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선생의 생애와 臺韓관계의 미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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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임정 100주년을 맞아 거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김구, 장제스의 대일항쟁 공조의 세계사적 의의 - 20세기 일본 침략주의의 근원에 관한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진행하고 있는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 jennifer pai

이태진 김구포럼 좌장,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11일 타이베이에서 거행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 연설을 통해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에서는 동아시아 전쟁 가운데 중화민국의 항일전쟁(1937-1945년)과 연합국과 일본 간의 태평양전쟁(1941-1945년)만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한반도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청일전쟁(1894-1895년)과 러일전쟁(1904-1905년)에 대해서는 일본에 면죄부를 준 ‘판정’이 되어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참극의 연속으로 이끈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어렵게 하는 근본 원인이 간과되었다고 지적했다.

이태진 교수는 4월 11일 임정 100주년을 맞아 거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김구, 장제스의 대일항쟁 공조의 세계사적 의의 – 20세기 일본 침략주의의 근원에 관한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진행하였다. 연설에서 특히 ‘명치(明治-메이지)유신’은 일본 근대화 성공의 근본이며 신화로 포장되어 일본인에게는 자부심의 역사가 되어 반성의 여지조차 없애 버렸다고 꼬집었다.

주변국 침략전쟁을 일으킨 원인 가운데 19세기 번사(藩士)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에 관해 언급한 이 교수는, 요시다 쇼인의 선점론(先占論)은 그의 제자들이 정권을 장악한 뒤 순서대로 실천에 옮겨 훗카이도 개척, 류큐 합병, 타이완 점령이 실천되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전쟁이었다고 변론하고 있으나 그것은 침략의 본질을 감추는 언사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태진 교수는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본이 20세기초 교과서에서 중국을 동양사로 편성한 것은 깊은 침략 의도가 깔려있으며, 동양사에서 말하는 ‘동양’은 일본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세계를 지칭하는 것이라서 중원을 차지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목적과 중국을 차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개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태진 교수는 맺음말에서 파리 평화회의(1919년)에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산둥반도 처리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은 구미 열강이 당시 일본의 주변국 침략주의의 실체를 직시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1932년 김구 임정 주석이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일본의 만주와 중국에 대한 침략정책 재가동에 선제적 타격을 가하면서 당시 국민정부와 유대를 가지게 된 것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4월29일 윤봉길의 의거를 계기로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장제스 국민정부의 강력한 관심과 지지를 받기 시작한 출발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국민정부와 임정 간의 유대는 곧 국제정세의 새로운 흐름에 따라 새롭게 형성될 수 있었던 일제 침략주의에 대한 공조투쟁의 신호로서 역사적 의미가 크고 장제스와 김구 모두 자유민주주의 노선을 지킨 것은 매우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jennifer 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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