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무엇으로 하루를 시작하나요? 따뜻한 아침햇빛?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모닝송? 향기로운 커피 한 잔? 국제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 ICO)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타이완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186잔으로 세계 평균인 126잔보다 높았습니다. 소득이 향상되고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많은 타이완사람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커피공화국라 불리는 한국도 마찬가지죠. 2023년 한국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무려 세계 평균의 2.5배였습니다. 이제는 커피가 없으면 삶의 낙도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보통 커피하면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있는 열대기후 국가가 가장 먼저 떠오르죠. 그러나 사실 아열대인 타이완은 일본 식민지 시대부터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북회귀선에 걸쳐있는 윈린(雲林) 구컹(古坑)은 일조량과 강우량이 풍부해 커피 재배에 상당히 적합합니다. 여기서 재배된 커피는 아라비카종에 속하며 남다른 로스팅과 추출 방식을 통해 특별한 풍미를 선보여 ‘타이완 커피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윈린 지역 가장 동쪽에 위치한 구컹은 윈린현(縣)에서 면적이 가장 크고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지난주 소개해 드린 타이완 대표 놀이공원 ‘졘후산(劍湖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윈린 지역은 대부분 평탄한 평원인데 유독 구컹만 아리산(阿里山) 산맥에 위치해 ‘윈린의 가든’, ‘중부지역의 양밍산(陽明山)’ 등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리적 조건으로 커피, 차, 감귤, 오렌지, 죽순 등 농상품으로 유명하며 이 중 특히 오렌지 생산량은 타이완 1위입니다.
구컹 풍경(雲嶺之丘) - 사진: 교통부 관광서
다양한 지역 특산품 외에 구컹에게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는데, 바로 ‘뇌신 토르가 가장 즐겨 찾는 곳'입니다. 구컹은 평원과 산간지대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낙뢰피해 발생이 빈번하며 타이완 전역에서 낙뢰 횟수가 가장 많은 곳의 하나입니다. 현지 주민들은 전기 제품이 고장나지 않도록 천둥소리가 들리자 바로 전기플러그를 뽑는 습관까지 키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연현상은 바로 ‘뇌신 토르의 방문’입니다.
이어 다시 커피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타이완 커피의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요. 당시 네덜란드인이 커피를 타이완으로 들여왔지만 네덜란드인 사이에서만 유행했습니다. 다음으로 19세기 타이완 항구가 개항된 이후 영국 상인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라비카종을 수입해 타이완 북부지역에서 재배했으나, 적합하지 않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최초의 대규모 재배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등장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타이완의 지리적 조건을 자세히 조사한 후 브라질에서 아라비카종을 타이완으로 들여와 윈린, 난터우(南投), 가오슝(高雄), 타이둥(台東), 화롄(花蓮) 등 곳에서 재배했습니다. 이 중 윈린 구컹에서 재배된 커피는 품질이 가장 우수했는데, 일본 정부는 구컹을 대상으로 대규모 농업조사를 실시해 해발고도 400~700미터를 주요 재배지로 선정했습니다. 그 후 구컹 커피는 타이완과 일본에서 명성을 떨치면서 심지어 일본황실로부터 ‘어용(御用) 커피’로 지정되었습니다.
1930년대는 타이완 커피 산업의 첫 전성기일 만큼, 첫번째 커피 전문도서, 첫번째 대규모 커피농장, 첫번째 타이완을 대표할 수 있는 커피 모두 이 시대에 등장했습니다. 다만 당시 타이완 농민들은 자신의 농장에서 커피를 재배할 수 없었고 재배할 경우 커피나무 묘목을 훔친 것으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일본 식민지 시대에 커피는 여전히 일본 상류층 사이에서만 유통되는 사치품이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 세계 커피 수요가 대푹 감소한 데 이어 타이완인도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없었기에 대부분 커피농장은 양식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타이완은 미국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고 커피산업을 다시 발전시키려고 했지만 높은 생산비용 때문에 결국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정부는 장려도, 제한도, 지도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정책을 실시해 타이완의 커피산업은 가장 어두운 시기로 진입했습니다.
1950년대 미국 군인과 함께 타이완에 온 믹스커피, 1960년대 타이완 국민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커피 문화, 1980 캔커피와 카페의 등장… 이 때 타이완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음식문화도 점점 서양화되었는데, 커피에 대한 수요가 크게 나타나는 시기였지만 타이완 커피는 좀 더 나중에야 두번째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터닝포인트는 1999년 발생한 921대지진입니다. 당시 중부지역은 크게 파괴되었고 산간지대에 있는 구컹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역의 재건을 위해 구컹 정부는 현지인들과 협력해 역사 속에서 ‘커피’라는 키워드를 찾아내어 구컹을 ‘타이완 커피의 고향'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중앙정부가 추진한 지역 관광 활성화 정책(一鄉一特色, One Town One Product)과 함께 현지 농민들이 커피를 재배하도록 격려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주5일 근무제도가 확립되면서 2003년 구컹 정부는 놀이공원 졘후산에서 ‘타이완 커피 페스티벌’을 개최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통해 구컹 카피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타이완 커피 산업의 두번째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 커피 열풍 속에서 외국 원두를 구컹 카피로 가장하는 불량업체가 대대적으로 나타나 타이완 커피에게 오명을 씌웠는데요. 다행히 이 때 커피문화가 이미 타이완 사회에서 뿌리를 내렸고, 커피체인점이 즐비하고 편의점에서도 커피를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커피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습니다. 정부는 커피산업의 산업전환, 퀄리티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커피 페스티벌, 커피 관광 등을 통해 타이완 커피를 다시 한 번 국제무대에 세웠습니다. 지난해 11월, 21회째를 맞은 타이완 커피 페스티벌은 4일 간 방문객 100만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구컹뿐만 타이완의 여러 산간지역에도 커피 산업이 활발하게 발전되고 있습니다. 현재 타이완 커피 생산량은 소비량의 2.5%만 차지하고 있지만 국제 대회에서 수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타이완 커피의 세번째 전성기는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구컹 카피 페스티벌 - 사진: 구컹카피페스티벌 페이스북
엔딩곡으로 ‘커피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요(咖啡在等一個人)’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저우훼이민(周慧敏)입니다. 오늘 방송이 끝난 후 커피 한 잔은 어떠세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의 커피, 이제 마시러 가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Coffee Consumption by Country
2. 我國咖啡市場分析,農業部。
3. 「反向輸出台灣咖啡文化!台灣精品咖啡國際戰役號角已響起!」,食力。
4. 陳雅玲,「這個鄉鎮『雷神索爾』最愛造訪 居民家電壞到怕」,聯合報。
5. 〈台灣咖啡興衰史〉,川咖啡。
6.〈一鳴驚人的台灣咖啡〉,甘樂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