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타이완의 소리 RTI공식 앱 내려받기
열기
:::

타이완 여성교육의 살아있는 현장, 타이베이주립제3고등여학교

  • 2023.03.07
대만주간신보
1924년 3월 22일 타이베이주립제3고등여학교(臺北州立第三高等女學校) 제1회 졸업생 사진 - 사진: 《光輝百年:台北第三高等女學校創校百年紀念誌》1997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여성해방을 외치던 나혜석(羅蕙錫, 1896-1948) 화가이자 작가, 여성운동가는 ‘여성교육’이야 말로 기존 조선 사회가 갖고 있는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역할을 아내/어머니에서만 찾는 기존 교육을 부정하고 개인의 해방과 남녀 동등한 권리 획득을 위한 교육을 지향했고, 여성 개인이 주체적인 인격체임을 자각함과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경성의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나혜석은 도쿄에 소재한 사립대학인 여자미술대학(女子美術大学)에서 서양화를 전공해 사회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서양화란 주무기를 갖고 조선으로 돌아온 나혜석은 정신여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고, 『신여자』라는 잡지를 공동 창간하기도 했으며, 조선 남성의 여성관을 비판하는 '이혼고백서'나 여성의 모성애를 부정하는 '모(母)된 감상기' 등 개인 나혜석의 사상과 신념을 과감하게 펼쳤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여성교육이 있습니다. 식민지 사회였던 조선과 타이완에서 여성이 진학할 수 있는 학교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중등교육까지가 최선이었죠. 조선과 타이완의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이었던 일본이 세운 제국대학, 즉 경성제국대학과 타이베이제국대학은 초기에 남학생만 입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여학생이 입학 가능한 최고의 교육기관은 ‘고등여학교’ 혹은 ‘고등여자보통학교’였습니다. 조선에서는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미션스쿨인 이화학당이 1925년 전문학교로 승격되면서 여성을 위한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 생겼습니다만, 타이완에서는 이마저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식민지 타이완에서 타이완 여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학교는 바로 타이베이에 소재한 타이베이주립제3고등여학교(臺北州立第三高等女學校)였습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오늘 <대만주간신보>에서는 일제시기 타이완 여성교육을 대표하는 타이베이주립제3고등여학교를 소개합니다. 

타이베이에 소재한 제3고등여학교라는 학교명을 들으니 자연스레 제1, 제2고등여학교 궁금해지는데요. 제1과 제2는 모두 일본인들을 위한 고등여학교였습니다. 소수의 타이완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타이완에 거주하는 일본인 여학생을 위한 학교였습니다. 당시 일본과 식민지 타이완, 식민지 조선에 모두 존재했던 ‘고등여학교’가 타이완에서는 1904년, 타이완 총독부가 제1고등여학교를 설립하면서 정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타이완 여성들을 위한 고등여학교는 아직 없었죠. 대신 1897년 설립된 한 ‘(국어학교)부속학교’에서 타이완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 부속학교가 1922년 교육령을 거쳐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가 된 것입니다.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는 일제시기 전 타이완 섬에 설립된 총 23개교의 고등여학교 중 타이완 여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였죠. (학생의 민족 구성원을 보면, 다이쇼 11년인 1922년에는 총 358명의 재학생중 일본인은 9명, 타이완인은 348명, 쇼와 8년인 1933년 총 604명의 재학생 중 468명이 타이완이었습니다.) 타이완 학생 수로보나, 설립된 시기로 보나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는 타이완의 여성교육 역사나 일제시기 여학생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공간입니다. 

1897년 부속학교에서부터 시작해 2023년 현재 타이완의 명문여고인 중산여고(中山女高)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타이완 여학교 역사의 중심에는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약칭 제3고녀)가 있었습니다. 1922년 제2차 타이완 교육령을 통해 ‘고등여학교’로 승격되면서 제3고녀는 일제시기 ‘식민지 타이완의 여성교육’을 대표하는 학교로 거듭났습니다. 1923년 4월 일본 황태자가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 제3고녀를 직접 방문해 그 지위는 더욱 확고해졌죠. 제3고녀는 일본이 1899년 제정한 <고등여학교령>이란 학제에 의거해 설립하고 운영했습니다. 일본과 다른 타이완의 특수 사정을 반영해 선택과목으로 타이완어인 민남어를 추가하고, 일본어 국어와 한문의 교수 시수를 조금 늘린 것 빼고는 거의 유사했습니다. 학교 안에 사범과를 설립해 초등학교 여교원을 양성하기도 했죠.  

당시 타이완 여학생들이 배웠던 교과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신, 국어, 외국어, 역사, 지리, 산술, 이과, 도서, 가사, 재봉, 음악, 체조. 학제에 따라 다른 과목이 추가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12과목을 가르쳤습니다. 정규 교과목 외에 학생들은 운동, 음악, 미술 방면에서 방과 후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 문화에서 여성이 몸을 움직이거나 목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죠. 게다가 과거 청나라였던 타이완의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발을 꽁꽁싸매 최대한 작은 발을 만드는, 이른바 ‘전족(纏足)’을 해야했습니다. 당시 미의 상징이라 여겼던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지금의 시선에서는 ‘가학'이라고도 할 정도의 고된 과정과 고통을 참아내야 했던 타이완 여성들에게 오래 걷거나 심지어 뛰는 등 몸을 움직이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었죠. 일제시기에 들어 타이완 여성들은 전족을 풀고 집 밖으로 나와 학교로 통학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 배구, 정구 등 스포츠를 배우기 시작했죠. 학교 소풍이나 수학여행이면 타이완의 높은 산을 전교생들이 함께 등반하기도 했습니다. 제3고녀 졸업생 양마오즈(楊毛治)는 학교에서 전교생이 대둔산(大屯山)을 등산한 것은 매우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회고합니다. 그녀는 “(제3고녀에 있으면서) 가장 인상 깊은 일은 1927년 1월 15일, 전교생이 함께 모여 대둔산 소풍을 간 것”이라고 강조하며, “예전 여자들은 모두 전족을 하고 있어 잘 걷지 못했습니다. 1년에 한번 가는 소풍 때 스린(士林)에서 즈산옌(芝山岩)까지 1킬로미터도 채 안되는 짧은 거리를 몇 번이나 쉬어 가 몇 시간 후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대둔산 소풍을 간 1927년엔 이미 다들 전족을 안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의 상황도 훨씬 좋아졌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타이완 여자들이 전족에서 해방되어 등산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알려줍니다.  

일제시기 식민지 타이완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인 정원량(曾文亮) 박사는 2018년 이제는 80세를 훌쩍넘긴 할머니가 된 타이베이제3고녀를 졸업생들을 한 명 한 명 인터뷰하며 제3고녀에서 공부한 타이완인들의 경험을 역사로 기록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3고녀는 “단순히 여성교육이 아니라 타이완 교육사의 중요한 존재"이고 “제3고녀 교육 경험은 타이완 역사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식민시기 내내 타이완 학생들은 학교에서 국어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의 전통문화를 익혀야 했습니다. 중일전쟁과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일본 군인들에게 위문 편지도 써야했습니다. 그러나 제3고녀를 졸업한 타이완 할머니들이 기억하는 여학생 시절은 단순히 일본문화를 체득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학교 정규 수업뿐만 아니라 조회, 방과 후 활동, 소풍, 수학여행, 음악회 등 제3고녀 안에서의 각종 활동들은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선사했고, 여학생들은 그 안에서 개인의 학습능력과 문화적 소양을 키워갈 수 있었습니다. 학교 졸업 후 자신의 직업이나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굉장한 영향을 끼쳤죠. 일제시기 타이완 여성들도 학교 교육을 바탕으로 선생님이나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점차 조성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엔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가 있었던 것이죠. 

“졸업 후 가입한 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 악보를 바로 읽을 줄 알았는데 이는 바로 제3고녀에 악보 시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선생이 된 후 피아노와 미술 소묘시험을 반드시 치뤄야했는데 이 둘 모두 제3고녀 시기에 배워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941년 제3고녀를 졸업한 1923년생 린추즈(林秋子)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언급하며 제3고녀 시절 다양한 분야에서 배우고 익혔던 경험이 이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증언합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근대식 학교 교육을 받는 문화가 타이완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한 역사는 일제시기와 맞물립니다. 

여성교육은 20세기 초 식민지 타이완과 조선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였습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소개한 일제시기 타이완 여성교육의 중심지,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 지금은 ‘중산여자고등학교’(臺北市立中山女子高級中學)로 개명되어 일제시기 제3고녀에서 시작된 타이완 명문 여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2023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 서승임 徐承任 ([email protected])

 

참고문헌

楊毛治. <老人說故事>. 《光輝百年:台北第三高等女學校創校百年紀念誌》. 臺北市: 三高女校友聯誼會, 1997, 29.

《臺北文獻》 第204期. 臺北市: 臺北市文獻委員會, 2018.

서승임. “1920년대 식민지 대만(臺灣) 관립 고등여학교의 음악 교육: 타이베이제3고등여학교(台北第三高等女學校) 사례를 중심으로.”  『音.樂.學』28(2), 2020, 121-163.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