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사-龍山寺(룽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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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용산사(l龍山寺-롱산스).-사진: jennifer pai

타이베이 멍쟈(艋舺)용산사(龍山寺-룽산스)는 청나라 강희제48년(1709년)에 중국 푸졘(福建) 취안저우(泉州)의 삼읍지방, 즉 진쟝(晉江),난안(南安),후이안(惠安) 3개 현(縣)의 사람들과 둥안(同安) 사람들이 함께 ‘진뢰장간호(陳賴章墾號)’를 결성하여 관방의 허가를 받고 조직적으로 타이베이분지를 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계기로 삼읍 출신 주민들이 더 많이 바다를 건너 타이완으로 오게 되었는데 올 때 고향에서 숭배했던 사찰 내 향불을 함께 가지고 나왔는데 바다를 건널 때 신명의 보우해 줄 것을 기구하기 위하여서였다. 이들은 당시 지금의 타이베이 시내 비교적 서쪽에 위치해 있는 멍쟈(艋舺)지역에서 취락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청나라 건륭제3년(1738년)에 푸졘성 진쟝현 안하아(安海) 룽산스 관세음보살을 분령(分靈)하여 모시기 위해 이들이 합자하여 멍쟈 룽산스를 짓게 된 것이다. 

1740년도에 낙성된 멍쟈 룽산스는 19세기 초반 가경제20년(1815년)에 대지진으로 파손되어 수리하였고, 둥치제6년(1867년)에는 폭풍우로 인해 다시금 수리작업을 하였으며, 일본인 통치시기인 다이쇼8년(1919년)에는 흰개미들로 인해서 기둥과 들보가 좀먹어서 당시 복지(福智)스님이 모금하여 복구함과 동시에 솔선수범하여 평생 모은 돈(7천여元)을 기부하여 오늘날의 룽산스 규모의 기반을 잡게 된 것이다. 

1940년대 초반 2차 대전 기간 공습 폭격으로 인해 룽산스 정전(正殿)이 완전 파괴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관세음보살상은 장엄한 법상을 유지하며 연좌에 그대로 앉아 있으며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타이완에는 민간신앙이 비교적 성행하여서 주민들의 집결 장소나 주요 발표를 하는 곳이 바로 각 지의 사찰이다. 그당시만 했어도 공습이나 큰 재난에 직면할 때면 너도나도 관세음보상이 앉아있는 연좌 아래로 몸을 숨겨서 이를 대피소로 여겼었다. 그런데 룽산스로 폭탄이 떨어졌던 당일, 우너래 주민들은 관세음보살이 모셔진 정전으로 집결하였으나 사찰 내에 엄청난 모기들이 날아들어와 하는 수 없이 모기를 피해 제각기 따로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던 관계로 피해자가 없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관세음보살이 비호가 전 다들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거라며 그때부터 관세음보살에 대한 숭배와 경의와 믿음이 더 깊어지게 되었다. 

룽산스 정전(正殿)에는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보살과 후전(後殿)에는 천상성모, 수선존왕, 성황야, 복덕신, 용신, 주생낭낭, 지두부인, 십이파저, 문창제군, 화타, 관성제군, 월하노인 등 불교,유교,도교의 신명들이 모셔져 있다. 

사람들은 희망하는 일들을 여기에 있는 신명들에게 기구하는데 이곳에 모셔진 신들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죽어서 저승에 머무는 전체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신명들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 기구하는 게 다르지만 타이완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사찰이 된 것은 여기에 각종 신명이 다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현지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들러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하는 매우 환영받는 시내 한복판의 사찰이 되었다.

-jennifer 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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