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臺 치파오의 기원 및 발전사

  • 2022.09.26
현대 속 전통기예
장인이 치파오를 만들고 있다. - 사진: 타이베이시 정부 산업 발전국 프로젝트 '엑스트라 오리지널 타이베이(尋常.台北)' 페이지 캡쳐

중국의 의복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게 바로 치파오(旗袍)입니다. 치파오는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인들이 입던 긴 옷인 창파오(長袍)에서 유래했습니다. 만주족을 기인(旗人)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시작되어, 한족이 이를 치파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기마족인 만주족을 위해 다자인된 옷으로 옆트임이 있고 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습니다.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시절에 서양식 의상의 영향을 받아 소재와 형태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길이와 소매가 짧아졌을 뿐만 아니라 몸에 타이트하게 붙게 되어 몸매 라인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중국의 치파오는 일제시기 중기 일본과 중국 간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타이완으로 전파됐습니다. 당시 타이완에서는 치파오가 아닌 ‘창산(長衫)’이라고 불렸으며, 상류층 여성부터 커피숍 웨이트리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창산을 즐겨 입었습니다. 일치시기 말기에는 일본 정부가 타이완을 포함한 식민지 주민들을 '황국신민' 즉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황민화정책을 시행했는데, 이에 따라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 의상인 창산은 ‘도발적인 의상’으로 지정되어 착용이 제한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웨이트리스와 술집 종사 여성들이 창산 말고 심플한 드레스나 투피스를 입도록 요구하며, 또 창산의 단추를 서양식 단추로 바꾸고 바늘로 옆트임을 꿰매어 붙이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타이완에 거주하던 일부 일본인들이 창산은 기모노보다 훨씬 편한 데다가 아열대 국가인 타이완의 습하고 더운 기후에 적합하기 때문에 창산을 금지하는 것보다는 그의 장잠을 살리며 일본 주도 하의 동아시아 지역의 특색 복장인 ‘싱야푸(興亞服)’을 개발하는 건 더 낫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로 인해 타이완 여성들은 창산을 입는 데 덜 제한을 받게 됐으나 중일전쟁이 심화되면서 창산을 입고 나가는 사람이 점차 없어졌고, 1943년에는 치파오를 입는 풍속이 완전히 타이완에서 사라지게 됐다고 합니다.

1945년 일본이 중일전쟁에서 패해 타이완은 중화민국으로 반환됐습니다. 비록 전쟁이 끝난 후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기쁨과 감격을 표하기 위해 수많은 타이완인들이 중화문화를 상징하는 고급 의상인 치파오를 다시 입게 됐습니다. 하지만 1947년 불법담배매매 검거사태를 발단으로 228 민중봉기 사건이 발생한 후 국민당 정부에 대한 타이완인들의 불만이 커졌고, 치파오를 입는 사람도 많이 적어졌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많은 연예인, 미인대회 참가자, 상류층 여성들이 치파오를 즐겨 입었고, 초대 영부인인 장숭메이링(宋美齡) 여사도 치파오를 매우 좋아하고 항상 치파오 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 10년 동안 치파오는 굉장히 성행했고, 한 거리에 여러 개의 치파오 가게가 모여 있는 광경이 곳곳에서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치파오는 역시 낙화유수처럼 쇠퇴해졌고, 현재는 결혼식, 명절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국제적인 행사에서만 치파오를 찾아볼 수 있으나 치파오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여전히 인정받아 전통복장문화의 모범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타이완 치파오 하면 이 분이 절대 빠질 수 없는데 바로 66년 넘는 경력을 가진 린진더(林錦德) 장인입니다. 현재 80세인 국보급 차피오 장인 린진더 선생님은 과거에 중화민국 전 총통 장징궈(蔣經國)의 러시아 부인 장팡량(蔣方良)의 치파오 디자이너로 일한 바 있습니다. 그는 13세에 견습생으로 양복제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14세에 치파오 제작으로 전향했으며, 2년 뒤에는 ‘화메이(華美)’ 치파오 가게에 취직했습니다. 35세에 화메이 치파오 가게를 떠나 ‘진셔우(錦繡)’ 치파오 가게를 창립했고, 8년 뒤에는 가게 규모를 확대하고 가게 이름을 ‘상하이 화메이 한탕(上海華美漢唐)’으로 바꾸고 현재까지 운영해 왔습니다. 린진더 선생님은 양복 제작을 배운 적이 있으니 전통적인 치파오를 만드는 것 외에도, 양복 요소를 활용해 치파오를 개량했습니다. 예를 들어, 치파오가 몸에 더 타이트하게 붙이도록 소매를 양복 식으로 만들고, 또 밑단은 옆트임뿐만 아니라 A자형이나 피쉬테일 스타일로도 만듭니다. 린진더 장인이 제작한 치파오는 다양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몸에 잘 맞아 편하기도 해서 수십년 동안 호평만 받아왔습니다.  

66년 넘는 경력을 가진 치파오 장인 린진더(林錦德) - 사진: 타이베이시 정부 산업 발전국 프로젝트 '엑스트라 오리지널 타이베이(尋常.台北)' 페이지 캡쳐

아름다운 치파오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린진더 선생님은 치파오 문화를 보존·전승하기 위해 학도를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치파오 제작 기술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수하고 있습니다. 비록 시대와 산업의 변화에 따라 과거 길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치파오는 돌이킬 수 없는 쇠퇴의 길을 가고 있지만, 린진더 선생님을 비롯한 차파오 장인들 덕분에 치파오의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져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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