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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타이완에서 가장 풍부한 장식 예술을 자랑하는 성당 -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

  • 2022.01.24
현대 속 전통기예
천주교 가오슝(高雄)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자 아시아 3대 성당 중의 하나인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玫瑰聖母聖殿主教座堂) - 사진: '타이완 종교 명승지 100곳' 사이트 페이지 캡쳐

작년에 저는 타이완 최남단 핑둥(屏東)현에 있는 완진 성모성전(萬金聖母聖殿)에 대해서 소개한 바 있는데 이 교당과 제가 오늘 소개할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玫瑰聖母聖殿主教座堂)은 타이완 가장 중요한 2개의 천주교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진 성모성전은 ‘바실리카 성당(교황이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으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Scanti Petri)에 이어 두번째로 격이 높은 성당입니다.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은 천주교 가오슝(高雄)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자 아시아 3대 성당 중의 하나입니다. 이 두 교당의 공통점 중 하나는‘봉지(奉旨)’라고 새겨진 석판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봉지’는 ‘임금의 명령을 받들다’는 뜻인데 당시‘봉지’석판을 가진 곳을 지나는 관료들과 군인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해야 됐습니다. 또, 이 두 성당은 모두 1863년 5월 같은 사람에 의해 건설된 것이라 인터넷에서 ‘타이완 최초의 성당’을 검색해 보면 이 두 성당은 답으로 나올 겁니다. 완진 성모성전은 예전에 소개했으니까 오늘은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을 집중 소개하겠습니다.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은 간단하게 로사리오 성당 혹은 첸진(前金) 천주 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첸진 천주 성당이라고 불리지만 가오슝 첸진구가 아닌 링야(苓雅)구에 있습니다. 청나라 시대인 1858년, 청나라 조정이 톈진(天津) 조약을 체결한 후 천주교 박해가 중단되자 2명 스페인 신부 페르난도 세인즈(Fernando Sainz, 1832년~1895년) 와 앙헬 보푸룰(홍보록, 洪保祿)이 타이완으로 건너와 포교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중국인 전도사 4명과 함께 현 성당 부지를 구매하여 볏짚으로 간단하게 임시 포교원을 만들었으며, 몇 년 후 다시 흙벽돌, 산호석, 콘크리트 등 재료로 성당을 재건했습니다. 1863년 재건이 완료된 후 성당은 스페인에서 성모상을 모셔오면서 로사리오 성모성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일제시대였던 1928년에는 본당 신부로 재작한 리안쓰(李安斯, 생년 미상~1956년) 신부가 성당이 더 많은 신도를 용납할 수 있도록 성당 재건을 시작하며 건물에 르네상스식 스타일을 적용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1948년에는 선후로 주교좌(카테드랄) 성당과 바실리카 성당으로 지정됐습니다. 이후 크고 작은 몇 번의 수리를 거치다가 1995년에 다시 한번 재건되어 내부의 나무 구조가 철재로 바뀌었습니다. 2001년에는 성당은 가오슝 역사 건축물 10곳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리고 타이완 역사 건축물 100곳 중 1위로 선정됐습니다.

로사리오 성모성전 주교좌 대성당은 자주 볼 수 있는 고딕 양식 성당처럼 긴 신랑(nave), 즉 성당 건축에서 중앙 회랑에 해당하는 중심부로서 교회 내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넓은 부분이 있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높이 솟은 첨탑 양옆에 작은 첨탑이 배치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중후하면서 시각적으로 하늘을 향해 위로 솟아 있는 건물 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요 색깔은 회색이고 초록색도 조금 있어 장엄하고도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또 아치형 창살과 장미 창으로 우아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타이완에서 가장 장식 예술이 풍부한 천주교 성당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편, 성당 정면의 아치문 꼭대기에눈 앞에서 언급했던 ‘봉지(奉旨)’ 석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당시 타이완의 흠차대신이었던 심보정(沈葆楨, 1820년~1879년)을 통해 동치 황제에게 받은 것인데 심보정은 타이완 근대화의 기초를 세우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청나라 말기 시대의 관리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심보정에 대해서 좀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1987년 청나라와 일본 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던 류큐국의 어민들이 태풍에 의해 표류하다가 타이완 남부에 위치한 핑둥지역에 도착하였고, 그중 54명은 현지의 모란사(牡丹社)라는 원주민족에게 살해됐습니다. 당시 한국, 류큐국, 그리고 타이완섬을 탐내고 있던 일본은 이를 계기로 타이완섬을 침략했는데 이는 모란사 사건(牡丹社事, Botan tribe Incident) 또는 ‘타이완 사건(台灣事件)’이라고 불립니다.

이 사건 발생 이전 청나라 조정은 타이완섬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고 그저 타이완섬이 다시‘반청복명’의 근거지가 되지 않도록 소극적으로 타이완섬을 통치하고 있었으며 사건 발생 이후 타이완섬의 중요성을 깨달아서 ‘적극 통치’ 정책을 취하게 되고  선정대신 심보정을 흠차대신으로 파견해 타이완 사무를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심보정은 타이완에 와서 정치부패 문제 해결과 해방 강화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시설과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예컨대, 타이완 동부 개발을 위한 개산무범(開山撫番, 중앙산맥을 뚫고 서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고 동부 원주민을 초무함) 정책을 시행했고, 또 중국인이 가족을 데리고 타이완으로 옮기지 못하거나 한족과 원주민족의 교류를 차단하는 여러 개 금령을 해제하여 타이완 경제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사람이라고 평가 받았습니다. 

심보정을 통해 받은 ‘봉지’석판은 1928년 성당 재건 당시 잠시 소재가 묘연했으나 1972년 신도의 기증으로 성당 밖의 성모정을 건설하기 위한 기초 공사를 하다가 땅속 깊이 묻혀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되어 다시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그리고 석판 좌우 양쪽에는 프란체스코 교황과 추기경의 휘장이 걸려 있습니다.

성당은 매우 아름다우며 2007년 드라마 《여기서 사랑을 찾았다(這裡發現愛)》의 촬영지로 한때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 왔습니다. 현재는 사진 쵤영이 금지되어 교회에 허락을 받아야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카메라가 아닌 눈으로 직접 이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어서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청취자분께서 나중에 가오슝으로 놀러 오시면 한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원고 일부 내용은 내정부  '타이완 종교 명승지 100곳' 을 참조하였습니다. 내정부의 자료 제공에 감사를 드립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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