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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타이중! 중앙서점 & 타이중문학관

  • 2023.10.30
포르모사 문학관
'지혜의 등대'로 여겨진 타이중 중앙서점 - 사진: 타이중시정부관광국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완의 6개 직할시, 즉 6도(六都)는 수도권 타이베이, 신베이, 타오위안, 그리고 중부 타이중, 남부 타이난과 가오슝이 있는데요. 타이베이와 신베이는 합쳐서 ‘솽베이(雙北)’라고 하며 넓은 의미에서 함께 수도로 간주됩니다. 국제공항이 소재한 타오위안은 항공도시, 오래된 역사를 지닌 타이난은 고도, 타이완 최대의 항구도시인 가오슝은 항도. 그럼 타이중은요? 

2018년 중화민국 재정부가 발표한 서점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타아중의 체인 서점 수는 타이완에서 가장 많고 폐업률이 6도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0년 전인 일본 식민지 시대, 일본 정부의 공식문헌인 <타이완총독부경찰연혁지(台灣總督府警察沿革誌)>에 따르면, 타이중 사람의 지식 수준은 당시 타이완에서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의 의도적인 도시계획을 통해 타이중은 청나라 시대에 타이완 중부 지역에서 가장 번화했던 장화 루강(鹿港)을 대체해 중부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08년 철도의 준공과 함께 타이완 가운데에 있는 위치의 우세로 타이완 문인들의 모임장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주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에서 소개해 드린 타이중 명문가 우펑 린가(霧峰林家)의 대표 인물 린셴탕(林獻堂)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타이중의 예술문화 활동이 날로 번창했습니다. 그래서 ‘문화도시(文化城)’라는 수식어가 타이중에 붙게 되었습니다. 문화도시라는 이름은 정부의 기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 시대에 타이중 지식인들이 타이중을 위해 지은 이름입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타이중은 일본 식민지부터 타이완 문단의 성지로, 문화계몽단체 ‘타이완문화협회(臺灣文化協會)’, 문학 동아리 ‘리사(櫟社)’ 등 문화예술 인사들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이 중 타이중기차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중앙서점(中央書局)’은 ‘지혜의 등대’로 여겨진 중심 중의 중심이었습니다.

1921년 장화 루강 출신인 지식인 좡췌이성(莊垂勝)은 우펑 린가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 유학하고 문인들의 사교모임인 살롱(Salon)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귀국 후 그는 타이중 지식인 400여명을 모집해 은행의 설립과 상당한 자본을 확보하여 ‘주식회사 중앙클럽(株式會社中央俱樂部)’을 설립했고, 중앙서점을 비롯한 문화시설의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클럽의 회원은 대부분 타이완문화협회의 멤버입니다. 국립중싱대학교 타이완문학연구소 랴오진부(廖振富) 교수는 “의사결정권이 소수에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지분 분산 방식을 택한 점을 보면 영리보다는 이념을 위한 것을 알 수 있다”며 “그러나 1927년 타이완문화협회가 정치적 입장의 대립으로 분열되었고 이는 중앙서점의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1927년 설립된 중앙서점 - 사진: 라이팅 타이중(寫作台中)

중앙서점은 1927년 정식으로 개업했고 타이완 각지, 중국, 일본의 서적을 도입하며 소량의 도서를 출판해 일본 식민지 시대에 한(漢)문화의 보급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도서 외에도 문구, 미술용품, 운동용품, 유성기, 서양악기 등 구하기 힘든 상품을 판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학가, 음악가, 조각가, 서예가, 무용가 등 국내외 문화계 인사를 초청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근대 무용의 선구자 최송희도 초청을 받아 중앙서점에서 타이완 지식인들과 교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중앙서점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젊은이들이 일생에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하는 핫플레이스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계엄령의 선포와 함께 언론, 출판의 자유가 억제되었고 중앙서점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식을 보급하고 대중들을 계몽하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없어졌고 출판업무에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1947년에 일어난 228사건으로 중국에서 온 외성인(外省人), 그리고 타이완에서 태어난 본성인(本省人) 간의 대립이 매우 심각했는데, 중앙서점은 외성과 본성 지식인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 대화로 갈등을 해소하도록 애썼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체인 서점의 등장으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고 1998년 안타깝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2014년 타이중 둥하이대학교(東海大學) 수뤠이빈(蘇睿弼) 교슈와 타이중 출신 작가 류커샹(劉克襄)의 노력을 통해 타이중 토박이들이 중앙서점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중앙서점의 두번째 생을 시작했습니다. 류커샹 작가는 “중앙서점은 독립서점만큼 낭만적이지도, 체인 서점만큼 현대적이지도 않다”며 “중앙서점 뒤에는 이상에 대한 추구, 현실에 대한 반항, 역사에 대한 성찰 등 복잡한 정서가 얽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중앙서점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타이중의 중심에 우뚝 서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문화적 역량을 후세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앙서점 외에 유천(柳川) 강변에 있는 타이중문학관도 타이중이 문화도시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하는 중요한 랜드마크인데요. 타이중문학관이 소재한 건물은 1932년에 지어진 일본 경찰 기숙사로 9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타이중 출신 작가들의 저작은 물론, 타이중 문학의 발전 과정을 다룬 소중한 기록들도 여기서 잘 소장되어 있습니다. 지금 타이중문학관은  중앙서점과 함께 타이완문화협회의 정신을 이어받은 존재로 타이완 중부지역의 문화 계몽과 지식 보급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 기숙사였던 타이중문학관 - 사진: 타이중시정부관광국 

타이중문학관 건축 사이에 3층 높이의 커다란 반얀나무(용수, 榕樹)가 있는데요. 이 나무는 문학관의 랜드마크로 타이중 사람들과 100여 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습니다. 나무를 지나면 고요하고 아름다운 문학공원이 펼쳐질 겁니다. 전시를 보다가 좀 피곤할 때 문학공원에 앉아서 문학의 기운을 받는 게 최고의 힐링입니다. 대자연에서 영감을 받으면 고대 문인처럼 풍월을 읊조리는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로 벽에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문학에 대한 상상을 채웁시다.


타이중문학관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반얀나무 - 사진: 타이중시정부관광국

엔딩곡으로 타이중 출신 인디밴드 ‘더 체어즈(The Chairs, 椅子樂團)’의 노래 ‘Maybe, Maybe’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더 체어즈의 멤버 모두 타이중의 명문고등학교 타이중제이고등학교(臺中一中)의 졸업생입니다. 타이중제이고등학교의 전신인 타이중중학교(臺中中學校)는 1915년 린셴탕을 비롯한 타이완 중부 지식인들의 쟁취로 설립된 최초의 타이완인 중학교입니다. 타이중중학교는 “타이완인에게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존재로, 교육 및 문화 보급에 있어서 타이중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不再是文化沙漠 台中書店歇店率 6都最低」,人間福報。
2. 洪健倫、陳政偉,「中央書局前世今生:直視台中文化城的啟蒙運動」,文化+。
3. 趙靜瑜,「劉克襄:中央書局像是通往世界的一扇門」,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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