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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i 중앙방송국Rti 중앙방송국영험한 월하노인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당 - 샤하이 성황묘

  • 2022.01.03
현대 속 전통기예
영험한 월하노인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당 샤하이 성황묘(霞海城隍廟) - 사진: '타이완 종교 명승지 100곳' 사이트 페이지 캡쳐

타이베이시 다다오청(大稻埕) 디화(迪化) 옛거리에 위치한 타이베이 샤하이 성황묘(霞海城隍廟-샤하이 청황묘)는 성황야를 모시고 있으며 다다오청 일대 민간 신앙의 주요 중심지로 ‘다다오청 3대묘’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성황의 성(城)은 성벽을 뜻하고 황(隍)은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연못인 해자를 뜻합니다. 그래서 성황야 신앙이란 도시 수호신에 대한 신앙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이완 문화에서는 성황야는 공명정대한 사법의 신으로 이승과 저승 양 세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을 없애고 인간 세상의 선악의 기록, 통보, 죽은 자에 대한 심판과 망령의 인도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법이 아직 완성되지 못해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낮은 이 세상에서 사법의 신으로 간주되는 성황야는 사람들이 자신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게 하면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샤하이 성황묘의 역사는 청나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청나라 시기인 1821년 백여 명의 중국 취안저우(泉州) 퉁안(同安) 사람들이 배를 타고 타이베이 멍자(艋舺)에 도착했는데 그중 상인이었던 천진롱(陳金絨)은 고향 퉁안에서 가지고 온 샤하이 성황야 신상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 동향 사람들이 제사할 있게 했습니다. 1853년, 멍자에서 취안저우(泉州) 사람끼리의 싸움이 발생하자 퉁안 사람들이 잇달아 다다오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난리 중 보존된 성황야 신상은 다다오청으로 옮겨 온 후에도 천(陳)씨 집안에서 모셔졌으며, 1856년 퉁안 사람들이 현재 사당의 자리에 사당을 건설했습니다. 사당은 매우 협소하여 약 46평밖에 되지 않지만 600기가 넘는 신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샤하이 성황묘는 성황야 외에도 성황야의 부인인 성황부인, 월하노인, 저승사자인 칠야(七爺)과 팔야(八爺), 그리고 당시 취안저우 사람까리의 싸움에서 현지 주민과 성황야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을 한 38명의 향민 등을 모시고 있습니다. 샤하이 성황묘의 주신은 성황야이지만 1971년부터 모시기 시작한 월하노인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의 월하노인은 붉은 실로 수많은 남녀의 인연을 성공적으로 맺어 주었고, 매년 여러 쌍의 신혼부부들이 월하노인에게 결혼 소식을 전하고 떡과 사탕도 주려고 사당을 찾아오며 또 수많은 솔로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미혼남녀와 외국 관광객도 찾아와 타이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월하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샤하이 성황묘에서 모시는 성황부인은 또한 유명합니다. 초기 다다오청은 타이베이에서 중요한 경제 발전 중심 중 하나였으며 이로 인해 풍류를 즐기는 장소도 생겨났습니다. 부녀자들은 성황묘에서 같은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는 성황 부인에게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수놓은 신발을 바치며 감사의 뜻을 보였습니다. 이는 후에 매년 성황 부인의 탄신일인 음력 9월 4일에 수놓은 신발과 떡을 바치며 성황 부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전통 풍속으로 발전했습니다.

한편, 샤하이 성황묘는 벌집혈(蜂巢穴)이란 영령스러운 땅에 위치해 있는데 땅의 좋은 기운을 파괴하지 않게 당시 사당 건설 시 대규모 공사를 하지 않고 하나의 건물만 지었습니다. 사당의 외관은 칼과 비슷해 보이는데 이는 성황야의 판단은 칼처럼 정확하고 신속한 것을 의미하며, 또 이 칼은 악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성황묘는 몇 차례의 수리를 거쳤으며 비록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곡선과 장식 등의 특색을 중시하는 전통 민난식 사당 건축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습니다. 사당 장식 예술 중에는 흙 인형, 벽화, 채색화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제시대 작품 외에도 여러 차례의 수리 공정을 통해 명사의 손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신상, 제사 용구, 돌 비석, 역사 문건 등의 문물도 보존하고 있습니다.

샤하이 성황묘는 매년 성황야의 탄신일 음력 5월 13일 성황야 영접 행사를 개최합니다. 성황야 영접 행사는 1879년에 시작됐고, 현재는 다다오청 신앙권의 중요 활동으로 타이완 북부에서 가장 큰 종교 행사입니다. 축제의 규모가 매우 커 ‘베이강(北港)에는 마조 영접이 있고, 타이베이에는 성황 영접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또, 성황을 이룬 행사의 모습을 두고 ‘5월 13일 성황 영접 행사는 사람으로 붐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행사 개최 전의 음력 5월 10일, 평상 시 샤하이 성황묘에 봉안돼 있는 동, 남, 서, 북, 중 등 5가지 방향을 장관하는 5명 신장들의 신상을 각 방향에 위치해 있는 토지신묘로 옮기고 백성의 평안과 행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보우하도록 합니다. 이는 ‘군대를 파견하다’를 뜻하는‘방군(放軍)’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후의 5월 18일에는 5명 신장들의 신상을 다시 샤하이 성황묘로 옮기는 건데 이는 ‘군대를 철수하다’를 뜻하는‘수군(收軍)’이라고 합니다. 행사 개최 이틀 전에는 암방(暗訪)이라고 불리는 암행 순시 의식을 진행합니다. 5월 13일 행사 개최 당일에는 성황야 순례 행사가 진행되는 동시에 용춤, 사자춤, 북관음악 등 전통기예 공연단이 퍼포머스를 펼칩니다.

샤하이 성황묘는 사당의 크기가 크지 않지만 성황야 영접 행사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데요. 행사의 규모가 해마다 다소 다르지만 성황야의 탄신을 축하하는 신도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샤하이 성황묘가 백년 이상 흥성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고 일부 내용은 내정부  '타이완 종교 명승지 100곳' 을 참조하였습니다. 내정부의 자료 제공에 감사를 드립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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