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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는 전통기예2] 시원함과 편안함을 주는 '린초' 편직 기술

  • 2022.08.15
현대 속 전통기예
선풍기와 에어컨이 없던 시대에 타이완인들이 린초(藺草, 골풀)로 만든 돗자리, 방석을 사용하며 무더의를 이겨냈다. - 사진: '린자(藺子)'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요즘 정말 너무 덥죠? 5분만 밖에 나가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고 짜증이 나는 날씨입니다. 이런 날엔 어디 멀리 나가는 것보단 오히려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게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최초의 현대적인 전기 에어컨은 1902년 미국의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인 윌리스 캐리어(Willis Carrie)에 의해 발명되었으나, 1926년이 되어서야 타이완에서 에어컨이 최초로 출시되었고, 선풍기도 일제시기(1895-1945)에 처음으로 도입됐는데, 그럼 선풍기와 에어컨이 없던 시대에 타이완인들이 어떻게 무더의를 이겨냈을까요? 특히 잠 잘 때는 너무 더우면 수면에 방해가 되고 심지어 잠에서 깰 수도 있잖아요. 이 문제를 극북하기 위해 당시의 타이완인들은 이것을 이용했었습니다. 바로 린초(藺草, 골풀)로 만든 사원하고 편안한 돗자리입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과거엔 천연 린초로 만든 쾌적한 냉감효과를 제공하는 돗자리, 방석 등 제품들은 타이완 모든 가정에서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아이템이었으며, 심지어 일제시기에는 쌀, 설탕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품목으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3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린초 편직 문화가 점차 쇠퇴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전통 공예에 대한 보호 의식이 대두되고 정부와 고향 회귀 청년들이 문화 부흥 및 보존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이 아름다운 공예 기술은 다시 한 번 대중으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린초 제품의 주요 생산지역은 타이완 북서부 도시 먀오리(苗栗)현의 위안리진(苑裡鎮)이며, 이곳은 ‘린초의 고향’이라고 불립니다. 위안리진은 먀오리현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먀오리현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도시 중 하나로, 다안(大安)강 충적평야에 있고 벼를 재배하므로 '먀오리의 곡창지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벼 외에도, 위안리진에서는 타이완 특유종, 일반 린초에 비해 껍질이 단단하고, 섬유가 섬세하고, 흡습성이 강하며, 향기가 오래 지속되는, 줄기가 정삼각형인 정삼각 린초(正三角藺)를 주요 생산·수출하는 지역이며, 정삼각 린초로 제품을 만들고 파는 것은 위안리진 주민들의 공통된 추억일 뿐만 아니라 가정경계의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합니다.

정삼각 린초(正三角藺)를 수확하고 있는 농부 - 사진: '린자(藺子)'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타이완 공예의 아버지’ 옌수이룽(顏水龍)이 작성한 《타이완 공예(台灣工藝)》 라는 책에 따르면, 위안리 린초 문화의 시작은 적어도 청나라 시기인 17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위안리와 다쟈(大甲)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핑푸(平埔)족인들은 늘 야생 린초을 건조시키고 다양한 생필품으로 짰습니다. 이후 한족들은 린초 짜기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린초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린초 제품이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면서 린초 편직을 전업으로 하는 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린초로 짜는 기법도 풍부해지게 됐습니다.

일제시기에는 일본인들도 린초 제품을 좋아하므로 위안리 지역의 여성 장인인 홍위안(洪鳶)에게 린초로 서양식 모자를 만들도록 하고 일본 본토와 다른 나라에 수출했습니다. 당시 린초 모자의 수출량은 최고로 1600 만 여 개에 달하며 품목으로는 생필품인 쌀과 설탕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때 위안리에서는 90%가 넘는 여성들이 린초 제품 생산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부터 딸, 며느리까지 집집마다 린초을 짜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위안리가 가장 번영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린초로 만든 모자들 - 사진: '린자(藺子)'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하지만, 1971년 이후에는 값이 싸고 가공이 쉬운 플라스틱의 출현과 공업화의 발전으로 인해, 린초 용품 제조업은 전례 없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위안리 지역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공장에 들어가게 됐으며, 이는 위안리 린초 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린초 짜기를 할 줄 아는 위안리 지역 부녀들이 나이에 들어 있따라 생산 전선에서 물어나면서 이 전통 공예는 사라질 위기까지 직면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에는 현지 주민들은 린초 공예를 부흥시키기 위해, 문화협회를 조직해 홍보 활동을 시작했으며, 초등학교에서도 관련 수업을 개설해 학생들에게 린초 편직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농회, 발전협회, 학회 등 단체들에서도 잇따라 린초 산업 부흥의 행렬에 동참하게 되면서, '위안리 린초’은 다시 대중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었고, 린초 편직 기술을 가진 많은 위안리 부녀들도 린초 제품 생산에 다시 투입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합류도 린초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다양한 창의적이고 참신한 린초 제품이 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신세대 린초 공예가들 가운데, 린초 전문 브랜드인 ‘린자(藺子)’를 창립한 랴오이야(廖怡雅)와 남편 리이션(李易紳)이 위안리 린초을 보호, 보존하는 데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정부의 지지로 문화 부흥 추진에 큰 진전이 이루어졌지만 ‘정부 보조금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린초 산업을 또 다른 곤경에 빠뜨릴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정부의 지원이 종료되면 나이가 든 공예가들은 실업을 하고 생계유지가 곤란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공예가들에게 더 좋은 취업 환경을 제공’하고, 또 ‘이 아름다운 공예를 전승’하기 위해, 랴오이야와 리이션 부부는 2016년 ‘린자’를 창립했다.

린초 전문 브랜드인 ‘린자(藺子) 창립자 랴오이야(廖怡雅)와 남편 리이션(李易紳) - 사진: '린자(藺子)'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하나의 린초 제품을 탄생시키는 데 적어도 100일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모를 심어 수확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90일이며, 이후 린초를 건조, 분류, 가공, 직조, 성형(成型) 및 2차 가공을 시키는 데 최소 10일은 걸려야 제품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린초 제품을 제조하는 것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인 만큼 공예가 할머니들이 더 높은 실질 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랴오이야와 리이션 부부는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할머니들의 작품을 사들일 뿐만 아니라, 할머니와 소통하고 제품에 새로운 요소를 첨가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기법 보존을 위해 할머니들의 진귀한 직조 기술을 직접 습득한 후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타이중 오페라 하우스와 먀오린 지역 편의점에 제품을 입점하고, 구호개발기구인 월드 비전 타이완(台灣世界展望會, World Vision Taiwan)과 협력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에게 린초 편직 기술을 전수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린초 공예에 대해 더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젊은 세대의 합류로, ‘린초 편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많은 위안리 부녀들도 보유하는 린초 기술을 통해 삶의 목표와 성취감을 되찾게 됐습니다. 신세대와 기성세대의 공동의 노력을 통해 ‘린초 편직’이라는 공예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알려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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