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업데이트) 故宮瑰寶-국립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 10-明 文徵明 仿趙伯驌後赤壁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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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 10
-에니메이션 버전의 회화 (업데이트 버전)

명나라 4대 화가 문징명의 《仿趙伯驌後赤壁圖》-방 조백숙 후적벽도

심주,당인,구영과 함께 명나라 4대 화가로 불리는 문징명은 서예와 회화 모두 뛰어나다. 그는 처음에 심주의 미술을 따랐으며 나중에는 풍부한 소장품과 광범위하게 친구들을 사귀면서 수많은 명가들의 작품을 모방하고 배우며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을 보여주게 되었다. 서예에 조예가 깊다보니 그림에도 서예의 풍채를 엿볼 수 있다.

그림의 제목에 조백숙의 후적벽도를 모방하여 그렸다고 되어 있는데
문징명이 단순히 명가의 작품을 모방한 게 아니라
이 그림이 탄생하기까지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후적벽부는 북송시대 소동파가 지은 시이다.
금(金)나라 무원직(武元直)이 그린 <적벽도>에서부터
후세 문화 예술인들이 서예와 회화 등 다양한 작품으로 ‘적벽부’를 표현해왔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명나라 4대 화가 문징명이 송나라 조백숙의 후적벽도를 모방한 것인데, 그건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1548년, 江蘇성 蘇州에 조백숙의 <후적벽도>를 소장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어느 관리가 세도가 엄숭(嚴嵩)의 아들 엄세번(嚴世蕃)에게 바치고자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그림의 소유자는 아끼는 보배를 내놓고 싶지 않았다.
이때 문징명이 이 그림 때문에 화를 입을 수 있으니 그냥 관리에게 넘기라고 하면서 자신이 그 그림을 모방하여 하나 그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림의 제목에는 조백숙의 그림을 모방하였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송나라의 기법이 아닌 비교적 원나라 이후의 문인들의 청록산수의 화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산의 구조와 돌이 쌓인 모양, 나무의 휘어진 자태나 무성한 나뭇잎 등등,
완연 문징명 자신의 독특한 회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은 후적벽부의 내용에 따라 오른 쪽에서 왼 쪽으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서리가 이미 내린 시월의 정경, 친구 두 명이 찾아왔다.
대접할 것이 없는데, 친구가 도착하면서 그믈을 내리니 고기가 잡혔다고 하고,
술이 없어 부인에게 물으니 술도 한 말 얻을 수 있어서
친구와 달 구경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술도 마시고
적벽 아래서 즐겼다는 내용이다.

1080년, 송나라 때 소동파가 지금의 湖北성 黃岡지방과 인접한 곳으로 좌천되어 ‘黃州 團練 副使’의 관직에 부임한 후, 눈/설, 집/당, 雪堂(설당)이라는 이름의 초당을 지었다,

이 초당을 설당이라고 부르게 된 원인은,
초당을 지을 때 마침 큰 눈이 내려, 그 광경에 취한 소동파는 초당 벽면에 온통 눈이 내리는 풍경을 그렸기에 눈/설을 붙여서 설당이라고 이름했다.
설당 주변에는 버드나무, 매화꽃, 묵죽 대나무 등을 심었고, 친히 농사도 짓고 살았다.

불후의 명작 전.후적벽부는 바로 이곳에서 탄생하게 되어 그 후 1천년 동안 중화권 정계와 문예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국립고궁박물원 제대로 알기-10-서화
명나라 4대 화가 문징명의 《仿趙伯驌後赤壁圖》-방 조백숙 후적벽도
jennifer p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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