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댄스곡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타이완 출신 여가수 차이이린(蔡依林, 채의림 Jolin Tsai)의 대표곡 중 하나인 <장미소년(玫瑰少年, Womxnly)>이란 노래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장미소년>은 지난 2000년 타이완 사회에서 학교폭력과 성차별 이슈에 커다란 화두를 던진 ‘예융즈 사건(葉永鋕事件)’을 바탕으로 한 노래입니다.
당시 핑둥(屏東)현 가오수(高樹)향 가오수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예융즈는 여성스러운 성격과 행동으로 괴롭힘을 많이 당했습니다. 동급생들이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장난을 치면서 그의 바지를 벗곤 했고, 놀리고 때리는 일도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런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예융즈는 항상 쉬는 시간이 아닌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갔습니다. 그러던 2000년 4월 20일, 예융즈는 여느 때처럼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갔는데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후에 그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크게 다쳐 쓰러진 채로 발견되어 근처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음날 새벽에 사망했습니다. 이 사고는 6년에 걸친 재판 끝에 학교가 화장실 물탱크 관리에 소홀한 탓에 물이 새었고, 급히 나가려다 미끄러져 생긴 사고로 판정됐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학생을 위한 안전적이고 위생적인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타이완에서 학교 성교육에 대한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고, 타이완 교육부도 바로 움직였습니다. 예융즈 사망 후 8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양성평등교육위원회’를 ‘성별평등교육위원회’로 이름 바꿨으며, 2004년엔 ‘성별평등교육법’을 제정하여 학교가 성평등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학생과 교직원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존중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성평등 교육의 법제화는 1996년 타이완 여권운동가 펑완루(彭婉如) 피살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1996년 11월 30일, 타이완 민진당(民進黨) 소속 부녀발전부 펑완루 주임은 임시 전당대회 참석차 가오슝시에 갔다가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타이완 대중들이 여성 안전에 대해 큰 관심을 쏟게 되고 나아가 정부에 여성 안전의 보장을 위한 입법을 요청했습니다. 1997년 '양성평등 교육' 실시의 의무화를 규정한 ‘성침해범죄방지법(性侵害犯罪防治法)’이 제정됐고, 그 다음해에는 ‘양성평등교육위원회’가 설치됐습니다. 비록 1996년이 되어서야 성평등 교육, 정확하게 말하면 ‘양성평등 교육’에 관한 법률이 처음으로 생겼지만 그 전에는 타이완에서 이미 성평등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언론인‘BBC’에 따르면 1990년부터 1997년 사이 타이완에서 동성애를 다룬 라디오방송 프로그램과 도서들이 잇따라 등장했으며 당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타이완 소셜플랫폼인 BBS도 동성애를 주제로 삼는 토론판을 증설했습니다. 2003년 타이베이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처음으로 열렸으며 2004년 예융즈 사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성별평등교육법’이 본격 시행됐습니다.
사회에서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었던 가운데 보수세력이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진애연맹(真愛聯盟)’, ‘차세대행복연맹(下一代幸福聯盟)’등 동성결혼의 합법화와 학교 성평등교육을 반대하는 민간단체들이 잇따라 등장하여 적지 않은 타이완인, 특히 기도교인과 성적 지향 또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수업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2017년 5월 24일 중화민국 사법원은 동성결혼을 보장하지 않는 현재의 민법이 위헌이라며 입법원은 2년 내에 관련 법률을 개정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2018년 국민투표를 거쳐 최종적으로 사법원 석자 제748호 해석시행법이 통과되어 2019년 5월 24일부터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며 동성 2인은 호정기관에서 결혼을 등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타이완은 아시아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한 최초의 국가가 됐습니다.
타이완은 아시아 최초의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일 만큼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또는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편이지만 지금까지도 타이완에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성별평등교육법’ 제1조에서 명확하게 제시하는 법률의 제정 목적인 "성적 지위의 실질적 평등을 촉진하고 성차별을 해소하며 인격의 존엄을 수호하고 성평등한 교육 자원과 환경을 조성함” 이라는 최종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먼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4년 전인 2018년, 동성애와 페미니즘 관련 이슈에 큰 관심을 보였던 ‘타이완 댄싱퀸’ 차이이린이 <장미소년>이란 노래를 발표하면서 ‘예융즈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다시 일어났으며, 이 노래는 타이완 가장 권위있는 음악시상식 제30회 금곡장(金曲獎) 올해의 베스트송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인 2021년에는 사고가 발생한 장소인 가오수 중학교도 남자와 여자 화장실의 외벽에 각각 장미와 나무 모양의 그림을 새겼습니다. 노래의 마지막 두 구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가시 없는 장미가 어디 있어(哪朵玫瑰 沒有荊棘)/아름다움이 가장 완벽한 복수이고(最好的 報復 是美麗)/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야말로 반격이지(最美的 盛開 是反擊)/누군가가 너를 바꾸게 두지 마(別讓誰去 改變了你)/넌 너(你)인지 너(妳)인지 다 상관없어(你是你 或是妳 都行)/널 진심으로 사랑할 사람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會有人 全心的 愛你)/장미소년, 넌 내 마음 속에서(玫瑰少年 在我心裡)/찬란한 이야기로 피어나고 있어(綻放著 鮮豔的 傳奇)/우리는 잊어버린 적 없어(我們都 從來沒 忘記)/너의 항의에는 소리가 없지만(你的控訴 沒有聲音)/더 많은 진리를 전달하고 있고(卻傾訴 更多的 真理)/무수한 진심들을 일깨웠어(卻喚醒 無數的 真心)’라는 가사인데 예융즈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미 같은 부드러운 소년이든 나무처럼 든든한 여자이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