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이야기-고적도시 타이난 17-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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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난은 타이완 최초의 수도이다. 네덜란드가 17세기에 타이완을 점령할 때 타이난에 질단디아와 프로빈샤 등 군사요새와 관공서 등을 건설했다. 사진은 질란디어 성곽의 일부이다. -사진: jennifer pai

고적도시 타이난 17-20세기

타이완 최초의 수도 역할을 했던 도시는 지금의 타이베이(臺北)시가 아니라 남부에 위치한 타이난(臺南)이다. 1600년대인 17세기 대항해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에 원주민족 중에 평지에 거주했던 핑푸족(平埔族) 시라야(西拉雅)계의 타이오완(臺窩灣社-Taioan, Taiouan, Taivuan)주민들이 타이난 타이쟝(臺江)에 살았으며, 그들은 수렵, 어로 및 농경으로 생계를 꾸렸었다. 지금의 타이완(臺灣)이라는 이름은 실질적으로 바로 이 타이오완(臺窩灣)에서 유래된 것이다.

1624년, 네덜란드 사람이 타이난으로 들어와 식민 정권을 수립하였다. 당시 동인도회사가 이미 설립되었는데 이들이 타이완으로 진입하게 된 주요 동기도 무역의 독점권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네덜란드 사람은 타이난에 질란디아(Zeelandia-熱蘭遮城, 원래는 오랑지-Orange로 불렸으며 1627년에 질란디아로 개칭함,지금의 안핑구바오-安平古堡)와 프로빈샤(Provintia-普羅民遮城,지금의 츠칸러우-赤崁樓)를 세워 보루와 통치자의 주거지로 사용했다.

1661년 4월, 명나라는 이미 멸망하였으나 한족(漢族)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남명(南明)이라고 부를 때였다. 그때 정성공(鄭成功-1624-1662)이 400척의 군함과 2만5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명나라를 회복하고자 일단 타이완으로 건너오게 된다. 당시 네덜란드가 대부분의 타이완섬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정성공은 압도적인 병력으로 성을 포위하여 항서를 받아내어 네덜란드 사람은 이로서 타이완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정성공은 1661년에 타이완에 ‘정씨 왕국’을 건립하게 된다. 

청나라 강희제 22년(1683년)에 조정에서 시랑(施琅, 1621-1696)으로 하여금 200여 척의 전함과 2만여 명의 장병들을 인솔하여 타이완 수복을 위한 전쟁을 펼치도록 하였다. 정씨 왕국의 군대가 현재 타이완과 중국대륙 사이에 있는 펑후(澎湖)제도에서 대패하여 타이완섬과 주변 도서들이 대청제국의 판도로 다시 편입되었고 1683년 4월 타이완부(臺灣府)를 설립했는데 타이완부는 당시 중국 푸졘성(福建省) 관할에 속해 있었다. 

청나라 광서제 20년(1894년), 청일전쟁이 벌어졌다. 즉 ‘갑오전쟁’이 발발하여 그 다음 해인 1895년에 청나라는 타이완섬과 펑후섬 등을 일본의 요구에 따라 넘겨줬다. 타이완은 일본이 식민통치를 시작한 최초의 해외 식민지이며 타이완의 여러 지방의 이름도 이 때 상당수 변경되었다.

1945년 일본이 2차대전에서 무조건항복을 선포한 후 10월25일 당시 난징(南京)에 수도를 둔 국민정부(중국국민당 집권)의 타이완행정장관공서 천이(陳儀)가 타이완으로 건너와 타이완 이관 접수를 하였다.

타이난이 직할시로 승격된 것은 2010년 12월 25일이다. 원래의 타이난현(臺南縣)과 타이난시(臺南市)가 합병되어 총 37개의 행정구의 타이난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jennifer 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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