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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윈진(何玟珒) 《그날 우리는 닭 궁둥이를 따라 길을 찾았다》

  • 2023.11.06
포르모사 문학관
타이완 작가 허윈진(何玟珒)의 첫 단편소설집 《그날 우리는 닭 궁둥이를 따라 길을 찾았다》 - 사진: Eslite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완의 대표 문학상인 ‘2023 금전장(金典獎)’이 지난주 최종 수상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오는 11일 타이베이 화산문화단지에서 수상식이 열릴 예정이니 차후 방송에서 수상작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선 2022 금전장의 최연소 수상자 허윈진(何玟珒)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98년생인 허윈진은 최근 타이완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신세대 작가의 한 명입니다. 2022년 첫 단편소설집 《그날 우리는 닭 궁둥이를 따라 길을 찾았다(那一天我們跟在雞屁股後面尋路)》를 통해 등단하여 문학계 안팎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9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 작품은 타이완의 민간신앙, 민속문화, 성과 성별 이슈를 담고 있으며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기법으로 스토리를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문학이 낯선 독자라도 진입장벽 없이 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허윈진은 남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여성향 소설, 즉 보이즈 러브(Boys' Love, BL) 소설가 ‘싱위(星豫)’라는 필명으로 등단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과 및 역사학과 복수전공의 우세로 로맨스에 역사적 요소를 가미해 ‘타이완만의 BL 소설’을 창작하고 있습니다. 최근 타이완 문단에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또는 장르 소설을 접목시킨 작품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허윈진의 작품도 그렇습니다. 스크립트처럼 생생한 대화, 로맨스 소설의 코미디 요소, 기록문학의 진실성… MZ세대 작가들이 장르의 경계를 없애고 타이완 문단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로맨스 소설가로 데뷔해서 그런지, 허윈진은 시장의 흐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작가입니다. 한 팟캐스트 방송(帝國大學台灣文學部)에서 진행자는 허윈진을 ‘MSG작가(味精作家)’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허윈진의 소설은 언제나 눈을 반짝이게 하는 기발한 설정과 치밀한 줄거리가 있어 마치 MSG를 넣은 듯 읽을 때마다 감칠맛이 폭발합니다. 작가 장이쉬안(張亦絢)도 추천서문에서 “소설의 내용을 논하기 전에 ‘소설가의 훌륭한 솜씨’가 먼저 우리에게 감동과 안도감을 주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허윈진을 스토리텔링의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하는 필치를 통해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타이중 출신, 타이난에서 대학교에 다닌 허윈진은 동화 같은 환상세계 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랜드마크로 현실과 호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 그려냅니다. 책제목과 동명의 첫 단편에는 <랜드마크 원정대> 두번째 시간에서 소개해 드렸던 타이난 중국성(中國城)을 활용했습니다. 중국성은 지상 11층, 지하 2층의 중국풍 주상복합건물로 1980년때 타이난의 가장 대표적인 번화가였는데, 1993년 주변 공사로 인해 점차 몰락하다가 2016년 철거되어 친수공간으로 되었습니다. 

허윈진은 국립중싱대학교 타이완문학연구소 천궈웨이(陳國偉) 교수와의 대담에서 “중국성이 소재했던 위치는 일본인이 지은 운하였고, 철거 후 네덜란드 건축사를 통해 친수공원으로 되었는데, 이렇게 작은 곳에는 타이완, 중국, 일본, 네덜란드까지 있어서 타이완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에 천 교수는 “중국성은 타이완 본토의식이 강한 타이난과 잘 어울리지 않은 존재로, 주인공 남동생의 처지와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주인공의 남동성은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해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습니다. 막상 여자가 되자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여성스러운 질병’인 유방암에 걸려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죽은 남동생을 위해 명혼(冥婚)할 상대를 찾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드라마 <상견니(想見你)>의 남자주인공 쉬광한(許光漢)이 출연한 영화 <메리 마이 데드 바디(關於我和鬼變成家人的那件事)>를 본 적이 있다면 ‘명혼’에 대해 조금 알고 계실 겁니다. 명혼이란 죽은 남녀를 위해 결혼식을 치르는 타이완의 전통풍습입니다. 주인공 남동생의 경우 생전에 결혼할 상대가 없어서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죽은 자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붉은 봉투에 넣고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에 인연이 있는 사람이 봉투를 주울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봉투를 주운 사람은 반드시 죽은 자와 명혼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액운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봉투 놓을 자리를 찾던 길에 닭 한 마리를 만났는데, 어디 갈지 몰라서 아예 닭 궁둥이를 따라다니고 결국 중국성에 갔습니다. 허윈진은 “중국성은 가부장제의 상징이고 친수공간은 여성의 상징”이라며, “폐쇄적인 공간에서 열린 공원으로 바뀐 과정은 바로 주인공 남동생의 성전환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음으로 《그날 우리는 닭 궁둥이를 따라 길을 찾았다》에 수록된 네 번째 단편소설 <한 남자의 사진 역사(一個男人的攝影史)>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주인공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여가 시간에 항상 바닷가에 가서 어민, 제염소 노동자 등 남성 근로자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만년에 갑자기 학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아 개인 사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사진전을 보러 갔는데, 가이드를 맡은 젊은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훈련대로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젊은이는 주인공에게 “이 사진작가는 흑백사진으로 일반인의 생활을 포착하는 데 능숙하며 작품 속에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주인공이 남성 노동자만 찍는 이유는 남성 지인에 대한 애착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흑백사진으로 현상하는 것도 미적 감각이나 기술적 측면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 안에 숨겨진 욕망을 감추기 위해서였습니다.

허윈진은 다시 한번 타이난의 실제 요소로 이야기의 무대를 구축했습니다. 보수적인 1960년대,  제염업이 발달한 타이난.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는 1967년에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작품이 발표된 후 작가의 관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독자의 해석은 전부가 되었습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작품에 대한 학자들의 분석은 남성 동성애자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다른 작품으로 해석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독자의 탄생은 곧 저자의 죽음이죠.

허윈진은 뛰어난 서사 기법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일깨움을 주고 있습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문구 아래는 우리 모두의 삶입니다. 사람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허윈진은 해냈습니다. 엔딩곡으로 허윈진과 함께 유머스러운 글귀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타이완 밴드 ‘가오우런(告五人, Accusefive)’의 노래 ‘프렌치 토스트(法蘭西多士)’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노래는 나답게 산다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何玟珒,《那一天我們跟在雞屁股後面尋路》。
2. 陳彥明,「對談》我還年輕,我想能逃跑就逃跑:陳國偉vs.何玟珒談《那一天我們跟在雞屁股後面尋路》」,Open Book閱讀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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