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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성황야 신앙문화와 신주 음식 문화 한번에 체험! - '신주 도성황묘'

  • 2022.04.11
현대 속 전통기예
신주 도성황묘(新竹都城隍廟)가 모시는 성황야상 - 사진: '신주 도성황묘'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타이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황야(城隍爺)묘인 신주 도성황묘(新竹都城隍廟)는 IT관련 공장과 기업이 집중하고 있어 '타이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신주시의 베이(北)구 중산(中山)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신으로 성황야를 모시고 있습니다. 성황야는 도시 외곽을 두른’성’(성벽)과 ‘황’(해자)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됐습니다. 타이완 문화에서는 성황야는 지역의 수호신이자 공명정대한 사법의 신으로 인간 세상의 선악을 기록하고 통보하며, 망령을 인도하고 심판합니다. 성황야는 보통 생전에 공명정대하게 법과 원칙으로 공무를 행했던 명관리, 명판관들이 담당하며 성(省)나 부(府)를 관장하는 도성황(都城隍)과 부성황(府城隍), 주(州)를 관장하는 주성황(州城隍), 현을 관장하는 현성황(縣城隍) 등 여러 계급이 있습니다. 신주 도성황묘는 바로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도성황을 모시고 있는 성(省)급 성황묘입니다.

청나라 시기인 1747년, 단수이(淡水)의 관원이던 청웨잉(曾曰瑛, 생년 미상~17531753년)이 주첸(竹塹, 신주의 옛 지명)에 단수이청을 둘 것을 결의하고 성황묘를 건설하기 시작해 다음 해에 건설을 완료했습니다. 당시 신주 성황은 관례에 따라 청성황(廳城隍)’으로 자리매김했으며, 1875년 타이베이가 타이베이부로 승격되었고 원래의 신주 단수이청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면서, 신주 성황이 또한 ‘부성황(府城隍)’로 승격됐습니다. 1891년, 청나라 조정은 민간에 떠도는 천재지변의 풍문에 대응하기 위해 신주 성황묘에서 재앙을 막는 액막이 법회를 거행하도록 하며 신주 성황을 ‘도성황(都城隍)’으로 봉했습니다. 이는 당시 타이완 전국에서 유일한 성급 성황묘였습니다. 일제시기인 1924년에는 낡아서 훼손된 성황묘의 재건을 진행했으며, 베이먼(北門) 현지의 정(鄭)씨 일가가 수리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이 재건 공사를 통해 현재와 같은 예스럽고 소박한 모양의 사찰로 재건할 수 있었으며 신주 3대 사당 중의 하나로 여겨지게 됐습니다. 1985년에는 신주시 지정 유적으로 선정됐습니다.

신주 도성황묘는 일제시기에 재건을 거치면서 당시 명장의 많은 작품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석조, 목조, 돌 사자, 대련 등 장식은 모두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중 삼천전(三川殿) 앞에 위치한 2개의 돌사자상은 유난히 방문객으로부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2개의 돌사자상은 중국 취안저우(泉州) 후이안(惠安) 황탕(黃塘)에 있는 위창호(玉昌湖)의 청두석(青斗石, Bluestone)을 사용한 것으로, 최상품 석재라고 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반질반질한 광택을 가지게 됐습니다. 돌사자는 그 귀여운 모습으로 중화우정공사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돌사자 우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신주 도성황묘는 매년 음력 6월 28일부터 저승의 문이 닫히는 음력 7월 30일까지 약 한 달동안 주첸 중원 성황제(竹塹中元城隍祭)를 개최합니다. 주첸 중원 성황제는 중원보도(中元普渡)의 행사가 변화한 것이며, 풍부한 문화적 함의와 지방적 특색, 민속적 의의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타이완 각 성황묘에서 개최하는 기복(祈福) 행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제의 여러 개 행사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항가해액(夯枷解厄)’ 행사인 것 같습니다. ‘항가’란 옛날 죄인처럼 형구를 목에 쓰는 것으로,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해액’은 ‘액막이를 해소하다’를 뜻합니다. 음력 7월 1일 오후, 수많은 신도들이 종이로 만든 형구인 ‘칼’을 어깨 위에 쓰는데 이 칼에서 벗어나는 의식을 통해 성황야에게서 죄를 사면받고 과거의 업을 행운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또, 축제는 7월 15일에 성황야가 신주 지역을 순찰하면서 외로운 혼을 구제하는 행차를 하면서 최고조에 이릅니다. 7월 15일 성황야 순례 행사가 열리기 이틀 전인 13일에, 성황야의 첫째 아들이나 둘째 아들이 비밀 암방을 나갑니다. 이는 호형제가 보통 밤에 나오는데 하지만 15일 성황야가 순찰하는 사간은 낮이라서 성황야의 첫째 아들이나 둘째 아들은 13일 밤에 먼저 비밀 암방을 하며 외로운 혼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성황야에게 알린 후 15일에는 성황야는 그 사정들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순례 행사와 함께 이날은 정조공연(鄭厝貢燕) 의식도 진행됩니다. 성황야는 신주 시내를 행차하며 베이먼가에 있는 정씨 집안의 사당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정씨 가문의 자제들이 진상한 인삼차와 제비집을 받으며 물로 얼굴을 씻기도 합니다. 이를 정조공연(鄭厝貢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풍습은 타이완에서 최초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주첸 베이먼 출신 정융시(鄭用錫-정용석788년~1858년)가 1828년 도성황묘 재건 시에 큰 공헌을 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씨 집안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도성황야가 행차할 때 정씨 일가의 사당에서 휴식을 취하며 정조공연 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황야의 얼굴을 씻은 물은 평안을 가져다 준다는 말이 있어 많은 신도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200여 년 역사를 가진 신주 도성황묘는 타이완 최대의 성황묘일 뿐만 아니라 사찰 주변에 음식 노점들이 많아 신주의 유명 먹거리들을 맛볼 수 수 있어서 관광객과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타이완의 종교 문화와 음식 문화를 한번에 체험하고 싶으신 분께 추천드립니다.

*원고 일부 내용은 내정부  '타이완 종교 명승지 100곳' 을 참조하였습니다. 내정부의 자료 제공에 감사를 드립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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