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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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어디 안씨세요?” 이 질문은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실제로 받았던 질문입니다. 한국에 본관을 묻는 문화가 있듯이 과거 타이완 주민등록증에는 중국 본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평생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고향으로 삼았습니다. 1992년 호적법의 개정과 함께 주민등록증상의 중국 본관을 없애고 출생지로 변경했습니다.
17세기부터 중국 인구의 급속한 성장으로 많은 한족(漢人)들이 생계를 위해 위험한 타이완해협을 건너 대륙 끝에 위치한 이 작은 섬에 왔습니다. 상륙하기 전에 풍랑에 휩쓸려 행방불명된 사람도 있었고,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아 타향에서 비참하게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무역, 전쟁, 정부와의 협력 등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어 점차 타이완에서 자리를 잡게 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중 특히 ‘타이완 5대 가문’으로 불리는 ‘신베이 반차오 린가(板橋林家 임씨)’, ‘타이중(台中) 우펑 린가(霧峰林家 임씨)’, ‘가오슝 천가(高雄陳家 진씨)’, ‘장화(彰化) 루강 구가(鹿港辜家 고씨)’, ‘지룽 옌가(基隆顏家 안씨)’ 등이 가장 명성을 떨쳤습니다. 오늘은 우선 타이중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우펑 린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746년부터 타이완에 정착하게 된 우펑 린가는 반차오 린가와 혈연관계가 없으며 5대 가문 중 두 번째로 발전하기 시작한 명문가입니다. 우펑 린가의 대표 인물로 꼽힌 린원차(林文察)는 전쟁에서 공을 많이 세워 청나라 정부로부터 많은 토지와 당시 타이완 3대 수출물의 하나인 장뇌의 전매권을 받었습니다. 이어 린원차의 장남 린차오둥(林朝棟)은 1885년 청불 전쟁에서 프랑스 군대를 성공적으로 막아내어 정부의 요직에 중용되었습니다. 1890년대까지 우펑 린가는 타이완 장뇌의 전체 수출을 장악해 상당한 이익을 얻았습니다.
그러나 1895년 타이완이 일본 식민지가 된 후 린차오둥은 일본에 반항하다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고 느끼고 타이완을 떠너 중국에 갔습니다. 일본 식민지에 들어 우펑 린가는 더 이상 군사적인 이익에 의지하지 않고 장뇌 장사를 하면서 정치, 문화, 예술, 교육 등 분야에 투신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청나라 때는 무력적인 하드파워으로 자리를 잡은 반면에 일본 식민지 시대는 문화적인 소프트 파워를 통해 집안의 명성을 이어나갔습니다.
린차오둥이 타이완을 포기한 후 그의 사촌 동생, ‘타이완 의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린셴탕(林獻堂)을 비롯한 린가 후대들이 타이중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린셴탕은 일본에서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梁啟超)를 만나 타이완의 민주자치에 대해 의논하고 비폭력적인 저항 운동을 통해 일본에 저항한다는 새로운 방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그는 신민회(新民會), 타이완문화협회(臺灣文化協會), 타이완민중당(台灣民眾黨), 타이완지방자치연맹(臺灣地方自治聯盟) 등 사회개혁 및 문화계몽을 추구하는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14년 간의 ‘타이완의회설립운동(台灣議會設置請願運動)’을 펼쳤습니다. 또한 교육 보급을 위해 타이중제이고등학교(臺中一中) 및 밍타이고등학교(明台高中)을 설립했습니다.
우펑 린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타이중 명문고등학교인 '타이중제이고등학교(台中一中)' - 사진: 타이중제이고등학교 홈페이지
우펑 린가가 거주했던 대저택(霧峰林家宅園)은 청나라 때 타이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민가취락으로 현재는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저택 외에 공연장, 접대소, 서당, 연못, 군영까지 되어 있어 상당히 독립적인 커뮤니티입니다. 1999년 921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2014년까지 거의 모두 복원되어 대중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커다란 린가 대저택에서 ‘우펑 린가 화원’이라 불리는 ‘라이위안(萊園)’은 가장 핫한 곳인데요. 1893년 린셴탕의 아버지 린원친(林文欽)이 과거에 급제해 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 중국 춘추시대 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초나라 사람 ‘라오라이즈(老萊子)’의 이름으로 라이위안을 지었습니다. 라이위안은 일본 식민지 시대 3대 시사의 하나인 리사(櫟社), 그리고 타이완문화협회의 모임장소로 많은 귀빈을 접대했는데, 앞서 언급한 량치차오는 1911년 라이위안을 방문해 라이윈안에 있는 모든 건축을 위해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봄비가 내리면 아련한 풍경이 펼쳐지는 ‘라이위안 봄비’는 타이중 12대 경치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우펑 린가 화원’이라 불리는 ‘라이위안(萊園) - 사진: 린가 화원 홈페이지
린가의 공헌으로 타이중 최남단에 위치한 우펑은 타이중에서 가장 일찍 발전된 지역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린셴탕이 추진한 의회운동은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리고 우펑을 타이완 민주화의 발원지로 만들어냈습니다. <랜드마크 원정대> 36번째 시간에서 소개해 드린 과거 타이완섬의 최고 행정기관 타이완성정부(省政府)를 감독하는 타이완성의회(省議會)가 바로 우펑에 있었습니다. 성정부의 해제와 함께 성의회는 타이완 민주화 과정을 다루는 ‘입법원민주의정단지(立法院民主議政園區)’가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펑은 풍부한 역사유산을 활영해 현지의 박물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타이완성의회였던 '입법원민주의정단지(立法院民主議政園區)' - 사진: 입법원민주의정단지 홈페이지
우펑 린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극영화 <아자오우 풍운(阿罩霧風雲)>과 추리드라마 <안개 속의 미스터리(疑霧公堂)>가 좋은 선택인데요. 안개가 자욱한 풍경을 묘사하는 아자오우는 우펑의 옛 명칭으로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된 후 원주민 색깔이 덜한 우펑으로 개명했습니다. 청나라 시대부터 백색테러 시대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 <아자오우 풍운>에는 린가가 일반 백성에서 타이완의 명문가로 탈바꿈한 과장,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위업을 엿볼 수 있으며, <안개 속의 미스터리>에는 린원차의 동생 린원밍(林文明)이 반란죄의 오명을 씌워 사형 집행을 받은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맨주먹으로 타이완에 온 우펑 린가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愛拼才會贏)’는 이민 정신을 잘 드러내는 훌륭한 집안입니다. 타향에서 뿌리를 내려 문과 무를 두루 겸비하는 명문가가 되어 대중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비록 훗날의 재단들에 비해 재력이 못 되지만 현재는 여전히 타이완 금융계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엔딩곡으로 타이중 출신 남성 힙합 그룹 ‘나인 원 원(玖壹壹, Nine one one)’의 노래 ‘안녕, 중항로(再會中港路)’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중항로는 타이중 기차역과 타이중의 주요 항구인 타이중항을 관통하는 도로로, 2011년 ‘타이완 대로(臺灣大道)’로 명칭을 변경했지만 대부분 타이중 토박이들이 여전히 원래 명칭인 중항로라고 부릅니다. 이 노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타이중을 떠난 젊은이의 불안한 마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침 우펑 린가의 이야기와 일맥상통이죠.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에서 열심히 사는 모두를 위해 이 노래를 선사합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黃富三，「【文化雜誌】霧峰林家的故事」，民報。
2. 姚翰光，「台灣第一武力世家！平定太平天國、大小民變，擊退法軍侵略…靠打仗打到發大財的傳奇家族」，風傳媒。
3. 鄧玫玲，「聽林家故事 遊霧峰林家」，大紀元。
4. 霧峰林家花園歷史沿革，霧峰林家花園林獻堂博物館園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