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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한(林奕含)이 세상에 남긴 것,《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 2023.01.09
포르모사 문학관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한국판 표지 - 사진: YES24 캡쳐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 11월 타이완 넷플릭스 1위에 올라선 드라마 <그녀와 그녀의 그녀(她和她的她)>는 현실과 환영이 뒤섞여 있는 미스터리 기법으로 권위를 이용한 성폭행, 직장 내 성희롱, 디지털 성범죄 등 성폭력 관련 이슈를 다룹니다. 주인공은 학창시절 학교 선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이후 해리성 장애(解離性障礙, dissociative disorder)로 진단받아 정신이 늘 흐리멍덩하고 스스로가 만든 환영 속에 빠지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타이완 넷플릭스 1위에 올라선 드라마 <그녀와 그녀의 그녀(她和她的她)> - 사진: 넷플릭스

이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6년 전에 일어난 비극사건도 재조명되었는데요. 2017년 2월 작가 린이한(林奕含)은 데뷔작이자 마지막 작품인《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房思琪的初戀樂園)》을 출판한지 불과 2개월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의 주인공 팡쓰치는 13살부터 50살의 학원강사 리궈화(李國華)에게 5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소설이 출판되자 팡쓰치는 바로 작가 린이한이 아닐까 라는 추측이 나왔고 이어서 린이한의 자살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팡쓰치와 학원강사 리궈화는 같은 고급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살았고 문학에 열광하는 팡쓰치는 방과 후 항상 리궈화의 집에 가서 국어 과외를 받았습니다. 유명한 국어 학원강사이자 문학자인 리궈화는 오랫동안 권위를 이용하여 관행적으로 문학 세계를 동경하는 학생에게 성폭행을 하고 팡쓰치는 바로 그중의 하나입니다.

책 제목을 딱 볼 때 ‘첫사항’, ‘낙원’ 등 키워드가 들어가 있어 풋풋하고 장미빛의 첫사랑 이야기 아닐까 싶어요. 여기의 ‘첫사랑’은 어린 시절 때부터 성폭행을 당한 팡쓰치가 리궈화와의 관계를 사랑으로 착각한다는 아이러니한 표현이죠. 그리고 ‘여기는 낙원이다’는 믿음처럼 ‘나와 선생님은 사랑이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이 지옥 속에 계속 버틸 수 있습니다. 린이한은 바로 ‘첫사랑’, ‘낙원’ 처럼 몽환적 표현으로 역설적으로 잔혹한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팡쓰치가 성폭행을 당한 순간마다 물에 빠진 것 처럼 고통스럽다고 묘사했습니다. 앞에 언급한 드라마 <그녀와 그녀의 그녀(她和她的她)> 중 주인공이 성폭행을 당한 장면에서도 물에 빠지는 효과음으로 주인공의 절망감과 무력감을 표현했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이처럼 어둡고 깊은 물에 빠졌을 때 그들을 악몽으로부터 구해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미국 인류학자 캐시 윙클러(Cathy Winkler)는 ‘성폭행은 사회적인 살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기만 하는 사람 모두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덕망이 높은 리궈화는 ‘문학을 잘 배우려면 선생님이 시킨 일을 잘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위협을 통해 문학의 꿈을 품은 소녀들을 제압했습니다. 책에서 리궈화는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시선은 너무 편리하다. 내가 한 여자를 성폭행한 것은 온 세상이 모두 그 여자의 잘못이라고, 심지어 그 여자도 자기 잘못이라 생각하고 결국 죄책감으로 다시 내 곁으로 온다.’고 썼습니다. 리궈화는 참 똑똑합니다. 이 추악한 사회가 항상 가해자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특히 리궈화처럼 사회적 지위가 비교적 높은 사람이 더욱이 이런 사회적 편견을 잘 악용합니다. 피해자가 아무리 도움을 구해도 팡쓰치처럼 가해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따라서 성폭행 당할 때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리궈화가 아닌 팡쓰치였습니다. 

또한 팡쓰치가 어머니에게 ‘왜 우리집에 성교육이 없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성교육은 성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가르쳐 주는 것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사회가 성을 악마화해 온 결과입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겪었든 사회로부터 받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못 하게 됩니다.

팡쓰치는 린이한이냐는 질문에 린이한은 ‘문학은 반드시 주인공과 작가를 연결해 읽는 것이 아니다’고 대답했으나 린이한의 죽음으로 그의 부모는 이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인정했고 가해자를 지목했습니다. 린이한의 부모는 린이한이 우울증에 걸린 근본적인 원인은 학창시절 학원강사에게 성폭행 당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결국 증거 부족으로 지목된 강사는 불기소처분되었습니다.


타이완 작가 린이한(林奕含) - 사진: 린이한 페이스북 캡쳐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의 출판과 린이한의 죽음은 타이완 사회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어킨 것은 물론 학원 관련 법 개정, 간통죄 폐지 등도 이루어졌습니다. 성폭력 케이스 중 가해자는 증거부족으로 불기소처분된 후 가해자의 배우자가 피해자를 간통죄로 고소하는 경우가 있기에 간통죄의 존재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를 초래하는 상황이었는데요. 결국 2020년 타이완 사법원(헌법재판소)이 타이완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고 정식으로 간통죄를 폐지했습니다. 한국 소설이자 영화 <도가니>가 만들어낸 도가니법처럼 린이한의 비극을 통해 조금이라도 사회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린이한의 비극에 이어 2017년부터 미국에서 전 세계로 전파된 ‘미투 운동(#MeToo)’은 2018년 3월에 타이완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떤 타이완 체조 선수가 SNS를 통해 스스로가 코치에게 10년동안 상승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성폭력의 악몽에 시달려 곳곳에 숨어있는 피해자들이 잇따라 자신을 위해 나섰습니다. 그 때 마침 린인한의 사망 1주년을 맞아 수 많은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스스로의 아픈 기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꺼내왔습니다.

린이한은 인터뷰에서 ‘팡쓰치의 이야기는 곧 사회 시스템 부재의 이야기다’고 말했는데요. 팡쓰치 성교육을 무시하는 부모,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성폭행을 당한 중학교 소녀의 텅 빈 마음… 소녀의 몸은 여전히 존재하나 영혼은 이미 사라져버렸습니다. 또 린이한은 ‘듣기로는 좀 과하지만 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과 정신병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요. 사실 이 작품으로 수많은 팡쓰치가 나아지지 않을 것을 저는 잘 알아요. 너무나 잘 알아서 제가 정말 소용없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이미 이것을 인정했고 이 작품은 바로 더 이상 자라지 않은 저를 기록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커다란 고통을 겪어온 팡쓰치들 모두 이처럼 성폭행을 당한 순간에 멈추겠죠.

린이한은 구원을 위해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린이한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쓰고 글을 무기로 이 추악한 세상에 반격하는 것이죠.

2018년에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이미 한국에서 출판되어 한국 미투 운동과 함께 팡쓰치들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시간되시면 서점에서 팡쓰치를 응원하세요!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林奕含,《房思琪的初戀樂園》。
2. 李屏瑤,〈《房思琪的初戀樂園》林奕含:寫出這個故事跟精神病,是我一生最在意的事〉,博客來OK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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