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라이야족(撒奇萊雅族)은 인구수가 약 1천 명의 소수민족으로 타이완 동부 화롄평원(花蓮平原)에 거주하고 있으며 예전에 아메이(阿美)족으로 분류되었으나 2007년 1월 17일 기해 중화민국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아 13번째 독립된 타이완 원주민족으로 자리했습니다. 옛날 사람은 사치라이야족을 치라이(奇萊)족이라고 부르고 사치라이야족의 거주지 화롄평원을 ‘치라이평원’, 인근 산맥을 ‘치라이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치라이야족은 모계사회로 결혼 후 남자가 여자 집에서 사는 풍습이 있으며 농업, 어업,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또, 아메이족과 비슷한 연령 계급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15세 이전의 남자는 유년급(幼年級)이고 15세부터 23세 사이는 예비계급(預備階級)으로 청년집회소(taloan)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훈련을 받고 나서 성년급(成年級)으로 승진합니다.
사치라이야족은 만물에 영혼이 있고 초자연적인 힘이 어디나 다 있다고 믿으며 신령을 디토(dito)라고 부릅니다. 신령은 대략적으로 만물신(Malataw), 수호신(Dungi’), 조상의 영혼(Ditu nu babalaki), 자연계의 영혼(Ditu)으로 분류되며 사제(mapalaway)를 통해 그들과 소통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미룬산(米崙山, 현 메이루산美崙山)을 통과하여 동쪽 바다를 향해 날아갈 것이고 제사할 때는 영혼은 바다에서 미룬산을 통해 부락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믿어집니다.
한편, 사치라이야족 일부분의 전통 문화는 지난날의 비참한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청나라 시기 조정은 1874년부터 타이완 중부 산악지대, 동부 화롄과 타이둥(臺東), 남부 핑둥(屏東)에 거주하던 원주민족을 토벌‧초무하는 '개산무번(開山撫番)' 정책을 실시했는데 사치라이야족과 거마란(噶瑪蘭)족은 이 정책에 불만해서 1878년 ‘쟈리완 사건(加禮宛事件)’이라고 불리는 항청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에서 약 4000명의 사치라이야족인이 전사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청군은 당시 사치라이야족 족장의 전신피부와 투피, 눈알을 잘라내고 참혹한 수단으로 그를 살해했으며 족장의 아내에게도 큰 나무로 온몸의 뼈를 부수는 극현을 가했습니다. 멸족을 당하지 않도록 기타 족인은 아메이족 각 부락으로 도망치고 숨어 살게 됐습니다. 일치 시기 일본이 타이완 원주민 분류를 진행할 때도 같은 참극이 다시 일어날까 봐 신분을 감춰서 아메이족으로 분류됐습니다. 2007년 독립된 원주민족으로 공식 승인을 받았지만 전통 문화와 역사 기록이 이미 심하게 없어져서 회복 작업이 매우 어렵습니다.
사치라이야족 전통 복장의 주요 색깔이 금색과 진한 빨간색인 것은 바로 이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금색은 사치라이야족의 선조은 땅에서 태어난 것과 고향에 다시 돌아간 것을 의미합니다. 진한 빨간색은 쟈리완 사건에서 흘린 피와 민족의 생명 및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여성 머리장식품에 달린 하얀 구슬꿰미는 눈물이고 녹색 구슬뀌미는 마을 방위로 사용하는 가시 대나무 담장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발토시의 갈색 부분과 녹색 부분은 전쟁에서 도망쳤을 때 옷에 튄 흙, 나무가지, 풀을 상징합니다.
사치라이야족 한 해의 가장 중요한 축제 ‘불신 축제(火神祭, Palamal)는 쟈리완 사건에서 의생당한 족장과 족장 부인을 포함한 사치라이야족인을 제사하는 축제로 사건이 발생한 지 128년이 된 2006년에 처음으로 개최됐습니다. 불신 축제는 매년 10월 한 날의 저녁 때 거해되는데 이것은 당시 극형을 받고 죽은 족장의 사망 시각은 저녁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불신 축제는 서곡(序曲), 영곡(迎曲), 제곡(祭曲), 화곡(火曲), 종곡(終曲) 등 5개 절차로 이루어지며 축제 진행 동안 빨간색, 흰색, 파란색, 푸른색, 검은색 등 오색 사자(使者)는 족인을 위해 기복을 할 겁니다. 빨간 사자(Salengacay)는 불신 영접과 지혜 전승을 담당하고, 흰색 사자는 횃불을 피우고 족인의 미래를 밝히고, 파란 사자는 술로 족인의 지혜와 마음의 갈증을 해소시키고, 푸른 사자는 가시 대나무로 몸이 가진 불길한 애운을 제거하고, 검은 사자는 악령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축제를 시작하기 전 전쟁에서 불타오른 가옥을 표현하는 제사집(祭屋)을 세우고 제물로 콩, 오이 등 채소를 넣습니다. 축제를 시작한 후 축제 주도자는 광장 중앙에서 불더미를 피우고 나서 의식 진행 절차와 쟈리완 사건에서 의생당한 선열들의 사적을 설명하며 족인에게 역사를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후 신령을 맞이하는 의식을 진행하여 세상의 모든 신과 조상 영혼을 축제로 초대합니다. 그 다음으로 오색 사자는 횃불을 피우고 쟈리완 사건에서 족인과 청군이 싸우며 도처에 불이 번진 모습을 재현합니다. 불을 붙인 볏짚으로 이루어진 원형 속에서 서 있는 것은 전쟁에서 불바다에 처한 것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족인을 이끌어 불이 없는 틈에서 나가는 것은 불바다에서 탈출한 것을 상징합니다. 축제의 마지막으로 당시 고통 속에서 생을 마친 족장과 족장 부인을 화장해주는 의미로 제사집을 태우고 손을 잡고 축제에 참여하러 온 조상 영혼과 기타 신령을 보내며 축제를 마칩니다. 제사집을 태우는 것은 ‘사치라이야족은 불 속에서 죽고 불 속에서 부활한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