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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자의 그리움과 축복을 담은 망자에 대한 선물 - 호지

  • 2022.10.17
현대 속 전통기예
2019년 6월, 신싱호지점(新興糊紙店)은 프랑스 문화부와 중화민국 문화부의 초청으로 프랑스 케브랑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에서 팰리스 파라다이스(Palace Paradise)를 제목으로 한 전시회를 열었다. – 사진: ‘신싱호지문화-지찰공예미학(新興糊紙文化-紙紮工藝美學)’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타이완은 20개가 넘는 종교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다원적인 종교적 신념을 가진 국가 중 하나입니다. 타이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앙은 도교, 불교, 유교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형성되고 발달하는 민간 신앙입니다. 타이완 민간 신앙에는 다양한 풍속과 관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조상을 숭배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제사를 바치는 것입니다. 타이완에서는 청명절(清明節)이나 중원절(中元節), 또 설날 기간에 꼭 제사를 지내는데, 그때마다 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서 노란색 종이, 즉 지전(紙錢)을 태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망자가 가져가 저승에서 돈으로 삼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같은 목적으로 타이완인은 장례식에서도 지전을 태우는데 하지만 지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지하세계에서 더 편리하고 충족한 삶을 살 수 있게끔 타이완인들은 장례식에서 핸드폰, 자동차, 노트북 등의 모양으로 된 종이인형을 태우기도 합니다. 제사나 상례에서 사용되는 이 다양한 모양의 종이들은 타이완에서 호지(糊紙)라고 합니다.

호지 기술로 만든 애츨 핸드폰과 아이페드, 충전기 - 사진:‘신싱호지문화-지찰공예미학(新興糊紙文化-紙紮工藝美學)’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호지는 물에 찌고 풀을 섞은 한지를 조금씩 붙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여 질감을 만들어내는 공예로, ‘지호(紙糊)’라고 부르기도 하고, 감을 찰(紮)자를 써서 ‘지찰(紙紮)’이라고도 부릅니다. 호지 공예의 역사는 가장 이르게는 중국 당나라 시대까지 거슬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당태종 이세민은 한때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는데,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동안 그의 영혼은 저승으로 내려가게 돼서 거기서 여러 가난한 귀신들을 만나고 그들이 너무 불쌍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수톤 금괴를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당태종은 의식을 회복한 후에 약속을 이행하고 귀신들을 위한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에서 지전 뿐만 아니라, 대나무로 뼈대를 만들어 안팎으로 종이를 붙여 만든 집 모양의 종이인형도 태웠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호지공예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호지는 조상 제사나 장례식에서만 쓰는 게 아닙니다. 결혼식, 돌잔치, 생일잔치와 같은 경사스러운 행사에서는 장식물로도 사용됩니다. 또 종교적인 행사에서도 호지 공예로 만든 물품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대형 종교 축제에서는 항상 용춤과 사자춤 퍼포먼스가 펼쳐지는데 용춤에서 쓰이는 용과 사자춤에서 쓰이는 사자 탈은 모두 호지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것입니다. 비록 호지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호지 하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장례식 또는 죽음이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타이완에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죽음을 언급하기를 꺼리는 만큼 호지와 같은 죽음과 관련 있는 걸 역시도 꺼립니다. 

조상들이 지하세계에서 더 편리하고 충족한 삶을 살 수 있게끔 타이완인들은 장례식에서 핸드폰, 자동차, 노트북 등의 모양으로 된 종이인형을 태운다. - 사진: 신싱호지문화-지찰공예미학(新興糊紙文化-紙紮工藝美學)’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이렇게 호지는 타이완에선 매우 좋게 받아들이지는 게 아니지만, 프랑스에서는 “망자에 대한 낭만적인 사랑”으로 여겨집니다. 몇 년 전에 한 프랑스의 큐레이터가 타이완 여행할 때 상제들이 아름답고 섬세한 호지 제품을 태우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는 프랑스 사람들이 꼭 이 아름다운 호지 공예물을 한번 보았으면 해서 호지 전문점인 신싱호지점(新興糊紙店)을 방문하여 그들의 제품을 2016년 ‘파리 디자이너의 날(D’Days)’ 행사에서 전시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인 2019년 6월에는 신싱호지점은 프랑스 문화부와 중화민국 문화부의 초청으로 프랑스 케브랑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에서 팰리스 파라다이스(Palace Paradise)를 제목으로 한 전시회를 열고 타이완의 호지 문화를 프랑스 사람들에게 보여줬습니다.

타이완을 대표하여 프랑스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며 호지 공예의 새 이정표를 세운 신싱호지점은 2013년 신베이시 전통공예가상을 수상한 장쉬페이(張徐沛)가 1950년에 신베이시 신좡(新莊)에서 설립했습니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 10여 명 호지 사부들이 협력해야 모든 주문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으나 인쇄 기술의 발달로 호지 제품의 생산자동화와 양산이 가능해지면서 호지를 손으로 만드는 신싱호지점과 같은 전통 수작호지 가게는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가족이 운영하는 호지점을 살리고, 또 호지 공예가 계속 쇠퇴하지는 않도록 장쉬페이의 딸인 장완잉(張宛瑩)과 아들인 장쉬잔(張徐展)은 만화가 친구 잔위주(詹昱筑)와 함께 신싱호지문화(新興糊紙文化)라는 조직을 창립하여 호지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호지를 단순 제품이 아닌 수준이 높은 예술품이나 유용한 문화 상품으로 승화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워크숍을 개최하여 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호지 제작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예술품으로 오래 보존할 수 있는 호지 입체동화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호지 기술로 만든 인형 - 사진:‘신싱호지문화-지찰공예미학(新興糊紙文化-紙紮工藝美學)’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이외에도, 신싱호지문화 창립자 중 한 명인 장쉬잔은 또한 애니메이션 디자이너인데 그는 호지 기술로 만든 인형을 활용하여 여러 편의 인형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며 타이완의 호지 공예를 다른 형식의 예술을 통해 세계에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2018년에 《Si So Mi》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타이완 가장 권위있는 영화시상식 금마장(金馬獎)의 최우수 단편 에니매이션 영화상 부문 후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2020년에는 독일 최대의 상업은행이자 투자은행인 도이체뱅크(Deutsche Bank)에 의해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고 독일에서 전시회를 연 바 있습니다.

호지는 그저 종이에 그치지 않고 망자에 대한 생자의 그리움과 촉복을 담은 선물이고, 때로는 경사스러운 일에 대한 기쁨의 축하이기도 하며  문화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도 굉장히 뜻깊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비록 시대가 흘러가면서 호지 공예가 결국 쇠퇴하게 될 수밖에 없는 듯하지만 장씨 가족을 비롯한 호지 장인들의 노력을 통해서 호지는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고 더 다양한 형식으로, 더 가치있게 보존되고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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