 예술계, 출판계, 시민들의 오랜 바람이 결실을 맺은 것인데요.

2020년 새로 문을 연 중앙서점의 리모델링 작업은 타이중 출신 건축가 장러징(姜樂靜)과 건축 구조물 기술자 스중시엔(施忠賢)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업팀이 맡았습니다. 장러진 건축가는 서점의 본래 모습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후된 건물의 뼈대를 남겨 둔 채 보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2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중앙서점. [사진 = 중앙서점 공식 페이스북 캡처]

재단장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2020년 우리 곁으로 돌아온 중앙서점은 3층 높이의 부채꼴 모양의 반원형 건물로, 특히 베이지색 외관과 여기가 바로 ‘중앙서점’이다라고 보여주듯 황금빛 아날로그 글씨체로 ‘중앙서점’이라는 상호를 입구에 새겨놓은 것이 눈에 뜁니다. 또 서점 1층에는 과거 이곳을 즐겨 찾던 중부 출신 타이완 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한 특별 코너가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고, 나아가 정지적으로 작가를 초청해 작품을 낭독하며 독자들과 자유 토론을 펼치는 살롱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엔딩곡으로 팡다통(方大同)의 심플한 것이 가장 낭만적인 것이다(簡單最浪漫, Sweety Pie)를 띄어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이상으로 레트로타이완시간의 손전홍입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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