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최고의 고단' - 랴오치옹즈

  • 2021.01.04
2018 타이베이 패션위크의 초청을 받아 개막 공연을 하는 랴오치옹즈(廖瓊枝) - 사진: CNA

지난주 저는 타이완에서 시작된 유일한 전통극 가자희(歌仔戲)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가자희의 국보급 거장 ‘타이완 최고의 고단(苦旦)’이라고 불리는 ‘랴오치옹즈(廖瓊枝)’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난주도 설명해드렸지만 고단은 고난을 겪는 여자 역을 지칭하는데 인생의 고통을 우는 것 같은 창법, 즉 ‘곡조(哭調)’로 표현하는 가자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인데요.

‘인생은 한편의 연극과 같다’고 하듯이 랴오치옹즈도 고단처럼 살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어 봤는데요.

랴오치옹즈의 부모가 쌍방 가족의 반대로 결혼을 못해서 어머니는 랴오치옹즈를 혼자 키우다가 선박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랴오치옹즈는 2살부터 조부모와 같이 생활하게 됐는데 나중에 집안의 경제적 기둥인 할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11살의 랴오치옹즈는 가족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년 내내 쉬지 않고 일했는데요. 그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신발조차 사지 못해 항상 맨발로 다니던 랴오치옹즈는 집 근처의 가자희극단이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 초보자에게 신발을 주는 소식을 듣고 바로 가입하여 처음으로 가자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가자희극단에 1년 정도 있다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 할머니가 돌어가셔서 고아가 된 랴오치옹즈는 유랑 생활을 시작하며 빚을 갚기 위해 진산(金山)가자희극단에 가입하게 되어 가자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어렸을 때의 고통과 불행한 결혼생활, 자식 4명을 혼자 키웠던 인생 경력이 오히려 랴오치옹즈가 고단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데 좋은 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항상 자기의 인생을 노래하듯이 연출을 하는 거지요.

그러나, 랴오치옹즈의 곡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연출할 때의 정서와 표정, 몸짓 등을 꾸준히 연습해야  ‘동양 가장 아름다운 영탄조(詠嘆調)’로 불리는 랴오치옹즈만의 곡조를 완성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럼 랴오치옹즈가 부른 가자희 노래를 같이 한번 들어보시지요.

1980년 랴오치옹즈는 음악학자가 개최한 ‘민간악인음악회(民間樂人音樂會)’에서 곡조를 부르고 주목을 많이 받으며 가자희 홍보 대사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최초로 ‘타이완전통가자희예술계승계획교재’를 제작함으로써 타이완 가자희 교육 체계를 세운 선구자로 여겨집니다.

가자희는 타이완에서 시작하여 발전하는 타이완 가장 대표적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랴오치옹즈는 가자희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으며 불씨를 살리기 위해 학교에서 가자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신베이시 쇼우랑(秀朗)초등학교의 21년 역사 가자희동아리는 바로 랴오치옹즈의 지도 아래 탄생한 겁니다. 

학교 외에 랴오치옹즈는 또한 타이베이시립사회교육관(臺北市立社會教育館)에서 강의를 하며 학생들을 데리고 같이 가자희 공연을 했습니다. 1988년 랴오치옹즈는 교육부 민족예술신전장(民族藝術薪傳獎)을 받아 대부분의 장금으로 학생들을 위한 ‘신전가자희극단(薪傳歌仔戲團)’을 창립했습니다.

1999년 랴오치옹즈는 ‘재단법인랴오치옹즈가자희문교기금회(財團法人廖瓊枝歌仔戲文教基金會)’를 설립하여 ‘가자희를 위해 분투하자’는 이념으로 지금도 가자희 문물을 꾸준히 보존하며 분장, 의상, 악기 등 가자희 관련 수업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랴오치옹즈는 또한 ‘신전가자희극단’을 이끌어 미국, 프랑스 등 해외 국가에서 공연을 펼친 바가 있습니다. 랴오치옹즈는 1998년 교육부 ‘중요민족예술가(重要民族藝術藝師)수상, 2008년 중화민국 2등 경성훈장 수상, 수상 경력이 매우 화려합니다.  2012년 타이베이예술대학 명예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타이완 예술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거지요.

랴오치옹즈는 가자희배우로서 연기 경력 거의 70년인데 중간에  야외공연이 금지됐던 시기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자희를 잠시 두고 재봉공으로 미국에서 일해 봤는데도 대중 매체가 나타나면서 가자희가  한참동안 쇠퇴했는데도 가자희에 대한 랴오치옹즈의 사랑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랴오치옹즈는 가자희 덕분에 더 이상 유랑하고 않고 나중에도 아이를 키울 수 있어서 가자희를 그의 은인으로 여기며 은혜를 갚아야 하는 마음으로 가자희를 계승, 발전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는데요. 고단은 가자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인 만큼 랴오치옹즈도 타이완 가자희 문화를 이끌어나간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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