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타이완 종교 행사 퍼포먼스 중 구성원이 가장 많고 공연 시간이 가장 긴 송강진(宋江陣)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송강진은 중국무술과 결합된 예술적 민속공연이며, 약 300년전 시작되어 처음에는 신체 단련과 마을 보위를 목적으로 조직되었지만 역사 발전과 사회구조의 변천에 의해 현재 종교 행사에서 신을 맞이하는 타이완 중요 민속 기예로 변화하게 됐습니다.
송강진의 기원에 대해서 역사적인 자료가 부족하지만 민간 전설이 많은데요. 하나는 송강진의 전통 진형은 중국 명대의 장편소설 <수호전(水滸傳)>의 인물 ‘송강(宋江)’이 성을 공격할 때 사용한 진형이란 의견이 있습니다. <수호전>은 중국 북송 말기에 36개의 천강성(天罡星)과 72개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는 108개의 흉성들이 108호걸로 환생하여 의협심이 있고 탐관오리의 착취에 불만해서 산둥(山東)에 위치한 양산박(梁山泊)을 근거지로 부패한 조정과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108호걸 중의 서열 제 1위의 인물은 바로 송강입니다. 송강진 공연에서 볼 수 있는 등장인물, 사용하는 병기, 다양한 진형은 대부분 수호전을 본뜬 것입니다.
예컨대, 송강진이 보통 36명 혹은 72명이 한 조를 이루는 것은 36개 천강성과 72개 지살성을 표현하기 위한 겁니다. 인원수는 100명 이상에 이르기도 하지만 108명이 모이면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서 108명이 모이는 것은 금기입니다. 송강진의 진형은 총 18개이며, 모두 ‘태극도(太極圖)’의 도안을 기초로 만들어졌는데 그중 가장 알려져 있는 진형은 ‘팔괘진(八卦陣)’입니다. 한국인들이 아마도 ‘팔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한국 국기의 각 모서리에 그려져 있는 4가지 검은색 도안은 바로 팔괘 중의 사괘(四卦)이지요.
수호전설 외에 송강진은 중국 사찰인 소림사(少林寺)에서 기원했다는 의견도 있고, 명나라 시대 중국 해안 지방을 습격하던 일본 왜구를 물리친 유명한 장군 척계광(戚繼光)이 만든 가장 대표적인 진법 ‘원앙진(鴛鴦陣)’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원앙진은 병사의 충성과 용맹, 그리고 병사들간의 완화한 상호 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송강진의 구호 ‘체천행도 충의쌍전(替天行道,忠義雙全)’즉, 하늘을 대신해서 도를 행하며 충성과 의리를 모두 갖춘다’라는 구호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 주장의 근거가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타이완 정사에 송강진에 대한 자료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송강진은 타이완을 통치했던 중국 명나라의 유신 정성공(鄭成功)에 의해 300여년전에 이미 타이완으로 전해졌습니다. 명나라는 1644년에 만주족에 의해서 멸망했지만, 명나라 유신들은 ‘반청복명(反淸復明)’, 즉 청나라에 반대하고 명나라를 회복시키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청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정성공은 그 지도자 중 하나로서 타이완을 근거지로 평생을 반청복명에 바쳤습니다. 정성공은 타이완을 개척했을 때 타이완의 정치적 및 경제적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평시에는 농업 등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다가 비상시에는 동원하는 병농일치제를 시행했습니다. 정성공의 부하들이 대부분 푸른 숲 속에 사는 녹림호객이라서 수호전의 108명호걸을 영웅으로 여기며 원앙진을 송강진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정성공은 타이완 남부지역을 위주로 개발해서 현재 가오슝시와 타이난시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의 송강진은 북부지역보다 훨씬 발달합니다.
청나라 시기에 청나라 정부는 타이완은 그저 외딴섬이라고 생각해 소극적인 통치 정책을 시행하면서 도적들이 들끓으며, 사람들이 자원과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도 벌여서 치안이 매우 불안전했습니다. 각 마을에서 주민 스스로 자위대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자위대는 송강진을 배움으로써 마을을 지키려고 했는데 그때 자위대의 무술 지도자는 대부분 마을 도장의 무술 사부이며, 주요 활동 장소는 사원이었습니다.
타이완이 1895 년에 청일전쟁으로 일본에 할양 당했는데 이후 일본의 강압적 통치 속에서 타이완의 치안은 안전해지면서 지방 자위대가 필요없게 되며, 게다가 항일조직으로 여겨질까 봐 두려워서 송강진을 아예 종교 행사의 공연만으로 삼게 됐습니다. 이것은 50년간 일본의 통치를 거쳐도 송강진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주요 원인입니다.
1945년 타이완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 통치 시대를 벗어나 중화민국에 반환됐습니다. 이후 강진의 군사훈련 및 자아방위의 기능이 완전히 사라졌고 현재 종교적 및 사회적 기능만 가지고 있습니다.
송강진은 중국에서 기원했지만 본토에서 명맥이 이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타이완에서는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 3,4월에 가오슝시에서 개최되는 송강진 관련 축제는 타이완 중요 축제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요. 청취자분은 나중에 3,4월에 타이완 가오슝으로 놀로 가시면 한번 참여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