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에서는 40대, 50대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에 팽이치기를 해봤을 겁니다. 학교가 끝나면 여럿이 모여 팽이를 치고, 누구의 팽이가 더 오래 돌아가는지를 대결하며, 또 좋은 팽이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으기도 하고 팽이를 직접 깎기도 하였답니다.
팽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장난감으로 고대 유적지에서 자주 발굴되고는 합니다. 역사가 너무 오래되기 때문에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국 간수성이나 칭하이성에 존재한 마자야오(馬家窯) 문화와 중국 북부의 황하 중류에서 하류에 걸쳐 퍼져 있는 롱산(龍山)문화 유적지에서 모두 팽이가 발견되었는데, 이 두 유적지 모두 신석시 말기의 문화이므로 팽이는 적어도 2000년에서 3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팽이가 처음 등장한 기록은 중국 산둥(山東) 지역 태수였던 가사협(賈思勰)이 6세기 전반에 쓴 '제민요술'(齊民要術)’입니다. 그때 팽이는 ‘독락(獨樂)’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송나라에는 팽이와 비슷한 장난감이 있었는데 그 장난감은 ‘천천(千千)’이라고 불리며, 궁녀들이 심심할 때 갖고 놀았던 장난감입니다. 명나라에서는 팽이는 이미 대중화가 되고 평민 사이에서도 유행하고 있었는데, 그 시대에는 팽이는 ‘타라(陀螺)’라고 불리며 그 이름은 오늘날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팽이치기 놀이는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놀이일 만큼 각 국가의 팽이의 모양이나 종류가 각각 다릅니다. 종류는 그 나라의 특성에 따라 나무, 금속, 플라스틱, 유리 등 여러 가지 물질로 만들어 사용하며 모양도 특이한 것이 많으며, 놀이 방법도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타이완에서 옛날 어린이들이 즐겨 갖고 놀았던 팽이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팽기를 구매하는 것보다는 재료를 수집하여 ‘나만의 팽이’를 손수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팽이가 튼튼해야 다른 팽기와 부딪힐 때 그 충격을 견디며 오래 돌아갈 수 있으므로 팽이를 만들 때 보통 녹나무나 구아바 나무, 용안나무 등 경도가 비교적으로 높은 나무를 재료로 삼습니다. 그리고 팽이치기 방법은 채찍으로 치면서 팽이를 돌리는 한국과 달리 타이완에서는 몸통에 감았다가 던질 때 줄이 풀리면서 회전력을 얻는 방식으로 팽이치기를 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 애니메이션 ‘전투팽이(戰鬥陀螺)’가 어린이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면서 애니메이션 속 ‘전투팽이’와 양식이 비슷해 보이는 다양하고 화려한 플라스틱제 팽이들이 속속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플라스틱제 팽이들은 타이완에서는 ‘戰鬥陀螺(전투타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나무팽이와 완전히 다르게 생긴 팽이지만, 팽이배틀을 통해 승부욕을 자극하는 장난감이라 현재의 어린이들이 나무팽이보다는 전투팽이를 더 좋아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에서는 한족 뿐만 아니라, 원주민족도 팽이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고, 팽이와 관련된 신화·전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타이완 동부 화롄(花蓮)에 거주하는 사치라이야(撒奇萊雅)족은 ‘팽이로 농사를 짓는 신기한 사람’의 이야기가 부락에서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리고 타이완 서남부 쟈이(嘉義)현 아리산(阿里山)향과 타이완섬 중부 난터우(南投)현과 남부 가오슝(高雄)시에 분포되어 있는 저우(鄒)족은 팽이를 장난감으로만 삼을 뿐만 아니라, 예언으로 쓸 때 사용되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좁쌀파종 축제 이후 팽이를 치고, 팽이가 돌리는 방향을 통해서 금년 농작물의 작황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또 타이완 가장 긴 남북 직선방향의 산맥인 중앙산맥 양측에 거주하는 고산 부족인 부농(布農)족도 제초 축제를 마무리한 후 팽이치기를 하면서 팽이가 빨리 돌리는 만큼 작물도 빨리 자라고 성숙하기를 기원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가장 팽이에 열중하는 지역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저는 타이완 북부에 위치한 타오위안시 다시(大溪)구라고 대답할 겁니다. 다시는 말린 두부로 유명합니다. 다시의 말린 두부는 일반 말리 두부보다 식감이 단단하고 맛이 진하기 때문에 국내외 관광객들이 다시에 놀러 가면 꼭 사 먹는 음식입니다. 말린 두부 외에, 신탁(즉 신명이나 조상을 모신 탁자)와 팽이도 다시의 명물로 꼽힙니다. 다시의 신탁은 질이 좋은 데다가 장인의 솜씨가 느껴질 만큼 매우 정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은 신탁을 만들고 남은 나무로 팽이를 만듭니다. 팽이의 크기는 아주 다양합니다. 어린이들도 갖고 놀 수 있는 작은 팽이도 있고, 무게가 100킬로그램에 달하는 거대한 팽이도 있습니다. 다시에서는 해마다 여러 팽이 대회가 개최되는데 누구의 팽이가 더 오래 돌아가는지 대결하는 대회도 있고, 누가 가장 무거운 팽이를 돌릴 수 있는지 대결하는 대회도 있습니다.
타오위안 다시는 무게가 1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팽이를 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하면, 신베이시 산샤(三峽)구는 팽이 특기로 이름이 널리 알려집니다. 산샤구에서는 팽이치기를 애호하는 아마추어로 구성된 팽이 특기단이 있어 ‘산샤 정점 팽이팀(三峽定點陀螺隊)’이라고 불립니다. 그들은 3미터 거리에 있는 지름이 28밀리미터의 병 뚜껑에 팽이를 던져 돌릴 수 있고, 또 팽이가 손에서도 계속 돌아가게 할 수도 있고, 팽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 가는 외이어 위에서 10미터 가까이 이동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팽이 특기가 너무 휼륭하고 남다르기 때문에 중국에서 공연하도록 초청받았을 뿐만 아니라, 신기한 특기를 가진 이들의 모습을 공유하는 유튜브 채널 Kuma Films(쿠마 필름스)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을 주제로 한 영상은 현재까지 조회수 2137만회를 기록했습니다.‘산샤 정점 팽이팀’은 주말에 부정기적으로 산샤 싱롱궁(興隆宮) 앞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나중에 청취자분께서 산샤에 오시게 된다면 한번 관람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팽이는 확실히 ‘어린 시절 꼭 껴안고 싶은 장난감’반열에서 물러나게 됐으나, 팽이를 홍보하고 계승하는 데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팽이 장인들 덕분에 팽이를 칠 줄 아는 어린이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고, 타이완 팽이 문화를 아는 국내외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인셉션의 토템인 무한회전팽이처럼 타이완 팽이도 영원히 멈추지 않고 오래오래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