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정권의 흔적 – 홍마오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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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수이(淡水)고적단지 홍마오청(紅毛城)은 17세기 초반에 지은 요새로 처음에는 스페인 사람이 1628년에 산도밍고성을 지었고, 그 후 네덜란드가 1642년에 이곳을 점령한 후 안토니오성을 재건한 것이 지금의 모습니다. -사진: jennifer pai

타이완 북부 단수이(淡水)에 단수이고적박물관단지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홍마오청(紅毛城)으로 불린다. 

홍마오청은 이름 그대로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의 성곽이란 뜻인데 이는 네덜란드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곳은 네덜란드인의 요새로만 사용된 게 아니라 무려 8개의 정권이 사용했던 중요한 곳이다.

1600년대 초기에 네덜란드인이 타이완 남부 타이난(臺南)을 점령하고 요새를 짓고 해상무역의 중개항으로 이용하였다. 얼마 안 있어서 스페인사람이 타이완 북부 단수이를 점령하고 요새를 만들었는데 산.도밍고 요새라고 이름했다. 네덜란드의 세력이 점점 확장되면서 단수이 등 북부지역에 있던 스페인사람들을 쫓아내고 타이완 대부분 지역을 네덜란드 수중에 넣었다. 원래 스페인사람이 지었던 요새는 철수할 때 거의 파괴되어 네덜란드인이 같은 자리에 재건하고 이를 안토이오 요새라고 불렀다. 그러다 17세기 후반에 접어든 후 만주족에 밀려난 명대 한족의 유민들 중에 정성공(鄭成功)이 이끄는 군대가 타이완으로 건너오면서 네덜란드인의 타이완 식민통치를 종식시켰다.

명나라가 망하였지만 여전히 명대 백성이라 자칭했던 일부 한족들이 타이완을 통치한 지 얼마 안 되어 청나라 강희제 때 타이완을 수복하면서 청나라가 정식으로 접수하고 통치하게 되었다. 하지만 청대 말기에 들어서 서양 열강들이 중국과 수 차례 전쟁을 통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고 각지의 문호개방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 때 영국에 의해서 이곳을 영국영사관으로 99년을 임대기간으로 하여 빌려주게 되었다. 

청일전쟁으로 이듬해에 타이완이 일본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 1895년 5월에 일본 치하에서는 살 수 없다던 관료들이 모여서 타이완민주국 건설을 선언하였으나 민주국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 그래서 1895년 6월부터는 일본인이 접수하게 되었고, 2차 대전이 끝난 후 당시 난징(南京)에 수도를 둔 중화민국의 영토로 타이완이 귀속되었다. 

홍마오청을 임대했던 영국은 1972년 중화민국(타이완)과 단교하면서 이곳에서 철수했는데, 사용권을 유지하면서 호주와 미국에 대리관리를 위탁했는데 1980년에 이르러서야 중화민국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적극 쟁취한 끝에 홍마오청이 다시 현재 타이완에 복귀하게 되었다.  

-jennifer 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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