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날입니다. 11월 하니 11월과 관련된 곡들이 문득 떠오르는데요. 1992년생 영국 MZ 세대 싱어송라이터 가브리엘 애플린(Gabrielle Aplin)이 부른 노벰버(November)에서 11월 영국에선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씨로 묘사되죠.
“나는 언제나 11월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항상 비가 쏟아지네요"
미국 메탈 하드락 밴드 건즈 앤 로지즈(Guns N' Roses)의 1991년 곡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에서도 11월은 춥고 비가오는 으스스한 날씨로 소개됩니다.
“아니면 난 그저 추운 11월 비오는날 밖으로 걸어나가는것으로 우리 사이를 끝내겠어요”
한편, 11월 첫 날인 오늘 타이베이는 따뜻한 햇살과 함께 머리카락만 살포시 날리는 약간의 바람이 불어 참 좋은 날씨를 보입니다. 요즘 타이베이는 얇은 가디건 하나 걸치기 딱 좋은 그런 적당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공존하는 가을 날씨인데요. 시간을 쪼개서라도 산책을 하거자 자전거를 타는 등 조금이라도 더 밖에서 좋은 날씨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씨가 주는 행복이 큰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바쁜 일상에서 짬을 내 산책하는 건 생각 외로 쉬운 일이 아니죠. 회사 일, 가정 일, 육아 일, 어르신 돌봄 일 등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하고 나면 남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게 요즘 도시인들의 삶일 것입니다. 이럴 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는 시간을 이용해 그 주변을 걷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는데요.
한국 서울에는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 경복궁 옆 통인시장, 을지로의 방산시장과 광장시장 등이 있듯이 타이베이에도 다양한 전통시장이 있습니다. 타이베이시 시장처(臺北市市場處)에 따르면, 타이베이에는 총 48개의 전통시장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남먼시장(南門), 베이터우시장(北投), 청공시장(成功) 등이 있는데요. 오늘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 시간에서는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곳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중룬시장(中崙)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없는 거 빼고는 다 있을 만큼 온갖 식재료와 잡화점, 식당, 음료수 가게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이 한데 모여있는 중룬시장은 송산구 바더루(八德路) 3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둔화난루(敦化南路) 1단과 광푸난루(光復南路) 사이를 횡단하는 바더루(八德路) 3단은 타이베이 아레나 바로 뒤쪽에 나있는 작은 길인데요. 바더루 3단 가운데에 위치한 중룬시장은 민국 49년인 1960년 7월에 개장했고, 2000년 현재 중룬시장이 위치해 있는 건물이 완공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띄기 시작했습니다. 중룬시장 건물 1층에는 야채, 과일, 생선, 고기 등을 파는 상점들이 있고, 2층에는 푸드코트가 있어 타이완 굴전인 어아젠이나 볶음밥부터 건강식, 일식, 한식, 태국식 등, 가기만 한다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반까지 운영하는 중룬시장 건물 바로 뒤에는 작은 뒷골목들이 있는데요, 사실 이 뒷골목에 있는 전통 노점들이 훨씬 더 매력적입니다.
중룬시장 뒤로 쭉 뻗어 있는 골목길과 그 골목길을 축으로 양옆으로 뻗어있는 더 작은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아침 7시부터 이미 노점상들이 자신의 가게문을 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규모가 생각보다 꽤 커서 여러 블록을 지날 때 마다 새로 펼쳐지는 골목길 별로 장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요. 가족들의 한 끼 식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르신들은 저마다 일명 ‘구루마’ 전통시장 장보기용 핸드카트를 끌고 가게를 둘러봅니다. 1인용 책상 남짓한 크기의 작은 테이블 위로 생육고기가 덩어리째 쇠고리에 걸려있고, 그 옆에는 양배추, 청경채, 수련 등 타이완 사람들이 즐겨먹는 야채들을 파는 노점상이 있습니다. 요즘 타이완은 포도가 제철인지, 과일을 파는 가게를 지날 때 마다 타이완 국산 포도가 싱그러운 보라빛을 띈 채 손님들을 마주하고 있더군요. 한 송이에 300위안, 한국돈으로 약 12,000원 정도 합니다. 한국은 7~8월이 포도철인데 반해, 타이완은 10~11월, 바로 지금이 포도철입니다. 타이완 국산 포도 바로 옆에는 한국에서 수입해 온 연두빛 샤인머스켓도 팔고 있습니다. 아삭한 배 외에는 한국에서 수입한 과일은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샤인머스켓을 만나니 반갑더군요.
건물 안에 있는 중룬시장은 아침 10시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데 반해, 중룬시장 뒷 골목의 노점상들은 아침 7시부터 손님들에게 물건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부지런한 어르신들은 이 시간에도 꽤 많이 장을 보고 계시고요. 생고기, 야채, 과일뿐만 아니라 식그릇이나 천과 같은 직물, 각종 문구를 파는 잡화점까지 바더루 3단의 아침은 일찍부터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타이베이의 겨울은 이틀에 한 번꼴로, 게다가 하루 종일 비가 오는데요. 습한 것은 물론, 야외 활동을 하기 적합하지 않은 날씨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타이베이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가을 날씨를 더욱더 잘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요즘입니다. 11월의 첫 날, 청취자분들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감기와 건강 모두 각별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엔딩곡으로는 오늘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띄어드린 곡, 프랑스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재키 테라슨(Jacky Terrasson)의 노벰버(November)를 띄워드립니다. 미국 조지아 출신 아프리칸 아메리칸인 어머니와 프랑스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재키 테라슨은 클래식을 즐겨들으시는 부모덕에 어려서부터 일찍 다양한 음악에 노출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11월은 어떨지 한 번 들어보시죠.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