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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 출신 할머니들의 학창시절 회고

  • 2023.10.24
대만주간신보
일제시기 타이완 여자교육의 산실,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 졸업생 7명의 구술 인터뷰를 모은 책 의 표지. 10월 17일 책 출판 기념회가 타이베이신문화운동기념관에서 개최되었다. - 사진: 博客來

지난 주에 <대만주간신보> 42번째 시간에 소개해드린 식민지 타이완의 명문학교, 타이완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 이야기 잘 들어셨나요? 타이베이고등학교는 남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는 중등학교였는데요. 그렇다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를 진학하고자 했던 타이완 여학생들은 어디에 가서 공부해야 했을까요? 바로 고등여학교(高等女學校)입니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 지배 하에 있는 동안 타이완총독부는 타이완 전 섬에 총 22개의 고등여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세운 고등학교는 타이베이제1고등여학교로, 타이완에 거주하는 일본인 여학생들을 위한 학교였죠. 그 다음에 생긴 타이베이제2고등여학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이완 여학생들을 위한 학교는 1897년 일본어 교육을 위해 설립한 언어 학교 한 곳이 전부였죠. 기존 학교에 부속 형태로 온전한 학교의 모양도 갖추지 못했던 이 학교는 1919년 제1차 교육령과 1922년 제2차 교육령을 거쳐 타이완 여자교육을 대표하는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로 개편됩니다. 앞서 두 고등여학교가 일본인 학생을 위한 학교였던 반면, 제3고등여학교는 타이완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았죠.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진행한 <대만주간신보> 10번째 시간에 일제시기 타이완 여자교육을 대표하는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에 관해 소개해드린 바 있는데요. (지난 방송 다시 듣기) 오늘 이 시간에는 일제시기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90을 훌쩍넘긴 할머니가 되신 제3고등여학교 동창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10월 17일 타이베이 다통취(大同區)에 소재해있는 타이완신문화운동기념관(臺灣新文化運動紀念館)에서는 일제시기에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를 졸업하신 할머니들의 구술 인터뷰를 모은 책 <백년을 회고하다(百年回眸)> 출판 기념 발표회가 열렸습니다. 중앙연구원 타이완역사연구소와 타이베이시립문헌관이 공동 주관한 이번 발표회에는 연구자들 외에 인터뷰에 응하신 할머니들께서 직접 출연하셨는데요. 출판된 책의 구술 인터뷰에 응하신 할머님은 총 7명. 이 중에서 몸이 불편하셔서 참여하지 못하신 최고령의 2분을 제외하고 총 5명의 할머니가 등장하셨습니다. 

책 출판 기념회 현장을 직접 방문하신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 출신 할머니들. 첫번째줄 왼쪽부터 샤오슈즈(蕭秀枝) 여사, 황차이스(黃彩市) 여사, 황빈빈(黃彬彬) 여사, 라이위에구이(賴月桂) 여사, 차오수전(曹淑珍) 여사. - 사진: Rti 서승임

이 중, 1934년생으로 1944년에 제3고등여학교를 입학하신 황빈빈 여사가 5명의 동창 중 막내였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샤오 여사께서는 상반신 전체를 고정하는 안전 보호대를 착용하면서까지 자리에 함께해주셨습니다. 

 <백년을 회고하다>는 2018년부터 작년까지 약 5년에 걸쳐 일제시기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를 졸업한 7명의 교우들을 각각 인터뷰한 책입니다. 할머니들을 한 분, 한 분을 인터뷰한 정원량(曾文亮) 박사는 발표회에서 이 책의 의의에 대해 소개했는데요. 이 책의 제목 ‘백년을 회고하다'에서 ‘백년'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고등여학교라는 체제를  갖추게 된 시기인 1920년대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인터뷰한 7명의 할머니 중 가장 고령이신 린추즈(林秋子) 여사님이 1923년생이시며 올해로 100살이 되셨기 때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의 인터뷰는 제3고등여학교 학창시절을 중심으로 하지만, 실제로 인터뷰한 내용은 어렸을 적부터 1930년대 성장시기를 거쳐 1930년대 후반에서 전쟁시기 제3고등여학교에서의 학창시절을 지나 졸업 후 취업, 결혼, 육아를 하면서 전후 타이완의 정치적 변화까지 다룬다”며 “우리가 매일 인터뷰한 내용은 개인의 경험이지만, 그 내용은 타이완 전체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발표회에 참석하신 차오수전 여사께서는 제3고등여학교 학창시절을 매우 자랑스럽게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학교의 장점은 공부뿐만 아니라 취미, 예절… 특히 피아노, 피아노와 같이 교양도 매우 중시했다.”

차오수전 여사님의 말씀처럼 일제시기 제3고등여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음악교육을 강조했습니다. 1990년에는 1934년부터 1938년까지 제3고녀를 재학했던 졸업생들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모아놓은 한 수필집이 출판되었는데요. 여기에는 무려 86명의 졸업생들이 참여해 1930년대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수필집에는 자신이 학창시절 즐려 불렀던 다양한 노래의 악보와 가사가 가득 실려있습니다. 물론 일본어 가사의 대부분 일본 노래이지요. 뿐만 아닙니다. 이 수필집에는 학창시절 일본인 교사들의 단체 사진도 들어있고, 학교에서 단체로 부르던 노래 6곡의 가사가 실려있습니다. 예를들어, 학교 교가, 식사 전 노래, 아침 조회 노래 등이요. 이런 노래들을 ‘쇼카(唱歌)', 한국어로는 창가라고 하는데요. 일제시기 일본과 식민지 타이완, 그리고 식민지 조선까지 일본제국에 소재한 학교에서 울려퍼진 노래죠. 

제3고등여학교의 또 다른 졸업생 위(余) 여사는 학창시절 학교에서 처음으로 아침 조회 시간에 교가를 들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 처음 교가를 들었을 때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놀라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어요. 고학년 선배들이 강당에서 세 파트로 나누어 화음을 넣어 교가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도 얼른 선배들처럼 3부로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 이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조회 시간에 교가를 불렀기 때문에 모두가 자연스럽게 세 파트를 모두 외울 수 있었습니다.” (余 1997:217)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제3고등여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던 아카오 도라키치 선생도 졸업생 할머니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13기 졸업생인 저우(周) 여사는 수필집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아카오 선생님의 옛 사진을 제공하며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그녀는 “이미 60년이 훌쩍넘은 이 사진 속 피아노 레슨 장면을 보면 아카오 선생님은 젊었고 우리는 머리를 땋은 귀여운 소녀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우수에 찬 채 당시를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그때는 요즘과 달리 피아노를 놓을 있는 가정이 거의 없어서 방과 전후에 강당에서나 피아노를 사용할 수 있었다”며 자신은 방과 후에 배정되어 아카오 선생님께 레슨을 받는 매주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추운 겨울에도 손가락이 얼어 피아노를 치지 못할까 봐 두 손을 비비며 몸을 녹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고 회상했습니다. (周 1997:159)

지난 17일 열린 제3고등여학교 구술 인터뷰 책 발표회에 출연하신 할머니의 증언, 그 외 다른 수필집에서 친필로 남기신 다른 할머니들의 글을 종합해보면, 그들은 여전히 제3고등여학교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으며, 수십 년 전의 배운 일본어 노래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고, 당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피아노 레슨을 귀중한 음악적 경험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인 교사는 타이완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만족시켜준 명예로운 인물로 묘사되죠. 일제시기 제3고등여학교 재학은 동시대 최고의 엘리트 여성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고, 그 사실과 학교에 대한 애정은 몇십 년이 지나 90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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