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타이완의 소리 RTI공식 앱 내려받기
열기
:::

타이베이 한인들의 마음 쉼터, 장안천주당(長安天主堂)

  • 2023.05.03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한국 천주교 대전교구 총대리 한정현 스테파노 주교님이 4월 30일 타이베이의 유일한 한인 성당인 장안천주당(長安天主堂)을 방문했다. 주교님은 전 신자들에게 묵주를 선물하셨다. - 사진: Rti 한국어방송 서승임

“린선베이루와 장안동루 사거리로 가주세요"

일요일 아침이면 타이베이의 한 택시 아저씨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간혹 어떤 기사님께서는 거기 교회있는 데 맞냐고 확인 차 물어보십니다. 보다 자세히 알고 계신 기사님께서는 사거리를 두고 교회가 두 개 있는 걸로 아는 데 손님이 가려는 곳은 어디냐고 한 번 더 물어보십니다. 타이베이 시내 한복판 ‘린선베이루(林森北路)'와 ‘장안동루(長安東路)'가 만나는 사거리(路口), 그 주변은 각종 호텔과 러차오(熱炒), 일본 식당와 술집으로 즐비한 이 곳에는 의외로 두 교회 건물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습니다. 한 곳은 타이완 장로교 소속 타이베이중산교회(台北中山教會)이고 다른 한 곳은 타이완 타이베이 천주교 교구 소속 장안천주당(長安天主堂)입니다. 무려 1937년에 세워진 타이베이중산교회는 타이완이 일제 식민지였을 당시 일본성공회(日本聖公會 Nippon Sei Ko Kai) 교회의 일환으로 지어졌습니다. 당시 타이완이 일본성공회 오사카 교구에 속했기 때문이죠. 일본의 타이완 통치가 끝나고 일본인들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일본성공회를 이어갈 타이완인이 없자 이 교회는 장로교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역사가 오래된 타이베이중산교회의 외관은 고딕풍에 교회 내부도 각종 스테인드 글라스로 채워져있습니다. 반면 그 맞은편에 있는 장안천주당의 외관은 한국인이 흔히 생각하는 천주교 성당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건물 중앙에 빨간색 십자가가 없었다면 중국식 사원이라고까지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요. 지극히 타이완에 현지화된 건물 외관을 갖고 있는 장안천주당은 중국 화베이 출신의 한 신부(郭若石)가 1949년 난징을 거쳐 타이베이로 넘어오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의 사거리 안에 서로 마주보고 놓인 두 교회 건물이 담고 있는 역사가 타이베이를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타이베이 장안천주당(長安天主堂)의 외관 - 사진: 장안천주당 홈페이지

사실 장안천주당은 타이베이에 있는 여러 한국인 종교 단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타이베이에는 많은 개신교 교회들(대북한국기독교회, 타이베이순복음교회, 은혜교회, 타이베이한인찬양교회, 중화기독교임마누엘교회 등)이 있는데 장안천주당은 타이베이에 있는 유일한 천주교 성당이죠. 장안천주당의 전임 한국인 신부였던 오중석 미카엘 신부님이 정리한 약력에 따르면, 이곳이 1985년부터 한국인의 본당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국 본당으로서의 장안천주당은 현재 대전교구에 속해있기 때문에 이곳에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파견되는 한국인 신부님 역시 대전교구 소속입니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 오전 9시에 타이완인들을 위한 중국어 미사가 끝나면 오전 11시에는 대전교구에서 파견된 신부님과 함께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미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이베이의 유일한 한국인 본당으로 자리하고 있는 장안천주당(현 국일호 신부)에 지난 주말인 4월 30일 일요일, 한국 천주교 대전교구의 총대리인 한정현 스테파노 주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여느때 미사와 달리 성당에 모인 한인들은 제법 긴장하고 설레어 보입니다. 오전 11시 미사 집전 전 10시 반부터 전 신자들은 주교님의 성당 입장을 환영하기 위해 본당 밖 대문에서부터 두 줄로 나란히 서서 기다립니다. 각각 양복과 드레스를 예쁘게 갖춰 입은 두 화동은 가운데에 서서 주교님께 드릴 꽃바구니와 작은 선물을 들고 있습니다. 꽃바구니가 제법 무거워 보이는 데도 기특하게 잘 들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렇게 타이베이 장안천주당에 약 70명 안팎되는 한국인 신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한 곳에 모였습니다. 타이베이에 1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교포분들, 타이베이로 파견된 주재원분들, 게다가 올해 취임하신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의 이은호 대표님 내외도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한정현 스테파노 주교님이 입장해 화동의 선물을 받고는 전 신자들께 한 명, 한 명 악수를 청합니다. 마침 4월 첫째 주 부활절을 맞이하고 부활 제4주일이었던 4월 30일, 주교님의 방문을 맞이하는 본당 내 분위기도 부활의 생동감이 넘치듯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꽃꽂이로 환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당 구석 한 켠에서 미사 집전을 위해 천천히 제복을 갖춰 입으시는 주교님의 뒷모습에서 결연함이 느껴집니다.  

한정현 스테파노 주교님의 타이베이 한인성당 방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타이완인 주교, 이를테면 타이베이 교구를 관장하는 타이완인 주교가 장안천주당을 방문한 적은 있어도, 한국인 주교가 장안천주당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천주교에서 ‘주교(主教)’란 한 교구의 장으로서, 교구의 소속된 여러 사제와 신부 그리고 그분들의 교회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대한민국의 총 15개의 교구 중 대전교구 주교님의 방문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죠. 한 공동체에 장(리더)이 출현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괜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죠. 그러나 한정현 스테파노 주교님은 이번 방문이 ‘검사’ 혹은 ‘확인' 차원이 아닌 ‘나눔'에 있다는 데 방점을 찍었습니다. 특히 미사 내내 한국이 아닌 외국에 가족과 동료 사제도 없이 홀로 파견되어 한국인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는 데 헌신하고 있는 한국인 신부의 삶을 헤아리셨습니다. 양을 치는 목동과 산타클로스를 비교하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타클로스와 목동 모두 더 많은 이에게 선물을 주는 역할을 하는 점에선 비슷합니다. 그러나 온갖 선물과 재화를 짊어지고 있는 산타클로스와 달리 목동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지팡이 하나만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산타클로스와 목동의 차이입니다.” 그러면서 주교님은 외국에 파견된 신부를 목동에 비유했습니다. “목동이 좋은 풀을 직접 양떼들에게 먹이는 대신 지팡이 하나로 양떼를 이끌며 좋은 풀이 있는 장소를 안내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이 낯선 타이베이에 홀로 왔지만 이곳에 계신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길로 안내하는 목동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고, 그것이 당신의 기쁨”이라고요. 이는 비단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타이베이에 온 한국인 신부에게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연유에서든지 지금 타이베이에서 머물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이 말씀은 깊은 울림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장안천주당 안 제대 양 옆에는 두 개의 빨간색 기둥이 있고, 그 기둥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글귀가 세로로 적혀있습니다. ‘안락무상잉행보계악과욕청심(安樂無常應行善戒惡寡欲清心)' ‘장생유도일경천애인수신극기(長生有道日敬天愛人修身克己)' 불교 용어인 ‘안락'과 유교 사상인 ‘경천애인', ‘수신극기' 등이 눈에 띕니다. 그 뜻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한 평온함은 반드시 선을 행하며 악을 경계하고, 욕심을 절제하며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데에서 온다” “장수를 누리는 진정한 길은 매일 하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육신을 다스리고 자신을 극복하는 것에 있다.” 장안천주당의 두 기둥에 새겨진 문구에서 우리는 과거 서양의 천주교가 선교사를 통해 중국 대륙에 전해지고 그것이 다시 타이완에 전해지면서 토착화된 과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중석 신부, “천주교 장안당의 역사개요” 2018.11.01.)

타이베이 장안천주당 본당 제대 양 옆 기둥에는 불교, 도교, 유교에서 유래된 용어가 사용된 글귀가 적혀있다. - 사진: 장안천주당 홈페이지

한정현 스테파노 주교님은 전 신자들을 위한 묵주를 타이베이 장안천주당에 남기시고 미사 후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번 대전교구 한정현 스테파노 주교님의 타이베이 장안천주당 방문은 타이베이 도심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큰 울림과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기억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땅에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갈 것 이라는 걸요. 그러니 내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와 행복을 나누어 주는 일이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요.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