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포대희 국보급 거장-리티엔루

  • 2020.12.21
작년 7월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공연을 펼친 이완란인형극단(亦宛然掌中劇團)-사진: 리티엔루포대희문물관(李天祿布袋戲文物館) 페이스북 홈페이지 제공

지난 시간에 저는 포대희의 유래 및 역사, 그리고 인형 역할에 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표대희 이야기를 할 때면 절대 빠질 수 없는 티이완 표대희의 대표 인물 리티엔루(李天祿, 1920-1998)와 그가 창립한 ‘이완란(亦宛然)’이라는 인형극단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리티엔루는 1910년에 태어나 9살부터 아버지한테 포대희를 전수받았는데 그가 14살 때 벌써 극단의 중심인물로서 표대희 연출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연기하는 일을 담당하며, 나중에 22살 때인 1931년도에 ‘이완란’이라는 인형극단을 세웠습니다.

리티엔루가 어렸을 때부터 경극, 가자희 등 다양한 전통 연극을 섭렵했는데 그중 경극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경극의 요소를 포대희에 녹여냈고 색다른 연출 방식을 창조했습니다. 경극에서 사용되는 음악과 내용을 포대희에 쓰고, 심지어 경극 인물의 분장 요소를 인형 제작에 접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극과 포대희의 결합으로 탄생한 새로운 포대희 유파는 ‘외강포대희(外江布袋戲)’라고 불리며, 리티엔루는 ‘외강포대희’의 창시자로 여겨져 있습니다.    

1952년에 야외 공연 금지령이 해제되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 제약을 겪었던 인형극단은 다시 활약하게 되었는데요. 이듬해 리티엔루는 ‘이완란인형극단’을 이끌고 20년 연속 전국 포대희대회에서 대만 북부의 1등을 하며, ‘이완란인형극단(亦宛然掌中劇團)’과 리티엔루는 함께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텔리비전 따위의 신흥 매체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면서 야외 포대희는 관중을 잃게 되었는데요.  1978년도에 리티엔루는 극단 생활을 마치고 포대희의 계승과 홍보를 하는 데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완란인형극단’의 팀원들과 함께 신베이시에 위치한 쥐꾸앙(莒光) 초등학교에서 포대희를 전파하고 계승하는데, 다음해에 포대희를 누리는 학생들이 ‘웨이완란(微宛然)’이라는 인형극단을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타이완인들이 전통 인형극 포대희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가지고 되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여러 학교들이 연달아 인형극단이나 포대희 동아리를 설립하며, 지금까지도 포대희 문화가 타이완에 뿌리 내릴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타이완 국내뿐만 아니라 ‘이완란’이 배출한 문하생들이 해외에도 많이 있는데요. 그들은 ‘완란(宛然)’이라는 이름을 붙여 미국에 ‘루완란(如宛然)’ 프랑스에 ‘샤오완란(小宛然)’ 일본에 ‘지완란(己宛然)’ 등 인형극단을 만들어 세계 각지에서 포대희의 문화를 꾸준히 계승하며 전파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완란인형극단’은 또한 한국, 일본, 미국, 독일, 영국, 모로코 등 국가의 초청으로 현지에서 공연을 펼치며, 외국인에게 타이완의 전통 인형극을 선보임으로써 포대희의 아름다움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습니다.

그중에 리티엔루가 민남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무언인형극 ‘우연한 인연(巧遇姻緣)’은 해외에서 가장 많이 연출된 레퍼토리이며, 외국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타이완 전통 음악과 인형의 움직임으로 한 서생이 어떤 여자를 구하여 둘이 사랑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연출함으로써 외국 관중으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며 포대희를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서 포대희 음악으로 사용되는 예치티앤(葉啟田) 버전의 릉스완즈(冷霜子)를 듣겠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리티엔루는 포대희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를 많이 한 사람인데요.

이렇게 리티엔루는 포대희 계승 및 전파에 20동안 계속 심혈을 기울는 가운데 스스로의 힘으로 전통 예술 포대희를 이어가려면 너무 부족하다고 인식하게 돼서 1996년도에 ‘리티엔루포대희문물관(李天祿布袋戲文物館)’을 개관했고, 다음해에 ‘재단법인리티엔루포대희문교기금회(財團法人李天祿布袋戲文教基金會)’를 설립함으로써 포대희 문화자산을 보존하며, 인재를 육성하기도 합니다.

‘리티엔루포대희문물관’에는 100년 역사의 전통 인형과 포대희 소품, 악기, 등 포대희에 관련된 문물 외에도 리티엔루가 생전 포대희를 연출할 때 항상 사용했던 무대, 한자어로 채루(彩樓)라도 불리는 무대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구역을 빼고도 체험구역과 DIY제작구역 등 공간이 배치되어 있어서 방문자들이 눈으로도 손으로도 포대희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데요. 운이 좋으면 비정기적으로 펼쳐지는 포대희 연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리티엔루가 포대희 예술 최고의 계승자이자 전파자라고 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지요. 타이완 교육부가 또한 그의 포대희를 향한 열정과 노력을 인정하여 그에게 ‘중요민족예술가(重要民族藝術藝師)라는 최고의 영예를 수여했습니다.

리티엔루는 1998년도에 세상을 떠났지만 포대희의 불씨를 살렸던 인물로서 리티엔루는 포대희계에서 숭고한 지위를 영원히 차지하며, 후 세대에 엄청난 영향을 계속 끼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허우샤오시앤(侯孝賢) 감독은 리티엔루의 삶과 이완란인형극단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희몽인생(戲夢人生)’이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1993년 제 4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는데요. 리티엔루가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해 나가서 자신의 삶을 관중에게 들려줍니다.

 어릴 때 포대희를 배우며 모색하고, 나중에 뛰어난 손놀림 및 독특한 언변으로 포대희계에서 큰 명성과 인기를 누리고, 그리고 노경에 이르러 포대희 계승 및 전파에 애쓰는 종종 모습을 ‘희몽인생’ 이 다큐맨터리 같은 영화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이 타이완 전통 인형극 포대희의 국보급 거장인 리티엔루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희몽인생’을 한번 찾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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