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완의 대표 문학상인 ‘2023 금전장(金典獎)’ 본선 심사위원장을 맡은 시인 뤄즈청(羅智成)은 지난 1일 결선 총평에서 “후보에 오른 책 30권을 보면 올해의 창작 주제는 여전히 타이완인의 민족과 국가 정체성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인상이 가장 깊은 부분은 문학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폭넓은 상상력이며, 그들은 전통 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사실적인 요소를 판타지적인 이야기와 접목시켜 타이완에 대한 배려 및 비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며 올해 수상작의 특징을 분석했습니다.
최근 타이완 문단에서 우수한 20-30대 작가들이 배출하고 있는 가운데, 양솽즈(楊双子, 양쌍자)라는 필명으로 등단한 양뤄츠(楊若慈)는 여성과 여성 간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정신적 사랑을 잘 그려내는 작가입니다. 올해 금전장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연애소설 중 줄곧 수동적인 위치에 처해 있던 여성을 독립적인 개체로 묘사해 오랫동안 억압되던 감정을 속박에서 해방시키도록 합니다. 지난주 소개해 드린 허윈진(何玟珒) 작가와 비슷하게 양솽즈는 일본 서브컬쳐물(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속하는 백합(百合), 즉 GL(Girls' Love, 걸스 러브) 소설가로 데뷔했습니다.
사실 양솽즈라는 작가는 한 명이 아닌 한 쌍둥이입니다. 2008년 양뤄츠는 쌍둥이 동생 양뤄훼이(楊若暉)와 함께 백합물에 푹 빠져 이에 관한 창작과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문학을 전공한 언니 양뤄츠는 소설 창작, 역사학을 전공한 동생 양뤄훼이는 역사 자료의 수집을 맡으며 두 사람은 쌍둥이의 일본어 ‘ふたご(futago)’의 한자 ‘双子(솽즈)’를 필명으로 작품을 공동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작품 완성 전인 2015년 동생 양뤄훼이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태어났던 순간부터 서로 돌봐주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쌍둥이 자매가 이 순간에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혼자 남아 있는 언니가 자신을 따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까봐 동생은 임종 때 언니에게 “무조건 소설을 완성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동생이 죽은 지 1년 후인 2016년 양뤄츠는 약속대로 양솽즈라는 이름으로 첫 백합소설《달을 건지는 사람(撈月之人)》을 출판했고 동생의 소망을 이뤘습니다. 문학은 생과 사를 초월한 연결거리가 되었습니다.
동생의 유언은 예언처럼 언니를 창작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처녀작 발표 후 양솽즈는 일본 식민지 시대 타이완 젊은 여성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꽃 필 무렵(花開時節)》와 단편소설집 《꽃피는 소녀의 화려도(花開少女華麗島)》, 일본 식민지 시대의 타이완 음식소설 《타이완 만유록(臺灣漫遊錄)》, 자전적 에세이집《우리 집은 장르싱 옆집에 있다(我家住在張日興隔壁)》, 그리고 지난 8월 최신작《쓰웨이졔 1번지(四維街一號)》 등 작품을 잇따라 출판했습니다. 양솽즈의 작품에는 3대 키워드가 있는데요. 바로 여성, 일본 식민지 시대, 그리고 타이중(台中)입니다. 오늘은 시리즈 작품으로 여겨진 《꽃 필 무렵》과 《꽃피는 소녀의 화려도》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2017년 출판된 장편소설집《꽃 필 무렵》은 타이완 첫 여성 기자인 양쳰허(楊千鶴) 여사가 1942년에 출판한 동명 일본어 단편소설을 오마주하는 작품입니다. 해당 소설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신식교육을 받은 타이완 고교 여학생들이 과거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직장에는 여전히 견고한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꿈과 현실 사이에 부딪히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선배의 정신을 이어나간 양솽즈는 《꽃 필 무렵》에서 타임슬립 컨셉을 활용해 1930년대의 타이중으로 돌아가는 22살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주인공은 의외로 타이완 일본 식민지 시대 타이중 명문가인 양씨 집안의 6살 막내딸 ‘유키코’가 되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지난해 방송된 한국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줄거리와 조금 비슷하죠. 작은 몸 속에 어른의 마음이 숨겨 있는 유키코는 타이중여자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여고의 교장이 여자가 아니다니’라는 말을 하자 온 학교의 주목을 받아 ‘여자 교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잘 알고 있고, 어른의 지혜를 갖고 있어도 여전히 당시 여성의 처지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소녀들은 예쁜 꽃처럼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피었다가 시들었습니다. 양솽즈는 《문보(文訊)》 잡지에서 “이런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국가와 정치만 중시하는 남성의 역사 기록에 부재한다”며 “그래도 상관없고 문학이 대신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꽃 필 무렵》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보다 충분히 묘사될 수 있도록 2018년 단편소설집《꽃피는 소녀의 화려도》가 출판되었습니다. 명문 출신인 유키코와 다른 직업, 성장 과정 등을 가진 여성들은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에 있는 ‘화려도’가 바로 꽃이 만개하는 타이완섬입니다. 아름답고 강인한 여성들은 이 화려도에서 다른 여성과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꽃피는 소녀의 화려도》의 추천소문에서 작가 주요우쉰(朱宥勳)은 “일본 식민지 시대의 타이완 여성들이 설령 음악, 예술, 교육 등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뒀더라도 막상 결혼 적령기가 되자 결혼시장의 상품일 뿐”이라며 “동병상련한 소녀들이 외부의 어려움을 함께 막아내고 마음이 연결되는 것은 매우 논리적인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유키코는 일본인 동창 사키코를 소울메이트로 여기며 친구 이상의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꽃 필 무렵(花開時節)》의 시리즈 작품 《꽃피는 소녀의 화려도(花開少女華麗島)》 - 사진: Eslite
타이중 출신인 양솽즈는 작품에서 타이중에 실제로 있었거나 현존하는 랜드마크를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진입장벽이 높은 역사자료와 다르게 활발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를 통해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융합해 일본 식민지 시대의 타이완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솽즈는 음식을 잘 묘사하는 작가로 잘 알려지는데요. “한밤중에 양솽즈의 책을 읽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 43번째 시간에서 소개해 드렸던 타이중 시장 문학 전시회에도 양솽즈의 음식 에세이집《타이중 토박이(開動了!老台中:歷史小說家的街頭飲食踏查)》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엔딩곡으로 동생 양뤄훼이의 장례식에서 틀었던 노래 ‘넌 나의 귀염둥이(汝是我的心肝)’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타이완 최고의 록스타 우바이(伍佰)입니다. 작가 주요우쉰은 “양솽즈의 작품을 읽을 때 항상 우바이의 음악이 떠오르는데, 우바이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실시한 국어운동으로 인해 단절된 타이완어(台語) 노래의 재기를 이끄는 사람이라면, 양솽즈는 타이완 일본 식민지 시대 한참 유행했던 소녀소설을 부활시키는 자”라며, “그들은 역사적 전통의 재기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양뤄훼이가 이 말을 들으시면 많이 기뻐하시겠죠.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楊双子,《花開時節》。
2. 楊双子,《花開少女華麗島》。
3. 楊双子,〈昭和少女台中市街徒步日記:歷史小說《花開時節》的文學地景散步〉,《文訊》387期。
4. 廖梅璇,「穿越吧少女!結合百合元素與歷史質地的苦甜小說──讀楊双子《花開時節》」,博客來OKAPI。
5. 婉昀,「夜市炸雞排、麵包學徒到小說作家,專訪楊双子的創作之路」,女人迷。
6. 羅智成,「2023臺灣文學獎金典獎.羅智成.決審總評》臺灣書桌上正在發生的事」,OPEN BOOK閱讀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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